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온귀
‘섹스’라고 하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학교 성교육 시간의 분위기를 떠올려봅시다. 뭔가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흐르고, 자신도 모르게 귀가 쫑긋해지는 것을 티내지 않으려 노력하곤 했던 것 같습니다. 성(性)은 워낙 은밀하고 선정적인 것으로 포장되어있는 탓에, 여러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섹스’라는 단어가 등장하면 순간 ‘움찔’하기 마련이죠. 그런데 이 ‘움찔’하는 반응들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들 ‘움찔’한다고 해서 다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누군가는 ‘움찔’하면서 ‘섹스’에 대한 이야기가 자신에게로 돌아 올까봐 두려워하는 반면에, 누군가는 ‘움찔’하는 몇몇 친구들과 눈빛을 교환하고 뒤로 돌아서서 ‘섹스’를 논하며 희희덕거립니다. 일반적으로 전자는 여성, 후자는 남성인 경우가 많죠. 그렇다면 여성들은 왜, ‘섹스’ 앞에서 고개를 푹 숙여야 하는 것일까요? 여성은 숨어들고 남성은 유희를 즐기는 상황은 어떠한 문제를 만들고 있을까요?
이 글에서는 여성의 섹슈얼리티, 특히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말할 권리’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섹슈얼리티’라 함은, 우리가 가장 잘 아는 섹스, 성관계뿐만 아니라 유사 성행위, 성욕, 성애, 성적 매력을 포함하고, 넓게는 사회적으로 부여된 성역할과 젠더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굳이 ‘섹스’라고 하지 않고 이 광대한 ‘섹슈얼리티’라는 개념을 끌어온 이유는, 성(性)에 대한 억압을 논할 때 성적인 모든 것이 관련되어 있으며, 그것은 사회가 성에 대해 부여하는 의미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트와이스,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들
매일같이 영화 속에서나 / 책 속에서나 드라마 속에서 / 사랑을 느껴 / Um 사랑을 배워 / … / I wanna know / 사탕처럼 달콤하다는데 / I wanna know / 하늘을 나는 것 같다는데 / I wanna know know know know / What is love / 사랑이 어떤 느낌인지 / … / 만일 언젠가 진짜로 내게 / 사랑이 올 때 난 울어버릴지도 몰라 / Um 정말 궁금해 미칠 것만 같아
- TWICE(트와이스), <What is Love?> (2018)
사회적으로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는 대중가요, 특히 아이돌 산업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국민 걸그룹’ 트와이스를 살펴봅시다. 트와이스는 순수하고 귀여운 ‘소녀’의 이미지를 팀의 매력으로 내세워 많은 인기를 얻고 있죠. 수많은 히트곡들이 있지만, 트와이스의 ‘소녀성’은 올해 초에 발표한 <What is Love?>에서 정점을 찍습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몰라서 영화, 드라마로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하염없이 기다리면서도 진짜 사랑이 찾아온다면 울어버릴지도 모르는 소녀의 모습. ‘섹스, 성욕’ 등의 말들 앞에서 ‘움찔’하고 물러나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외치는 소녀와, 이를 사랑스럽고 귀엽게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 이는 트와이스만의 매력만은 아닐 것입니다. 대중매체에서 여성 연예인의 ‘매력 포인트’로서 흔하게 소비되는 지점이니까요.
