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환상 속의 피해자는 없어

수습편집위원 핫시크

by 문우편집위원회

지난 8월 14일, 서울서부지방법원이 수행 비서를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및 추행, 강제추행 등 10개의 혐의 모두에 범죄의 증명이 없다는 것이었다. 안희정의 비서였던 김지은 씨의 고발을 토대로 시작된 재판은 ‘위력’에 의한 성폭행이었느냐를 가장 핵심적인 쟁점으로 두고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쟁점을 다투는 과정에서 검증의 대상은 오롯이 ‘피해자의 말과 행동’이었다. 재판부는 계속해서 피해자에게 왜 거절하지 않았냐, 왜 피해를 입은 후에도 일을 그만두지 않았냐 물으며 의심하고 검증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피고인이 가지는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이 평소에 어떻게 행사되어 왔는지, 수행 비서라는 위치가 얼마나 종속적이고 불안정한지는 제대로 고려조차 되지 않았다. 결국 ‘안희정은 무죄’ 라는 판결로 이어지게 되었다.


김지은 씨는 판결이 난 직후 입장문을 통해 “재판정에서 피해자다움과 정조”를 말할 때부터 무죄 판결이 이미 예견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판결문에서 명확하게 피해자다움이라는 단어를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재판부는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안희정에게 신뢰를 드러내던 평소 피해자의 행동을 문제 삼으며 피해자에게 모종의 완전무결성을 요구하였다. 바로 이러한 잣대에서 피해자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나타나고, 김지은 씨와 많은 사람들이 이 지점을 지적하며 재판부의 판결을 비판한 것이다.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피해 당사자들에게 ‘피해자다움’이라는 잣대를 들이밀어 피해 사실을 따지고 성폭력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생각보다 아주 흔한 일이다. 재판정에서 피해자성을 특정 짓는 고정관념이 나타나는 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 실제 법률 조항을 살펴보도록 하자. 현행 법률에서는 강간(형법 제297조), 유사강간(형법 제297조의2), 강제추행(제298조) 등을 ‘폭행 또는 협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폭행 또는 협박’의 정도를 말할 때는 일반적으로 ‘최협의설’을 취하는데, 최협의설이란 가해자의 폭행과 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이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즉, 위와 같은 성폭력 범죄를 성립하게 하는 요건의 기준은 다름 아닌 피해자의 끈질긴 저항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범죄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무조건 ‘저항’해야 완전한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시선이 여기서 나타난다. 당연히 현실에서는 다양한 상황적 맥락이 존재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격렬한 저항’이라는 단일한 방식으로 범죄 상황을 대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법정은 성립 요건을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는 까닭으로 피해자의 대처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기준에 맞지 않으면 피해 사실 자체를 인정받지 못하기도 한다.


피해자성을 요구하는 양상은 특히 보수적인 공간으로 여겨지는 재판장 바깥을 나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평소 가해자에게 친절하게 대했다거나, 피해 직후 바로 신고를 하지 않았다거나, 아니면 피해자의 평소 행실이 ‘올바르지 않았’거나 등 피해자성에 작게라도 흠결이 생기면 곧바로 피해자를 ‘좋아서 해놓고 이제 와서’, ‘당할 만했는데’, ‘돈 받으려고’ 신고한 무고 피의자로 만들고 낙인을 찍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피해자다움이라는 틀은 가해가 있었다는 사실이나 구체적인 맥락에서 찾을 수 있는 범죄 사실의 본질을 흐리고, 더 나아가서는 가해자에게 명분을 챙겨 주게 된다.


이렇게 피해자성을 근거로 한 판단은 광범위하게 나타나며,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피해자성 고정관념이 피해자에게 주는 또 다른 피해는 무엇이고, 어떤 점이 문제적인 걸까?


피해자성 요구는 가장 기본적으로 2차 피해를 유발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이 정의한 바에 따르면 성폭력 2차 피해란 ‘사건이 일어난 이후 사법 기관, 의료 기관, 가족, 친구, 언론 등에서 보이는 피해자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으로 인해 피해자가 입는 정신적, 사회적, 경제적 불이익이나 피해자 스스로 심리적인 고통을 겪는 것’이다.


피해자성 검증과 그에 따른 2차 피해로부터 비롯되는 더 큰 문제는, 피해자 내면에서 발생한다. 피해 당사자가 오히려 사회가 요구하는 ‘진짜 피해자’의 수행을 체화하면서, 당연히 그 모습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음에도 전형에 맞지 않는 ‘흠결’이 나타나는 자기 자신을 의심하고 억압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경험을 자신마저 부정하는 상황이 된다면 피해자는 더더욱 입을 열 수 없을뿐더러, 그 어떤 타인이 준 상처보다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입에 될 것이다.


