brunch

매거진 막글 발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하다 Jul 09. 2024

얼떨떨한 브런치 작가 승인

미션클리어

올 해가 시작되면서 일기장에 세 가지 목표를 적었다.


하나,  하프마라톤을 뛰어 보기로 한다.

두울,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해 본다.

세엣,  수영대회에 참가하여 공식 기록을 받아본다.


'몇 분 안에 하프를 뛴다. 언제까지 브런치 작가가 된다. 몇 초의 수영기록을 달성하겠다.'라고 하는 뚜렷하고 굳은 다짐 따윈 일기장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출구전략을 계획하는 정치인의 언어처럼 달성하겠다는 목표가 아니라 도전해 보겠다는 목표로 교묘하게 뒷주머니를 챙겼다.


그렇다. 난 나 혼자만 보는 일기에서조차 호언하지 못하는 성격의 인간이다.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고, 실패하면 다음에 다시 도전하면 되는 지극히 간단한 로직을 어떻게든 비틀어 놓는다.


한마디로 승리와 성취는 탐하고 싶으나, 도전과 실패 과정은 회피하고 싶은 그런 나약한 인간이다.

고백했다가 차일 상처에 미리 겁을 집어 먹고 고백도 못하는 소심한 아이처럼 말이다.


굳이 이렇게 얍삽하게 목표를 설정하는 이유를 찾자면, 실패 하더라도 "뭐 괜찮아. 이번 목표는 도전까지였잖아. 그런 의미에서 성공이야."라고 알량한 자기 위안 한 줄은 남긴다는 것 정도가 되겠다.


이야기가 딴 데로 샜다. 다시 올해 목표에 대한 주제로 돌아가보자.

(3가지 목표 중 오늘은 브런치 작가 신청에 대한 이야기만 해보자.)


1월 중순 즈음, 우연히 카카오 브런치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우연한 기회에 글을 한번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었다.(이 생각을 품게 된 연유는 '아버지가 보내준 새 취미'라는 글에 적어뒀다.)


브런치는 작가 승인이 되어야 글을 오픈할 수 있다고 해서 유튜브로 '브런치 작가 합격하는 법' 등의 영상을 몇 개 훑었다.


열 번만에 붙었다는 이도 있었고, 네 번만에 붙었다는 이, 단 한 번에 승인되었다는 이도 있었다.

한 번에 승인되었다는 이들은 대부분 블로그나 SNS에 다수의 글들을 쌓아 둔 경력자(?)들인 것 같았다.


나는 SNS를 해본 적도, 블로그에 글을 써 본 적도 없다. 아주 먼 과거에 시중에 떠돌아다니는 시답잖은 글 몇 개를 싸이월드에 올려 본 것이 내 경험의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에 합격하고 싶은 욕망이 득실득실 일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두 편 정도의 글을 꾸준히 브런치 서랍에 쌓아놓고, 연말 즈음에 작가 신청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연말까지 100여 편 정도의 마일리지가 쌓인다면 어쩌면 단번에 합격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서.)


초반엔 짬 날 때마다 무턱대고 글을 썼고, 브런치 서랍에 저장했다. 하지만, 금세 흥미가 떨어지고, '이렇게 쓰는 것이 맞나',  '이런 글 잔뜩 쌓아본 들 합격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중간점검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렇다고 침대 밑에 감춰둔 일기 같은 글을 누군가에게 선뜻 보여주며 평가해 달라고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괜히 보여줬다가 놀림만 당할 것 같았다. 또한, 한편으론 지인한테도 오픈 못 할 자신감으로 어떻게 작가 신청을 하겠냐는 반문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고민 끝에 브런치 서랍에 저장된 글 몇 개를 긁어다가 친구 카톡으로 집어던졌다.


"읽어봐. 심한 비난은 사양하마"


답장이 왔다. "야, 읽어줄 만 한데? 브런치 그거 신청해 봐"


"안돼, 아직. 그거 글 많이 쌓여야 합격한 대드라. 연말까지 좀 쌓아야 되는데 너무 안 쌓여서 너한테 자극이라도 받을까 하고 던진 거야"


"쯧, 떨어지면 또 신청하면 되지. 그냥 해보는 거지, 쯧"


음. 맞는 말이다. 틀리지 않은 말이다. 아니, 너무도 당연한 말이었다.


갑자기 사고의 전환이 일어난다. '연말까지 기다린다고, 글을 더 쌓는다고 합격이라는 보장도 없는데 난 뭘 기다리고 있는 거지? 그렇다고 꼬박꼬박 착실하게 글을 쌓고 있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심장이 뛰고, 뇌가 분주해진다. 어느덧 작가 신청하기 버튼을 클릭하고 있다.


들어가 보니 작가 소개를 해야 하고, 작품 계획을 써야 한다고 친절히 안내한다. 나를 소개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기에 솔직하게 나를 소개하는 것은 어렵다고 썼고, 작품 계획은 내가 쓴 글들의 주제를 크게 갈라 세 꼭지를 엉성하게 담았다. 불과 10분 만에 두 관문을 지났다.


다음으론 브런치에 있는 글을 선택하는 화면이 나왔는데 '맙소사, 브런치 서랍에 있는 글은 세 개만 선택?' 나는 그간 브런치 서랍에 글을 많이 쌓으면 그 숫자들이 평가에 반영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오! 맙소사 난 그간 뭘 한 거지?' 완벽한 나의 오해였다.


친구 말을 듣고 신청해보지 않았다면 난 연말까지 제출할 수도 없는 서랍 속 글 숫자 올리기에만 열을 올렸을 것이다.


뭐 어쨌든 두근대는 마음으로 써 놓은 글 세 개를 골랐고(두 번 정도 선택을 바꾼 것도 같다.) 신청하기 완료 버튼을 꾹 눌렀다.


5일 안에 답을 준다는 메시지를 보긴 했는데 5일이 참 길게 느껴질 것만 같았다. 그만큼 설레고 떨리고 두려웠다. '이게 뭐라고? 뭘 이리 신경 써?' 스스로 신경 쓰지 말자 세뇌하면서도 초조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 날,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중한 글 기대하겠습니다."


"와우!"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내 모습을 내가 보진 못했지만 확신할 수 있다. 입가에 미소가 번진게 확실했다. '이게 뭐라고? 뭐 이리 기분 좋은 거지?' 히죽히죽 웃음이 났다.


연말까지 도전만 해 보기로 한 목표가 연중에 달성되는 순간이었다. 작가승인이라는 보너스와 함께.


아직도 기쁨의 여운이 어느 정도 남아있다. 누군가는 '뭐 대단한 거 했다고 그리 좋아하냐?' 할 수도 있지만 나로서는 오픈하지 못하는 글을 쓰면서 늘 허공에 삽질하는 기분이 들었는데 이제 최소한 그런 기분은 치워버릴 수 있게 되어서 기쁘다. 그리고 감사하다.


요즘 뭐라도 끼적거리며 쓴다는 게 영 버겁다고 느꼈는데 다시 자판을 두드릴 힘이 생긴 것 같다.

지금부터 열심히 자판을 두드려 보겠노라, 즐거운 마음으로 자판을 두드려 보겠노라 다짐하며

 

두울,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해 본다. 에서

두울, 감사하는 마음으로 브런치 작가생활을 즐겨 본다.


두 번째 목표를 변경한다.



20240709











매거진의 이전글 달리기, 그 두 번째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