# 가인, 욕망을 노래하다
하지 말라고 말하니까 하고 싶다 yummy / 갖지 말라고 말하니까 갖고 싶다 / … / 한 입만 어때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그치 / 혼나면 어때 너도 지금 원하잖아 / … / 우린 손을 잡고 넘지 못할 선을 밟고 boy / 이리 저리 춤을 추고 있어 / 넌 이제 처음처럼 나를 보질 못하지 / 이젠 나랑 떨어질 수 없어
- 가인, <Apple> (2015)
한편에서 또 다수의 여성 연예인들은 자신들의 섹슈얼리티를 솔직하게 표현하고 강조하기도 합니다. 흔히 ‘섹시 컨셉’이라고들 말하죠. ‘선정적’이고 ‘가리지 않는’ 컨셉을 가지고 나오는 가수들에게 사람들은 어떤 평가를 하나요? 대표적으로 가인을 살펴봅시다. 가인은 <Apple>에서처럼 ‘하고 싶다’와 같은 직설적인 성적 표현을 자주 보여주었죠. 동일한 앨범의 다른 곡 <Paradise Lost>의 안무는 뱀의 움직임을 묘사하였는데, 많은 사람들은 ‘너무 야하다’, ‘거부감이 든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야한 것을 떠나서 멋있다’라고 긍정적으로 평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섹슈얼한 코드를 그대로 인정하기보다 그 이면적인 의미를 조명했습니다. ‘이건 야한 게 아니라 행위예술이야’와 같은 말로요.
섹슈얼리티는 그 주체가 어떤 정체성을 가지느냐에 상관없이 매우 일상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하는 행동과 사고는 따져보면 섹슈얼리티에서 떼어놓기 어렵습니다. 성행위 뿐만이 아니라 오늘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는 것, 지나가던 누군가에게 속마음으로 끌림을 느끼는 것까지 모두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일상들이죠. 그러나 사회적으로 ‘섹슈얼리티’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주체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앞의 사례들에서 다루었듯이, 여성들은 섹슈얼리티를 숨기고,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순수한 이미지를 가져야 사회적인 여성성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섹슈얼리티를 당당하게 표현하는 여성들도 많이 등장하고 있지만, 그들을 ‘밝힌다’, ‘거부감이 든다’, ‘걸레다’라며 비난하는 말들도 여전히 많이 남아있죠. 그렇다고 여성들이 섹슈얼리티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권하는 것도 아닙니다. 순수한 ‘소녀성’을 강조하면서도 꾸준히 사회는 여성들을 성적 대상화하고 있으니까요.
<아는 형님> 서현 편에서 강호동씨를 비롯한 남성 패널들은 서현씨에게 ‘너도 사랑을 해봤어?’라고 묻습니다. ‘순수한 소녀시대 막내 서현이는 사랑이라고는 아무 것도 모를 것 같은 이미지인데’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죠. 이에 서현씨가 ‘나도 사랑한 적 있어!’라고 자신 있게 말하자, 남성 패널들은 매우 놀라워하며 사랑의 대상이 누구였는지, 그 느낌이 어땠는지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합니다. 이에 자세한 사실은 말하고 싶지 않던 서현씨가 ‘더 이상 묻지 마!’라고 선을 긋자 김희철씨는 서현씨를 ‘진짜 재미없는 애’라고 깎아내립니다. 여성에게 순수한 이미지를 기대하면서도 동시에 성적 대상화하고, 여성 당사자가 그것을 거부하려는 기미를 보이면 ‘재미없는 여자’라며 욕하는 남성 문화가 절묘하게 나타난 순간입니다.
섹슈얼리티 말하기 권력을 나누는 또 다른 큰 기준이 있습니다. 바로 ‘나이’이죠. 이것은 주변을 한 바퀴만 돌아보면 금세 그 사례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성관계를 묘사한 장면, 또는 유사 성행위를 묘사한 장면이 들어있는 매체들은 대부분 ‘청소년관람불가’ 딱지를 받게 되죠. 청소년들에게 ‘연애 금지’를 강제하는 학교나 가정도 상당히 많고, 간혹 청소년들 사이에 ‘섹스 스캔들’이 터지면 당사자들은 완전히 ‘범죄자’가 되어 이곳저곳을 끌려 다니며 조사를 받습니다. 학교 성교육은 언제나 성(性)을 비밀스럽고 대단한 것으로 포장하고, 많은 성교육 책들은 성관계를 ‘사랑하는 두 사람이 나란히 누워 손을 꼭 잡고 있는’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제재는 딱 ‘스무 살’이라는 시간적인 조건을 넘어서면 무뎌지죠. ‘스무 살’이라는 게 갑자기 변태하는 번데기 같은 것도 아니고, 성년을 기준으로 성숙과 미성숙을 나누는 것은 참 말도 안 되는 논리이죠.
