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 생각의 틀을 과감하게 깨어버리자!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동쪽 허공을 가히 생각으로 헤어릴 수 있겠느냐? 못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남서북방과 사유상하허공을 가히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겠느냐? 못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보살이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한 복덕도 또한 이와 같아서 가히 생각으로 헤어릴 수 없느니라
무주상보시의 복덕을 허공에 비유하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청정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허공 그 자체이다.
허공이 청정하므로 허공 속에 있는 모든 존재가 저마다 자기의 빛깔과 소리를 내며 존재감을 비로소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눈부신 태양조차도 허공에 비하면 오염물이 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은 무엇인가?
바로 허공 그 자체이다.
허공이 크기가 없으므로 가장 크고 따라서 하늘과 땅과 모든 존재를 담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허공을 생각으로 헤어린다는 것은 마치 뜬구름이 하늘을 붙잡으려는 것과 같고, 물고기가 바다를 뒤집으려는 것과 같으며, 사슴이 태산을 옮기려는 것과 같고, 아기가 엄마를 낳으려는 것과 같다.
허공은 본래 방향이 없으나 존재가 있음으로 그 존재를 기준으로 동서남북사유상하의 방향이 생겼다. 그러나 그렇게 나누어 놓은 허공조차도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무주상보시의 복덕 역시 허공과 같아서 생각으로 헤어릴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신다.
정말 그럴까?
궁금하다면 무주상보시를 직접 해보시면 알게 될 것이다.
자, 허공은 청정하고 가장 큰 것임에도 우리는 우리 마음을 허공 자체에 두지 못하고 그 속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 그안에 자기 자신을 머무르는 곳으로 삼는다.
자기를 만드는 엄마도 허공 속에 존재하고 자기도 허공 속에 존재하건만 엄마의 몸안을 자기 본래의 집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과 같다.
자기의 본래 모습은 허공에 머물고 있지만 현재의 자기 모습은 허공 속에서 만든 자기 생각의 틀 속에 가두고 있다.
그리고 그 생각의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또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 모두는 제각기 고유의 인생이 있고 자기만의 운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타인을 내 마음속에 끌어들여 비교하고 사회기준의 틀에서 벗어나면 실패하고 잘못된 것으로 받아들인다.
개개인의 모든 것이 인과법과 연기에 의해 생기고 사라지는 고유의 인생이므로 본래 여기에는 비교할 마음을 둘 수 없고 차별심을 낼 수도 없는 법이다.
우리 모두의 마음을 허공에 둘 때 진정으로 평등심을 가질 수 있고 서로를 존중할 수 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걸리지 않으므로 각자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되고 다툼이 사라지고 평화가 오게 된다.
자, 내 마음속에 어떤 생각의 틀을 가지고 있다면 과감하게 깨어버리고 그 어떤 것도 대체하지 말고 순수하게 텅 빈 공간으로 만들어 유지해 보자.
그러면 묘행무주(妙行無住)가 무엇인지 서서히 느낌이 다가올 것이다.
진리의 광명은 허공 속에서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