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온
안녕, 난 세브란스야. 편하게 말해도 되지? 요즘 어떤 아이들이 나에 대해서 말도 안 되는 욕을 하고 다니는 것 같아서, 너희한테 미리 진실을 알려주려고 해. 요즘 너무 답답하고 속이 상해서 손님들 치료도 제대로 못 해주겠어. 내 이야기 좀 잠깐 들어줄 수 있겠니?
내가 누구인지는 알지? 나 세브란스야. 세브란스. 내 이름 못 들어본 친구는 없겠지? 그래, 그 서비스 좋고 의료 기술도 좋다는 병원 세브란스야. 나는 모든 손님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자세로 친절하게 대하면서 ‘국가고객만족도’라는 시험에서도 당당하게 1등을 차지했어. 나는 내 손님들이 정밀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뿐만 아니라, 나에게 찾아올 때마다 만족감을 느낄 수 있도록 내 스스로를 언제나 세련되고 청결하게 유지하려고 정말 노력한단다.
그런데 요즘 이상한 소문이 도는 것 같아. 너희도 들어봤니? 내가 청소노동자들의 권리를 짓밟고 있다는 소문? 그 소문은 사실이 아니야. 나는 정말 억울해. 내가 하나하나 따져볼게.
‘청소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너무 안 좋다’고? 휴일도 거의 없고, 휴게실도 좁고, 안전장비도 부족한데다 임금도 최저임금만 겨우 맞춰서 준다고들 이야기하는데, 그걸 왜 자꾸 나한테 따지는지 모르겠어. 얘들아, 방금 말한 것들이 사실인지 아닌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이건 내가 아니라 내 친구 태가비엠이 책임질 일이야. 태가비엠은 나를 청결하게 유지하는 일을 맡고 있는 친구거든. 나는 태가비엠한테 청소를 부탁한 것뿐이지, 노동자들한테 이렇게 해라 얼마만큼 줘라 한 적이 없어. 만약 그 문제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겠니? 태가비엠도 나름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일 텐데, 내가 이래라 래라 시키기도 곤란하잖아. 태가비엠은 내가 정말 신뢰하는 친한 친구야. 태가비엠이 열심히 일해준 덕분에 내가 1등 병원이 될 수 있었을 거야. 태가비엠이 조금 잘못한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게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 어쨌든 결과적으로 나 세브란스가 이렇게 명성을 얻게 되었는데. 태가비엠의 행동은 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조합할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뭐, 민주노총에 소속된 노조원들이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내가 계속해서 노조를 와해시키려고 했다는데. 내가 한 일이 아니라고 발뺌하고 싶지만, 증거들이 튀어나와서 어쩔 수 없네. 그래, 인정할게. 내가 태가비엠과 함께 노동조합을 멋대로 휘저은 건 사실이야. 그런데 얘들아, 그건 나 세브란스의 미래를 위한 것이었어. 내 손님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수단이었다고. 너희들 혹시 리더가 되어 본 적 있니? 조장이든, 반장이든. 사람들이 널 두고 저마다 할 말 다하고, 각자 챙길 거 다 챙겨 가면 전체가 효율적으로 굴러가기 힘든 거, 경험해 봤지? 나도 마찬가지야. 단골손님 유지하고, 새로운 손님 모셔오기도 바쁜데 어느 세월에 청소노동자들, 노동조합 이야기까지 다 들어주고 그 사람들 요구에 고개 끄덕여주겠니? 게다가 그 사람들, 한 번 이야기 들어주면 해달라는 게 끝이 없잖아. 겨우 합의 봐서 임금 조금 올려주고, 휴식 시간 조금 만들어주면 바로 다시 그것도 부족하다고 아우성 칠거라고. 그러니 아예 처음부터 목소리 못 내게 확 잡아야 병원이 돌아갈 수 있지. 안 그러겠어? 게다가 그 사람들 임금 올려주고, 잘 쉬게 해주는 것도 다 내 돈 들이는 거잖아. 거기다 돈 쓴다고 손님들이 더 오겠니? 난 그렇게 돈 쓰는 게 너무 아까워. 그 돈으로 날 더 고급스럽게 치장해야 손님들이 나한테 반해서 자주 올 거 아냐? 그리고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야. 내가 한번 그 사람들 말 들어주면, 내 주변 병원들이나, 나랑 비슷하게 골칫덩이가 있는 다른 회사들도 내 눈치 보고 손해를 감수해야 한단 말이야. 나는 전혀 청소노동자들 요구를 들어줄 상황이 아니라고.
이제 좀 공감이 가니? 너희들이 내 상황과, 내 존재를 잘 이해해주면 고맙겠어. 나 세브란스는, 동네 꼬마 병원들이랑은 달라. 나는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가장 크고 아름다운 병원이야. 나는 ‘1등 병원’이라는 내 별명과 내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 내 고귀한 손님들을 지키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어. 앞으로 나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가 들리거든 절대 듣지 말고, 혹시 아프면 언제든지 나에게 찾아오렴. 나는 아픈 손님들에게는 언제든지 열려 있단다. 아, 나와 뜻이 맞는 것 같다면 나와 함께 일할 동료가 되어보는 것도 좋아!
-대한민국 1등 병원
세브란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