그런데 조금 더 살펴보면, 이 ‘나이’라는 기준은 ‘성별’ 기준과 아주 긴밀하게 얽혀 있습니다. ‘섹스’를 대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생각해봅시다. 남성 청소년들은 섹슈얼리티를 말하지 못하나요? 섹슈얼리티를 말했을 때 ‘방탕한 아이’라며 욕을 얻어먹나요? 남성 청소년들 역시 ‘섹스’를 논했을 때 움찔하며 얼굴을 붉히긴 하지만, 이내 주변의 사람들은 그를 토닥토닥 두들겨주며 ‘다 컸네’, ‘그런 것도 알아야 어른 되는 거지’, ‘남자 다 됐네’ 라며 그의 섹슈얼리티에 고개를 끄덕여주죠. 또 남성 청소년 또래 집단에서는 섹슈얼리티 경험이 자랑거리로 통할 때가 많습니다. 남성 집단에서 ‘나 언제 누구랑 자봤다’라는 이야기는 동경 내지 감탄의 반응을 불러오기 마련이죠. 반면에 여성 청소년들은 어떤가요? 여성이라는 틀에 ‘미성년’이라는 딱지가 하나 더 붙은 이들은 그야말로 ‘정숙한 소녀상’의 정석을 요구받습니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여긴 경우에는 금세 비규범적인 인간으로 내쫓기곤 합니다. 섹슈얼리티 말하기에 있어서 ‘성별’은 ‘나이’ 보다도 더 근본적인 조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겉보기에는 ‘나이’가 가장 큰 조건인 것 같지만요.
<안녕하세요>에 출연(2017.09.05.)한 박지훈씨를 바라보는 패널들의 시선은 남성 청소년에게만 성적으로 관대한 문화를 잘 보여줍니다. 대화 주제가 성관계에 대한 은유로 점점 흘러가자, 이영자씨는 빨개진 박지훈씨의 얼굴을 지적하며 ‘그런 얘기 다 알아듣나 봐요’라고 말합니다. 당시 미성년이었던 박지훈씨는 이에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였지만, 옆에 있던 신동엽씨는 박지훈씨를 품에 끌어안으며 ‘남자답다’라는 ‘칭찬’을 해줍니다. 이에 덧붙여 ‘이영자씨보다 더 많이 안다’라고 말하며 박지훈씨의 섹슈얼리티를 추켜세워 줍니다. 이 장면의 주인공이 박지훈씨가 아니라 여성 청소년이었다면, 과연 신동엽씨를 비롯한 사람들은 여전히 같은 반응을 보였을까요?
그렇다면 대체 누가, 섹슈얼리티를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대부분의 경우에 섹슈얼리티 말하기 권력을 가진 사람은 성인 남성, 특히 사회적인 남성성을 충실히 수행하는 이들입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들을 예시로 들어보겠습니다.
<아는 형님>에 출연한 강예원씨는 ‘집에 돌아올 때 마다 반려견이 배를 보이고 드러누워서 소변을 본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서장훈씨는 ‘누워서 소변을 보면 다시 자기한테 다 튀지 않냐’고 물었고, 강예원씨는 ‘여자라서 그게 발딱 서있지 않아 튀지 않는다’라고 답했죠. ‘여성’ 강예원씨의 ‘그게 발딱 서있지 않다’라는 발언은 매우 대담한 표현이 되어 출연진들을 깜짝 놀라게 했고, 남성 패널들은 웃음을 그치지 않았죠. 후에 강예원씨는 고개를 숙이며 ‘뒤늦게 민망해’하는 반면에, 강호동씨와 김희철씨를 비롯한 남성 패널들은 ‘우리 더 분발하자’라며 더욱 강한 섹슈얼리티 말하기를 다짐합니다.
