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유 Aug 16. 2024

변형


힘을 주었다. 손끝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켜 강하게 내리쳤다. 결국, 왼손 검지 손가락에 잡힌 물집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마치 뽁뽁이를 터뜨리듯 이를 악물고 터뜨려 버리고 싶었다. 그랬다가 내 손도 공기 빠진 비닐처럼 자글자글한 주름이 생겨버리면 어쩌지. 손가락 끝에 전해지는 고통은 먼저 팔뚝을 지나 손목으로, 그전에는 어깨로부터 퍼져 나왔다.


나에게 맞지 않는 신발을 억지로 신고 다니다가 발이 망가졌다. 겨우 하루 이틀 정도였을 뿐인데, 그 후로 회복까지 한 달은 족히 걸렸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 회복이 되었을 때, 그 전과 똑같은 발이 아니었다. 한 번 상처를 입으면 완벽히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이전과는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제 나는 편하지 않은 자세로 구부정하게 허리를 굽히고 있다. 손에 주먹을 꽉 쥐고, 아랫니에 힘을 주며 무언가를 참고 견뎌내고 있다. 허공에 대고 가끔 어색하게 욕을 내뱉기도 한다. 엿가락처럼 휘어버린 단단한 뼈, 마치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굽어지는 것 같다.


내게 가해지는 외력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외부의 압력에 의해 나는 변화하고, 그 변화가 나를 또 다른 나로 만든다. 어쩌면 이것이 성장의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어린이가 어른이 되고, 어른이 다시 어린이처럼 작아지는 것은 아닐까. 성장과 퇴보는 반복되는 순환일 뿐일지도 모른다.


차근차근 안으로 굽는다. 점점 더 안쪽으로, 내면으로 말이다.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을 계속해서 붙잡고 있다. 그로 인해 무거워진 몸이 점점 더 안으로, 그리고 아래로 굽어가는 것이다. 그 불편함 속에 나를 밀어 넣는다. 나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의도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굽어버린다면 아예 둥글어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더 이상 뻗어나가지 않고, 구르는 존재가 될 것이다. 둥글게 말린 몸이 굴러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마치 세상 모든 힘을 다 받아들인 채, 그저 흘러가는 듯한, 평화롭고도 고요한 상태로.



**

p

매거진의 이전글 Jun.2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