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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Aug 17. 2024

고양이


넌 내 말 한마디에 망설임 없이 조르르 달려온다. 너의 작은 발걸음은 너무 용감해서 걱정이 돼. 높은 턱 위에서 머뭇거림 없이 뛰어내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쿵쿵 내려앉곤 했다. 정작 고맙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급하게 오지 말라”고만 서둘러 말하게 된다. 너는 내게 다가와 얼굴을 비빈다.


너는 늘 그래. 면섬유에 네 얼굴을 부드럽게 문지르고, 엉덩이를 내 허리께에 딱 붙이고 앉는다. 그러면 너의 체온이 서서히 나에게 전해져 왔다. 나는 너를 절실히 느껴.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면 뜨끈함이 스며들고 너의 둥글고 촉촉한 눈을 바라볼 때마다 꼭 휩쓸려가 버릴 것만 같아. 밤하늘을 빼닮은, 너의 눈은 푸르고 깊다. 무엇이 담겨 있는지, 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가늠할 수는 없어. 다만 그 안에서 나도 모르게 평온함을 찾곤 해.


가끔은 새벽이 너무 고요해서, 내가 평면이 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방 안에 스며들 때, 곁에 잠들어 있는 네 모습을 숨죽인 채로 바라봐. 그림자로 널 꽉 끌어안아 봤어. 이 시간과 공간만큼은 지켜주고 싶은 마음. 아무도 이 시간을 깨뜨리지 못하게, 오직 우리만의 고요 속에서 머물고 싶어. 그게 언제가 되더라도.


내가 너보다 오래 사는 게 사람들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그게 그저 꾸며낸 이야기이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너를 꿈에서나 추억할 날이 영원히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런 바람 속에서 나는 네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에 더욱 집중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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