<아는 형님>에는 재미있는 장면들이 참 많습니다. 이곳의 8명의 남성 출연진들은 남성적인 사회, 남성 공동체의 문화를 너무나 잘 표현해냅니다. 이들에게 연애 경험, 섹스 경험, 첫 키스와 같은 섹슈얼리티 경험은 ‘추억’이자 주요한 이야깃거리이고,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남성 대화 구성원들은 서로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눈빛을 주고받으며 더욱 큰 유대감을 가지게 되죠.
이런 남성 사회에 누군가가 그들의 섹슈얼리티를 지워버리는 발언을 하면, 그 구성원들은 ‘발끈’하며 자신들의 세계를 지키려고 합니다. <아는 형님>에 출연했던 전효성씨가 ‘그런데 남자들은 대부분 몸매에서 섹시함을 못 느끼지 않아?’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의 남성 출연진들의 반응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이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목소리를 높여가며 떼 지어 반박했고, 이렇게 난리가 난 남성 공동체의 모습에는 ‘남자 세계 붕괴!’라는 자막이 붙었죠. ‘남자 세계’는 섹슈얼리티 없이는, 특히 여성을 소재로 하는 섹슈얼리티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것인가 봅니다. 어쩌면 지금 사회에서는 섹슈얼리티 말하기 권력이 곧 남성성과 연결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성성을 가진 사람이 섹슈얼리티를 말할 수 있고, 또 섹슈얼리티를 자신 있게 말하고 때로는 웃음거리로 사용할 수 있어야 진정한 남성성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권력이 한 쪽에 치우치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그 아래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하기 십상이죠. 때로 그 권력이 너무나 당연할 때에는 무의식적으로도 타인의 권리를 빼앗기도 합니다. 권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피해를 입었음에도 너무나 굳건한 권력 구조 때문에 제대로 된 항의조차 하기 어렵죠.
섹슈얼리티 말하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섹슈얼리티는 너무나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것입니다. 일부 집단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에요. 성욕을 느끼고, 성행위를 하고 싶은 의지가 ‘성별’에 따라 누구에게는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없는 것인가요? 주목해야할 것은 모든 사람들의 섹슈얼리티는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각자가 가지는 경험도 모두 다르고, 당연히 그 섹슈얼리티를 말하고 표현하고 싶은 마음도 다 다르죠. 때문에 누구든지 섹슈얼리티를 느끼고 싶은 만큼, 표현하고 싶은 만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앞에서 지적했던 여러 상황들을 좀 더 그럴듯한 말로 묶어보자면 ‘성적 대상화’, 특히 여성들에 대한 성적 대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성적 대상화 자체를 근본적으로 문제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좀 더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기도 하지만, 성적 대상화는 사실 인간관계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니까요.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에 ‘여성’이 ‘남성’에 의해, 스스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성적으로 대상화되는 것입니다. 이는 곧 성적 대상화가 남성 중심적인 권력 관계와 쉽게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성이 쉽게 ‘쟤 예쁘다’, ‘얘 섹시하지 않냐’, ‘나 어제 누구랑 했다’라고 말하는 상황에서는, 그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불쾌감을 느끼거나. 상대와의 관계가 성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협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말하기 권력의 편중은 이러한 불쾌감과 위협을 느꼈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도 막게 만듭니다. 결국 섹슈얼리티 말하기 권력이 편중되는 상황은, 피해자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빼앗는 것과도 긴밀하게 연결되는 것입니다.
# 이지 A, ‘말하기’로 펀치 날리기
이 글을 쓰는 데에 힌트를 주었던 영화 한 편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이지 A>는 ‘남자와 자봤다’라는 거짓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창녀’, ‘학교 분위기를 흐리는 년’, ‘지옥에나 갈 년’으로 욕을 먹으며 외톨이가 되는 올리버(엠마 스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남자와 자봤다’는 명제가 여성 인물 올리버만을 문제시 삼는 가십거리로 퍼져나가고, 많은 남자들이 자신들의 남성성을 회복하거나 과시하기 위해 올리버와의 거짓 성관계를 자랑하고 다니는 동시에, 올리버는 점점 ‘불량 여자’로 낙인 찍혀지는 모습은 앞에서 짚었던 여성들이 처한 문제들과 매우 유사하죠.
