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핸섬 가이즈]
28. 추정우의 사람들
‘콸콸’ 물이 쏟아지는 계곡에서 ‘쿨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우는 계곡 옆 돗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감자탕집에서 숙면 취한 세종과 우빈이 입이 텁텁한 모양이었다.
“차에 수박 사 온 거 있는데.”
“아 맞다. 엄청 뜨끈해졌겠는데?”
세종이 트럭에 가서 수박을 꺼내와 시원한 계곡물에 담가놨다. 돌 몇 개를 주워 와 수박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괴어 놓았다.
세종은 어릴 때 누나와 놀던 강변에서처럼 작은 돌 하나를 집어 들어 물수제비를 만들어보았다. 그 모습을 보던 우빈과 진한도 세종을 따라 했다.
“생각보다 잘 안 되네.”
은근 경쟁하는 그 모습이 재미있어 보여 세종은 그들의 모습을 휴대폰으로 찍기 시작했다. 우빈이 반칙해서 이겼는지 진한이 분해하는 모습,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이 터진 우빈의 모습이 그대로 카메라에 잡혔다.
“사진 찍으면 찍는다고 얘길 하고 찍어.”
진한은 불평을 말하는 듯하면서 어느새 큰 바위 앞에서 자세를 취했다. 군인답게 쌍 따봉을 날렸다.
“오! 좋아. 좋아! 멋있다!”
우빈은 진한의 행동에 평소보다 더 크게 반응했다.
세종은 진한과 우빈이 어깨동무를 하는 모습, 서로 장난치며 해맑게 웃는 모습, 하늘을 향해 팔을 뻗는 모습 등 다양한 순간들을 찍었다. 똥색 두건을 얼굴 위에 뒤집어쓴 채 널브러져 자는 정우의 모습을 찍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세종은 그 사진들을 지우에게 전송했다. 지우가 문자를 보내왔다.
“여기 어디야?”
세종은 지우에게 물 맑은 한탄강 계곡에서 놀이공원보다 더 신나게 논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얘들아, 수박 먹자.”
우빈이 진한과 세종을 불렀다. 칼 챙겨 오는 걸 잊어서 우빈이 수박을 손으로 깨었다. 그때 어디선가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어, 이거 지우 오토바이 소린데?”
세종의 말에 정우도 잠에서 부스스 깨어났다.
“지우 누나!”
우빈이 헬멧을 벗는 지우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진한도 그녀를 보고 얘기했다.
“누나, 바쁘다더니?”
“너희끼리 너무 신나게 노는 것 같아서 샘나서 왔지.”
지우는 세종의 옆에 앉아 수박 한 조각을 덥석 베어 물었다.
“나 첫 끼.”
허겁지겁 수박을 베어 무는 지우에게 세종은 가방에서 여행용 티슈를 꺼내 건네주었다.
“어, 고마워.”
지우가 배시시 웃자 세종도 따라 웃었다.
“누나도 같이 갈래?”
“어디?”
“우리 셋이 지금 물고기 잡으러 가는 길이었는데.”
“다녀와. 난 정우랑 여기 있을게.”
부스스한 얼굴의 정우는 계곡물로 세수했다.
“어우, 차다. 한여름인데 물이 엄청 차가워.”
옆에 있던 지우도 수박 물이 묻은 손을 씻었다.
“얘들아, 매운탕 거리 잡아오는 거지? 기대할게.”
정신을 차린 정우가 지우에게 물었다.
“누나, 요즘 많이 바빠?”
“좀 바쁘네. 너는?”
“공익이 뭐 바쁠 게 있나? 애 보느라 좀 피곤해서 그렇지.”
“그래도 애 커가는 모습 보면 뿌듯하지?”
“그렇더라. 아빠라고 옆에 와서 안기는 것 보면 찡하기도 해.”
“나도 그래서 봉사하나 봐. 강아지들 꼬리 흔드는 것 보면 좋아서.”
“누나는 천상 해빵이야.”
지우는 우빈이 챙겨 온 아이스박스를 열었다. 거기 있는 캔맥주를 하나 꺼냈다.
