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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JI Sep 29. 2024

그 가격에도 손을 든다면?

1년을 함께 한 가사 도우미가 있다. 그녀를 신뢰한다. 평소 말이 없는 그녀인데 어느 날 내게 한국에 가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집에 우환이 있는지 물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집안이 어렵다, 나라 경제도 어렵다, 돈을 벌어서 조그만 가게를 내고 싶다, 아이를 위해 밝은 미래를 그리고 싶다고 했다. 찾아보니 아프리카는 고용허가제 대상이 아니었다. 내가 도와줄 방법은 없었다.


며칠 전 한 친구가 논란이 되고 있는 한국은행 보고서에 대해 알려주었다. 한국은행은 금리와 통화량을 결정하는 곳인 줄만 알았는데, 갖가지 사회 이슈에 대한 보고서를 내놓고 있었다. 여러 이슈 중 나는 지난 3월에 나온 돌봄시장 인력난과 비용부담 완화 보고서에 관심이 갔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간병과 돌봄 비용을 낮추어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개인이 직접 고용하는 방식과 고용허가제 범위를 확대하는 방식이 있다. 마지막으로 최저임금 제도를 비껴갈 수 있는 제도 설계를 제안했다.

https://www.bok.or.kr/portal/bbs/P0002353/view.do?nttId=10082777&menuNo=200433&pageIndex=1


이에 대해 녹색정의당 이자스민 의원이 성토한 것을 뉴스로 알게 되었다.

“대한민국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에서 외국인, 여성, 돌봄 노동을 싸잡아 폄훼하는 시대착오적이며 비인권적인 보고서를 발간하고…”

https://www.youtube.com/watch?v=88faq3lPVYc

나도 엉뚱한 지점에서 반감을 느꼈다. ‘돌봄산업이 생산성이 낮다’는 문장이었다. 편찮으신 부모님 간병과 자녀 양육하는 일을 생산성이라는 단어로 평가하는 것이 불편했다.


그런데 찾아 읽은 보고서는 설득력이 있었다.

돌봄 노동은 업무강도가 세고 처우가 열악해서 사람들이 기피한다. 간병의 경우 업계 종사자는 고령에 대부분 조선족이다.

고령화로 간병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자녀 돌봄 수요는 앞으로 크게 증가하기 어렵더라도, 저출산 해소를 위해 사회적 인프라를 확충할 필요가 있다.

현재 간병 비용은 월 370만 원, 육아도우미 비용은 월 264만 원이다. 간병 3년이면 비용이 1억 3천이다. 서민에게는 부담이 크다. 그런데도 이 금액에도 일할 사람을 찾기 어렵다. 따라서 외국인 노동자 도입은 불가피하다.


여기까지는 꽤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문제는 어떻게 도입할까이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보장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은행 보고서는, 한국의 최저임금이 중위임금의 61%에 달해서 가계의 부담이 크다고 지적한다(2022년 기준 일본은 45.6%, 미국은 27.4%). 중위임금 정도의 돈을 버는 가정에서는 소득의 60%를 간병비에 써야 하는 셈이다. 제도가 생겨도 서민층 이용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으면? 사람을 차별하는 것에 걱정이 먼저 들긴 한다. 보고서는 홍콩의 사례를 제시했다. 내국인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홍콩에서 돌봄 노동을 수행하는 필리핀 노동자들의 업무 만족도가 높다는 것이다. 홍콩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면 최소 77만 원을 받는데, 필리핀 전체 평균임금이 44만 원, 비숙련 노동자의 경우 29만 원이기 때문이다.


가나를 사례로 대충 따져봤다. GDP가 1인당 2,368달러이니 월 200달러가 안된다. 코파일럿에게 한국에서 최저임금으로 일하면 월급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고 아래 답을 얻었다.

2백만 원이면 대략 1,500달러 정도다. 200달러와 1,500달러 사이에서, 수요자도 공급자도 만족하는 가격이 형성될 수 있지 않을까. 식사, 주거, 의료, 항공료 제공과 같은 복지 수준에 대해 기준을 정해서 지키도록 하면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도 적극적으로 보호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에 가고 싶다고 어렵게 말을 꺼낸 그녀를 떠올린다. 여기서 받을 수 있는 급여의 몇 배를 받을 수 있다면, 안전한 환경에서 적정 시간 일할 수 있다면, 한국 정부가 정해 놓은 최저임금 이하의 급여를 받더라도 그녀는 즐거운 마음으로 한국으로 떠날 결정을 할 것이란 확신이 든다. 그래서 나는 한국은행의 제안에 찬성한다. (아무도 내게 묻지 않았지만.) 혹시 내가 고려하지 못한 다른 생각할 거리가 있다면, 누구든 알려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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