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글을 쓰려고 누웠습니다. 앉을 수도 있지만 오늘은 눕기로 했어요. 아, 팔을 뻗다가 소름 끼치는 느낌이 들었어요. 범인은 종이였습니다. 당분간 물기가 묻은 뭔갈 만질 때 조심해야겠어요. 벌써 따끔거리거든요. 머리맡에 놓인 빈 메모지가 보이고요, 정돈된 연필도 눈에 띕니다. 연필이 번듯해요. 물건 있잖아요 물건? 걔네 사람만큼이나 바쁜 걸요. 쓰임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도 어쩌면 비슷해요. 만약 비슷해지지 않길 원한다면 눈을 감아야 합니다. 번뜩 뜬 눈은 음, 너무 많은 걸 보게 하니까요. 현대인의 필수품은 안대 아니겠어요.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고들 하잖아요. 같이 무언갈 써 내려가면 예리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 쓰는 거 좋아한다고 물으면 내 밥벌이를 걱정해 줘요. 다정하죠? 의식주의 중요성을 배운 보람이 있네요. 어디서 끼니 거를 일은 없겠어요.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생각을 했어요. 더 많이 시도하는 글. 더 많이 덜어낸 글. 집약, 결국엔 글을 위한 글. 그러니까, 누군가의 글을 모아보면 하나의 세계관이 되기도 합니다. 뚜껑을 열 때마다 비슷한 모양이 튀어나오는 걸 정말 원했냐고요? 사실 마트료시카가 되고 싶지는 않았는데요. 뭐 그래요. 관점에 따라 본인만의 특색이 되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어떻게 혼자서 모든 시간과 공간대를 살겠습니까. 그래요, 적당한 수준에서 적당히 써야죠? 예, 핑계가 길었죠. 그렇게 부담 갖지 말자고 하면서도 매일 책 한 권과 영화 한 편을 봅니다. 나는 아니겠지 나는 아니겠지. 뒤돌아서는 나도 그렇지 않을까 나도 그럴 것 같아. 작심삼일은 훌쩍 넘겼으니 말해도 되겠죠? 수많은 시도 끝에 깎이고 깎여 예리해지는 거죠. 과녁을 향해 쏘는 겁니다. 그런데 음. 과녁을 향해 쏴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