“치익.”
“술 마시게? 오토바이는?”
“한 캔만. 난 이 캔 따는 소리보다 맑고 경쾌한 소리를 알지 못해.”
“누나도 참 웃겨.”
“아름다운 계곡에 울려 퍼지는 이 소리. 캬~”
지우가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쟤들 참 젊고 매력 있지?”
정우가 지우에게 말했다.
“애들 착하고 멋있지. 정우 너도 멋있어.”
“하긴 내가 제일 멋있지.”
“하하하. 그치. 니가 제일이지.”
“그래. 하하하.”
진한, 우빈, 세종이 물고기 잡기를 빠르게 포기하고 되돌아오는 모습을 보면서 정우가 얘기했다.
“내가 AI보다 더 예리하게 핸섬 가이즈 분석해 볼까?”
“그래. 들어보자. 내 생각과도 맞는지.”
“자, 시작합니다.”
지우가 잔뜩 기대한 눈으로 정우를 응시했다.
“우빈인 전주 돌솥비빔밥 같은 애지.”
“하핫. 음식에 비유하는 거였어?”
“인성, 외모, 성격, 공감 능력 등 좋은 게 색색이 다 들어있지. 또 얼마나 따뜻한지 밥을 다 먹을 때까지도 온기가 남아있지. 마음이 허한 사람들이 특히 우빈이를 좋아하는 이유가 그거야. 아무도 모르는 내 마음을 금세 알아차리고 알아주니까.”
“좋은 재료 다 넣어 비볐는데, 그것도 완벽해. 그 말이지?”
“역시. 잘 알아들어.”
"히힛."
“진한이는 순댓국에 소주 같은 애야.”
“진국이란 뜻? 그런 거지?”
“매사 단단한 척하지만 약해. 순댓국의 순대처럼 툭 건드리면 안에 있는 것이 다 튀어나와. 그 튀어나온 투명한 당면을 보고 있으면 속이 훤히 보여. 허세를 부리지만, 나는 그 찰랑거리는 눈망울과 미소를 쉽게 알아채지. 세상살이 힘들 때, 소주 한 병들고 찾아가서 얘기하기 딱 좋은 애지. 국물이 진하고 얼큰한 게 끝내주지. 가끔 착해 빠져서 답답하기도 하지만.”
“진한이는 애어른이라서 그래.”
“남녀노소 누구나 은근 잘 어울려. 사람 편하게 하는 뭔가가 있지.”
지우와 정우는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가 마지막 남은 세종을 정우가 어찌 생각하나 궁금해서 먼저 물었다. 세종은 정우보다 자신이 더 잘 안다고 생각했다.
“세종은?”
“그는 오묘한 놈이지.”
지우는 정우가 말을 이어가기 전에 대답을 가로챘다.
“세종은 내가 말해도 되지? 그 애는 다크 초콜릿 같은 애지. 뒤에 숨겨놓고 나만 몰래 하나씩 꺼내먹고 싶은 다크 초콜릿. 진한 그 맛을 느끼다 보면 입가에 웃음도 나고 숨도 쉬어지고 그래. 행복감이 올라오지.”
“맞아. 세종은 아무한테나 정 주는 스타일은 아니고, 자기가 좋아하고 믿는 사람들한테 특히 잘하는 타입이지.”
“그래서 나만 좋아하잖아.”
“이 누나 또 뭐래?”
정우 말을 들은 지우의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다. 핸섬 가이즈가 200m 앞까지 왔을 때 정우가 그들의 얼굴을 보며 얘기했다.
“우리 애들 잘생겼지? 겉도 속도.”
“그래. 동아리 회장으로 아주 뿌듯하겠다.”
지우의 말에 정우가 진지하게 물었다.
“그럼 나는 어떤데?”
그의 물음에 지우가 1초 만에 대답했다.
“너는 시래기.”
“뭐?”
“한겨울에도 상하지 않고 꿋꿋하게 겨울을 이겨내는 시래기 어때?”
“물가에 있는데 갑자기 건조해지는 느낌인데?”
“마음에 안 들어?”