<이지 A>에 대한 기억이 꽤나 만족스럽게 남아있는 이유는, 올리버가 자신에 대한 낙인을 헤쳐 나가는 방식 때문이었습니다. 올리버는 ‘낙인에 괴로워하고 움츠러들다가 주변 사람들에 반항하고, 끝내는 회개하는’ 지루하고 고루한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낙인이 심해질수록 오히려‘성적으로 개방되어’ 보이는 옷차림이나 행동들을 과시하고, 전교생들 앞에서 ‘섹시한 노래와 춤’을 선보이며 섹슈얼리티 표현이 ‘별 거 아님’을 보여주었죠. 그럼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올리버가 선택한 것은 결국 ‘말하기’였습니다. 자신이 그동안 겪었던 손가락질들, 수많은 소문들이 만들어지게 된 과정, 그것의 진위를 영화 내내 복기하며 솔직하게 고백하죠. 물론 그 고백만으로 올리버를 욕하던 모든 사람들이 잘못을 깨닫고 생각을 고치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올리버는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말하기’라는 방법으로 끌어내면서 스스로 그 낙인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말할 권리가 없는 상황 때문에 벌어진 그 모든 사단을, ‘말하기’로 정면 돌파하는 모습은 남성 중심 문화에 한 방을 먹이는 것 같은 쾌감을 선사해 줍니다.
물론 이것은 영화이죠. 현실에서 ‘말하기’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말하기’만으로 성적인 권력 관계가 새로이 정립되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땅속에 파묻혀 있는 상황에서 ‘말하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일단 꺼내서 동등한 위치에 놓고 봐야 그 다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요. 결국 섹슈얼리티를 표현하고 향유할 권리는 여성이 스스로 성적인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하고, 이는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고, 성적 피해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동시에, 권력을 가지지 못한 비(非)남성들의 섹슈얼리티 외침은 유구한 문제적 역사를 지닌 남성 중심의 성(性)문화의 구조에 조금씩 균열을 가할 수도 있겠죠.
# 섹스, 그게 뭐 어때서?
만약 계속 꿈꾼다면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을까. 섹스에 관해 여성들이 이야기할 공간은 여전히 너무나 적다. 섹스샵 자체도 너무나 매력 있는 공간으로 다가오지만, 굳이 내가 여성들을 위한 섹스샵을 욕망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여자들끼리 모여 섹스에 대한 각자의 다양한 경험들을 쏟아낼 수 있는 공간. 자신의 욕망과 몸에 대해 생각하고 나눌 수 있는 시간과 공간.
- 『이기적 섹스』, 은하선 (2015)[1]
섹슈얼리티, 섹스. 사실 별 거 아닙니다. 아, 물론 이것의 중요성이나 무게감, 그 의미를 낮추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지금의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는 섹슈얼리티를 ‘별 것’으로 만들어 ‘너는 말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그런 ‘별 것’의 문턱이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말할지 말지는 내 마음입니다. 『이기적 섹스』의 문장을 하나만 더 끌어오겠습니다. ‘남자들이 만들어놓은 프레임’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합니다. 여성들, 더 넓게는 퀴어들을 아우르는 비(非)남성들이 섹슈얼리티를 가지고 수다를 떨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면, 그 공간이 그들만의 공간으로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로 확장될 수 있다면 정말 많은 것이 변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조금은, ‘쉿, 조용히 해 새꺄’라고 윽박지르는 남성적인 사회의 무서운 얼굴이 조금씩은 사라지지 않을까요?
[1] 섹슈얼리티에 대해 스스럼없이 말하는 ‘여성’, 그 대표적인 인물로 은하선씨가 있습니다. 여러 논쟁이 벌어지면서 그녀의 말의 핵심이 가려지고 있습니다만, 그녀는 이전부터 스스로를 섹스 칼럼니스트로 부르며 남성 중심적인 성문화를 비판하고 여성의 성해방을 외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