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이 복덕으로 가득 찬 존재가 되는 방법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이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부주상보시가 왜 복덕이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을까?
여기서의 복덕이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색의 차원에서 뜻하는 복덕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쌓고 누리고 사라지고 하는 유위복(有爲福)이 아니라는 뜻이다.
왜 그런가?
상(相)에 머무르지 않고 하는 보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복덕을 지을 상도 없고 받을 상도 없고 누릴 상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 그런 보시는 나에게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무한한 복덕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 복덕으로 자기가 태어나고 싶으면 원하는 복을 가지고 태어날 수도 있고, 원하는 만큼 머무를 수 있고, 지혜를 키울 수도 있고, 또 중생구제에 다양한 방편으로 활용할 수 있고, 대덕(大德)으로 인천(人天)의 공경을 받을 수도 있고, 중생을 쉽게 감화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이른바 자기가 있고 복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 자체가 복덕으로 가득 찬 존재가 되어 가는 것이다. 그러니 그 복덕의 크기를 어찌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겠는가?
한마디로 무주상보시를 하면 자기는 그대로 있으면서 복덕을 따로 얻고 과보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 자체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