“쟤들이 비해 너무 불쌍해지는 것 같잖아.”
“넌 말라비틀어진 시래기였는데 어느덧 생기를 찾은 듯해. 물을 흠뻑 머금더니 아주 훌륭한 음식 재료가 되었지. 처음엔 텁텁하지만 씹을수록 고소함이 입안에 풍기는 시래기 무침이 되기도, 감자탕과 어우러져 고기의 느끼한 맛을 없애주기도 하지. 이제 나이가 더 들면 구수한 시래기 된장국처럼 깊은 맛을 내게 될 것 같아.”
지우의 진심 어린 말에 정우는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감동했다.
“지우 누나, 누나는 말이야.”
“응. 왜?”
“정말 최고야!”
“뭐? 히히. 고마워.”
“늘 지금처럼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그렇게 살아.”
“그래. 우리 그렇게 살자.”
“나는 이제 속박된 인생이야.”
“너도 즐겨. 아무도 뭐라고 안 해.”
“그런가? 그럼 즐겨볼까?”
둘은 마주 보고 계곡물을 튕기며 웃고 있었다.
“누나는 웃을 때 제일 매력적인 거 알지?”
“그러더라. 사람들이. 난 눈도 예쁘고 코도 예쁘고 입도 예쁘고 눈썹마저 예쁘대. 거기에 착하고 성격도 좋고 오토바이도 잘 타서 완벽하대. 그중에 웃을 때 가지런한 치아가 너무 예뻐서 웃는 모습이 최고래.”
“이 누나 완전히 취했네.”
“그러게. 맥주 한 캔에 좀 심했나?”
“내가 애만 없었으면 누나랑 연애 좀 해보는 건데, 아쉽다.”
“얘 봐라. 웃기네.”
“나 시래기 같고 좋다며?”
“그래도 너랑은 안 사귈 것 같은데?”
“히힛. 그래. 우리는 이렇게 편한 사이가 좋아. 그치?”
“정우야, 계속 연락하며 친하게 지내자. 지금처럼.”
“그래.”
“재밌게. 오케이?”
해빵이와 핸섬 가이즈의 계곡에서의 하루는 사진으로 남겨졌다.
찰나의 행복으로.
영원히.
하늘에서 붉은색 별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11월.
정우는 6살이 된 아들, 민찬을 데리고 가을 축제 중인 놀이동산에 놀러 갔다. 엄마, 아빠와 함께인 행복한 아이들을 보곤 민찬이 말했다.
“아빠, 난 왜 엄마가 없어?”
“엄마가 없긴. 공부하느라 바빠서 못 오는 거지.”
“피. 한 번도 안 오고.”
“대신 엄마 있는 애들보다 더 재미있게 해 줄게.”
“어떻게?”
“저기 봐봐. 보여?”
“어디?”
저 멀리 진한, 우빈, 세종이 손을 흔들며 걸어오고 있었다.
“민찬아, 저기 형들 보여?”
“어디? 저 아저씨들?”
“크크크. 그래. 아저씨들. 저 아저씨들이 아빠 친구들이야.”
“무섭게 생겼어.”
“자세히 보면 안 그래.”
“힝.”
“치킨 사 오는 아저씨랑은 방 탈출 게임을 하고, 뽀로로 풍선 들고 오는 아저씨랑은 하늘 나는 비행기를 타. 그리고 솜사탕 들고 오는 아저씨랑은 범퍼카를 타. 그럼 오늘 아주 신나는 하루가 될 거야.”
“그럼 아빠는 뭐 해?”
“아빠는 자동차 바퀴에 바람이 빠져서 채우고 올게.”
“응. 다녀와.”
핸섬 가이즈 애들은 멀리서 민찬을 보고 한꺼번에 달려왔다.
“민찬아. 삼촌이랑 놀자.”
- 끝 -
지금까지 소설 '핸섬 가이즈'를 사랑해 주신 독자분들께 하트를 날립니다.
청춘의 시간을 공유하며 잠시나마 설레었기를 바랍니다.
일상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잊으셨기를 바랍니다.
다음 작품으로 만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