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가르침은 다른 것에 의지하는 바가 줄어들고 스스로 우뚝서게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하면 수보리야, 실로 법이 있어서 부처님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 아니니라
어떤 사람이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하든 얻지 않았다고 하든 여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또 여래가 법이 있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하든 그렇지 않다고 하든 간에 여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아무 영향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래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세간(世間)의 평가와는 아무 관계없이 여여(如如)하게 존재할 뿐이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내가 깨달았다고 하든 아니라고 하든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냥 내 할 일만 하다 가면 그뿐이다. 그런 평가를 얻는다고 일이 더 잘되는 것도 아니고, 그런 평가를 얻지 못한다고 일이 잘 안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세계는 자기 자신을 알아주는 세계가 아니다. 각자의 욕망을 가지고 그것을 채우려고 발버둥 치며 뜨거운 화염을 내뿜는 세상이다. 상대방을 알고 이해해 줄 여유를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알아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바보이고, 나를 알아달라고 광고하는 것은 더욱더 바보이고, 나를 몰라준다고 삐치는 것은 최상의 바보이다.
세간의 평가에 마음이 휘둘리면 최종적으로는 불행을 맛본다. 왜냐하면 남의 집에 세(貰)를 들어 살다가 경매로 집이 넘어가서 길거리로 쫓겨나는 것과 같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여래는 단지 여래에 대해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져 그들이 길을 어긋날까 염려하는 마음에서 법이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 아니라고 자상하게 알려주시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자기가 실상을 정확하게 보고 있지 못하면서 자기의 그럴듯한 추측을 가지고 마치 본 것처럼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 추측은 망상(妄想)일 뿐이다. 그래서 무슨 이득이 있으랴?
그리고 왜 자기가 깨달았다고 광고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무슨 이익을 기대하는지 모르겠다. 세간의 평가를 모아 자기가 왕노릇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광고를 할 이유가 없다. 사람들을 구원하고 깨달음으로 인도하겠다는 대의명분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처음부터 깨달음이 거짓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주로 최면상태를 만들며 크나큰 환상을 지속적으로 심어준다. 심지어는 자기에게 있는 악령들을 빙의시켜 이성(理性)을 완전히 마비시켜 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깨달았다고 광고하며 구원해 주겠다고 광고하는 사람은 내면이 가장 사악하고 교활하며 탐욕스러운 마귀 같은 부류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올바른 가르침과 사이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자기 자신이 어떤 것에 의지하는 바가 점점 줄어들고 스스로 우뚝 설 수 있게 되어가는가 하는 점이다. 마지막에는 자기가 의지하고 있는 스승이나 종교나 신(神)이 없이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가 하는 점을 반드시 점검해보아야 한다. 자꾸 자기에게 의지해야 잘 살고 깨달을 수 있다고 한다면 완전 사이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올바른 가르침과 올바른 스승은 자기의 본래면목을 제대로 발현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에서도 바람직한 평가를 받게 된다.
여래의 가르침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그대를 여여(如如)하게 해 주고,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 되게끔 이끌어준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그대가 부처님을 잊고, 불교를 잊고, 진리를 잊고, 그 모든 것을 버리고도, 영원히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는 존재가 되게끔 해주는 가르침이 바로 석가모니불의 금강경 설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