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서야 알게 된 나의 뿌리
미국에 가서 3개월, 4개월까지는 어떠한 음식들도 괜찮게 먹었고, 맛이 있으나 없으나 적당히 불만 없이 먹었고 싱거워도 잘 먹고 너무 짠 맛들은 못 먹었어도
나름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었다. 햄버거만 3주 내내 먹은 적도 있었는 데 적응이 되어 나도 진짜 미국 스타일인가? 싶었다.
그러나 4개월이 조금 지나갈 무렵, 갑작스럽게도 김치라는 단어가 생각이 나버리고 말았다.
한국에서 살면서 김치를 그렇게 좋아하던 타입도 아니었고, 김치가 없이도 많은 음식을 잘 먹기도 했고,
치즈 듬뿍 들어간 파스타도 행복하게 잘 먹고 피자 한 조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던 내가 미국 와서 김치가 너무 고파지다니 낯설기도 했다.
김치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먹으러 가기가 어려웠다. 미국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한인마트까지 가는 것이 꽤나 멀고 또 김치 하나 때문에 가다니 싶어서
그냥 참았다. 그렇게 참고 참다가 며칠 지나니까 입맛이 뚝 떨어져 버렸다. 미국음식만이 아닌 한식도 분명 해 먹고 있었는데도 ‘김치’가 너무 생각이 나고
김치가 없는 식탁에서 배가 고프니까 먹는 정도로 겨우 한 끼 때우고 그러다가 정말 어떤 음식도 먹기가 힘들어졌다.
배가 아무리 고파도 한 입 겨우 음식들을 먹는 순간에도 너무 먹기가 버거워져서
이때 밥을 잘 안 챙겨 먹었는데 체력도 없고 기운도 빠지고, 배가 너무 고프면 잠도 잘 못 잔다.
일상이 힘들어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아르바이트도 하고 공부도 하고 부지런히 사느라 살은 더 빠지고 거기에 먹지를 못하겠는 정도까지 가버리다가
잠도 겨우 자는 도중에 꿈에서 김치를 먹고 나서 이 현상이 개운해지는 걸 느끼고 말았다. 꿈에서조차 김치를 찾고 있었다.
정말 이 기간 동안 그 김치가 뭐라고 그렇게 고생하며 금단현상을 겪는 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지만 더 이상 가다가
5일 동안 총 2끼 먹은 게 다였던 때라 이건 미친 것이라.. 그냥 우버를 타고 비싼 교통 비를 내고서 앞뒤 안 가리고
한인마트를 갔다. 한인마트까지 1시간 걸렸다. 가자마자 다른 음식들도 간 김에 사야 하는 거 아닌가? 장을 봐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럼에도 가놓고
김치만 딱 두 통 들고 바로 집에 달려왔다. 기껏 가놓고 정말 김치만 사 왔다. 한국 과자라도 하나 사 와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지만 그 당시 김치만 보였던 것이다.
그렇게 집에 와서 김치를 어디에 담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먹었다.
정말 그 순간 괜한 눈물이 났다. 그리고 오랜만에 그 시큼 매콤한 김치 덕분인지 밥이 먹고 싶어 져서
계란 하나랑 밥 해서 김치를 그 자리에서 엄청 먹었다.
정말 5일 동안 총 2 끼니 먹은 게 전부였고, 거의 굶다 싶게 다닌 것이다. 그 두 끼조차 사과 같은 과일 조금이 다였다.
이게 식재료가 그동안 없었던 것도 아니고 먹을 게 없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있다가 그 김치를 먹고 나서야 그다음 날부터 제대로 밥다운 밥을 먹고 있는 나 자신을 봐버렸다.
그제야 알게 된 것이다. 그저 김치가 맛있고를 떠나서 그동안 그러려니 했던 나의 한국적 생활의 의미가 김치를 통해 다시 한번 소중한 가치가 있었다는 걸 담고 있는 것이다.
한인마트에서 내가 집어온 건 그렇게 맛있는 김치도 아니고 김장김치도 아니었는데도 먹는 순간 나의 그 고달팠던 심정이 가라앉고 살 것 같았다.
김치를 그저 하나의 음식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 타지에서는 나의 한국의 뿌리를 심어주게 된 계기가 되었다.
거의 6일째가 된 밤에 먹게 된 김치와 쌀밥, 계란 이 한 끼가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에너지가 되어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