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오면 세상이 조용히 흔들리는 것 같아. 바다도 아닌데 어딘가 물결치는 느낌이 들거든. 멀리서 들리는 노랫소리 같은 거, 있잖아. 그게 어디서 나는 건지 아무도 모르겠지. 그냥 그 순간에만 있는 거야. 창문을 열면 차가운 별빛이 천천히 들어와. 숨을 고르면 달이 숨 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빛 아래에서 작은 것들이 춤추는 게 보여. 풀잎도 그렇고 바람도 그렇고, 나뭇가지 끝에 걸린 눈송이 같은 것도 그래. 걔네는 서로 아무것도 모르는데도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아. 손을 뻗어서 잡으려고 하면 금방 멀어져 버려. 근데 손바닥에 뭐가 남아. 말로 하기 힘든 건데, 부스러기 같은 거지. 그걸 모아서 마음속에 묻어놔. 흙을 덮고 가만히 기다리면 그 위에 새싹이 돋아. 초록빛 새싹이 하늘 쪽으로 쭉쭉 자라면, 어떤 사람 눈에는 그게 별처럼 보일지도 모르지. 낮엔 이런 게 없잖아. 밤이 되면 나타나는 것들이 있어. 말도 안 되는 그림자 같은 새가 마당을 휙 스치고, 아무도 탄 적 없는 바퀴자국이 길 위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거야. 그 길 따라 걷다 보면 너머에 뭔가 있을 것 같아 보이지 않아? 근데 이상하게 발걸음을 옮길수록 흐려져. 뭐랄까, 세상이 장난치는 것 같아. 그래서 멈춰 서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 거지. 근데 웃긴 건, 돌아온 길이 조금 달라 보여. 발밑에 작은 돌멩이가 하나 있어. 어둠 속에서 혼자 반짝이는 돌이야. 그 돌이 나한테 속삭이더라. 난 여기 있었어. 그 한마디가 참 묘해. 마음에 꽉 남았어. 그래서 이제는 길을 잃어도 괜찮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