이토록 문제적인 피해자다움은 어떻게 힘을 가지게 되었으며, 어떤 사고방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언제부터, 무엇에 의해 공고하게 자리 잡았는지를 아주 정확하게 특정지어 설명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는 것보다는 전문가의 말을 빌려 어떤 의견이 있는지 소개해 보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한국여성인권 진흥원장인 변혜정 씨는 1990년대 성폭력이 ‘여성이 유혹한 결과’라는 왜곡된 통념을 깨기 위해 피해를 강조하던 여성운동의 노력이 오히려 ‘누가 봐도 인정할 만한 피해자’일 때만 성폭력임을 인정하는 구도, 즉 피해자성의 고정관념을 쉽게 대입하도록 만들었다고 보았다.[1]


한편 여성학자 정희진 씨는 여성이 성적 주체이기를 바라지 않으면서도, 남성을 ‘유혹’하는 성적 주체이기를 바라는 이중적인 모순을 지적하면서 남성 주체의 환상 속에서 피해자성 관념이 구성되었다고 말했다.[2] 특히 정희진 씨의 입장에서 젠더 위계질서와 성폭력이 긴밀한 연관을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피해자에게 요구되는 보다 엄격한 잣대는 상대적으로 젠더 권력을 덜 가진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가 많다는 사실과 이어지는 지점이다.


올해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던 #MeToo 운동의 진행 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오래 전부터 계속해서 꾸준히 여성들의 성폭력 말하기가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꼭 따라오는 여론이 있다. 바로 ‘무고’에 대한 이야기이다. 무고죄는 ‘타인을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해 허위의 사실을 신고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으로 형법 제156조에 명시되어 있다. 즉, 범죄 사실이 없는데도 있다고 거짓말하여 신고하는 것이 무고인 것이다.


성폭력 범죄가 벌어지는 상황의 특성상 피해자 증언 외에는 뚜렷한 증거가 없다는 점을 들어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가 거짓말을 하는 거면 어떻게 할 거냐는 의심을 숨기지 않는다. 무고가 아닌가 하는 의심은 언뜻 보면 굉장히 합리적이고 공정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살아가는 사회는 실체 없는 피해자성에 대한 의심이 만연한 곳이다. 그리고 피해자성이라는 것은 현실과 괴리되는 부분이 분명 존재하며, 모든 피해자들의 경험과 일치하는 것이 결코 아니기에 아주 쉽게 무너지는 환상에 불과하다. 피해자를 무고 피의자로 의심하는 과정이 합리적이고 적절했는지, 피해자가 ‘진짜 피해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근거가 문제적인 피해자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유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안희정 전 지사의 1심 선고가 끝난 직후 미투시민행동 끝장집회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에서 김지은 씨는 발표문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왜 제게는 물으시고, 가해자에게는 묻지 않으십니까? 왜 제 답변은 듣지 않으시고, 답하지 않은 가해자의 말은 귀담아 들으십니까?”


이는 안희정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재판부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이기는 하지만, 비단 재판부에게만 적용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김지은 씨가 안희정의 가해 사실을 폭로했을 때부터, 안희정이 기소되고, 재판이 진행되고, 판결이 날 때까지 그리고 지금까지도 김지은 씨를 비난하고 가해자에게 힘을 실어 주던 모든 이들이 들어야 할 말이다.


김지은 씨의 폭로가 있었던 올해뿐 아니라, 아주 예전부터 여성들은 계속해서 성폭력 말하기로 자신의 피해를 말해왔다. 성폭력 피해를 부끄럽게 여기게 하고, 입을 막고, 일어난 범죄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전가시키는 사회에 저항하기 위해. 성폭력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는 피해자의 치유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물론이고, ‘개인’의 잘못일 뿐이라는 결론으로 쉽게 끝낼 것이 아니라 공동체 내부의 집단적인 성찰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와 같은 원활한 개인적-공동체적 회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모두의 무의식 저변에 깔려 있는 피해자성에 대한 환상부터 부수어야 할 것이다. 당신이 떠올리는 피해자는 전부 당신의 환상에 불과하다. 당신 환상 속의 피해자는 없다.


[1] 변혜정 (2009). 성폭력 사건들이 ‘개인화’ 되는 것에 대한 우려. 여/성이론, (20), 216-235.

[2] 정희진 (2004). [REVIEW/진보언론리뷰/월간 『언니네』]'피해자다움'이라는 성역할. 월간말, 195-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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