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편집위원 이해
최근 방송계의 트렌드에서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 장르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이란 말 그대로 ‘날것의’ 연애를 다룬 프로그램으로, 처음 만나는 남녀가 서로를 탐색하고 특정한 상황 설정 속에서 호감을 확인하는 이성애 중심의 예능 컨텐츠이다. 과거 ‘짝’ 시리즈로 한국에 정착했던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은 2017년 [하트 시그널2]의 흥행으로 제 2의 전성기를 맞았다. 2022년만 하더라도 20개가 넘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이 등장했으며, 수많은 인터넷 커뮤니티는 참여자의 인적사항과 그들의 ‘플러팅’에 대한 게시글로 가득 찼다. 이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끈 일반인들은 새로움과 친근감을 동시에 살려 ‘연반인’ 카테고리로 연예계에 데뷔하기도 한다. 이처럼 국내 연애 예능 시장은 많은 사람의 이목을 사로잡으며 꾸준히 상승세를 보인다.
대한민국에 ‘연애 프로그램 열풍’이 부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러한 ‘짝짓기’ 프로그램들이 다시금 큰 인기를 얻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급작스럽게 도래한 국내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시장의 부흥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최근 인기를 끄는 연애 프로그램들이 화제를 얻은 요인을 살펴보며, 그 기저에 깔린 소비자들의 니즈를 파악해 보려 한다. 연애 예능 시장의 성장을 단순한 방송사의 성공으로만 규정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이러한 현상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2030 젊은이들의 ‘연애 생활’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을지 알아보도록 하자.
‘관찰형 예능’ 형태를 띠고 있는 요즘의 연애 프로그램들은 대체로 일정한 패턴을 따르고 있다. 일반인 남녀 참가자들을 한 공간에서 생활하도록 하고, 그들의 행동을 사전에 설치된 카메라의 포커스 전환을 통해 주시하는 형식이다. 참가자들은 프로그램 안에서 서로를 알아가고 데이트를 즐기며 각자의 감정을 발전시킨다. 예를 들어, tvN에서 성황리에 방영한 [하트 시그널 시리즈]의 출연진들은 ‘시그널 하우스’라 명명된 특정 숙소 안에서 약 한 달간 합숙하며 다른 참가자들과 교류한다. 일부 프로그램에서는 참가자들이 특정한 미션을 수행하거나, 게임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갖기도 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러한 연애 프로그램들이 단순한 관찰 형식으로 그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 것에서 벗어나, 그들의 내면 감정을 최대한 담으려 한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하트 시그널 시리즈]에서는 사전에 촬영된 일반인 출연자들의 영상을 보며 '러브 라인'을 추측하고, 이후에 누가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를 예측해 보는 '예측단' 패널이 존재한다. 이들은 각 참가자의 말과 행동을 자세히 분석하여, 그들이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단서를 알아내려 노력한다. 정신과 전문의를 포함한 패널들의 분석을 통해, 시청자들은 그들이 어떤 심리 상태를 가지고 있을지 추측하며 이후의 러브라인을 함께 예상해 보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이러한 추리 과정에 참여하면서 출연진들과 직접 교감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또한 ‘후속 인터뷰’ 형식을 채택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들도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에서 제작한 연애 예능 프로그램인 [솔로지옥 시리즈]는 인상적인 촬영분 사이사이에 해당 장면 속 참여자들의 인터뷰를 병치하며, 그들이 그렇게 행동한 이유와 당시의 감정을 전달하기도 한다. 이는 시청자들이 출연진의 감정과 상황에 더욱 공감하고, 그들의 만남 과정에 최대한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연출 중 하나이다.
평균적으로 2주가 채 되지 않는 촬영 기간에도 불구하고, 연애 리얼리티 예능은 이성을 대하는 남녀의 설레는 감정을 최대한 재현하려 노력한다. 특히 리얼리티라는 장르에 걸맞게 여과 없이 출연진의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하려는 연출이 돋보인다. 이는 작년에 방영된 [환승연애 2] – 이미 헤어진 연인들이 출연하여 새로운 만남(혹은 재결합)을 시도하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 에서 큰 화제가 되었던 장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전 애인이 다른 이와 데이트를 하러 나가는 장면을 목격한 출연자가 화장대 앞에서 울음을 참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끌어내 많은 인기를 끌었다. 또한, 해당 [환승 연애 시리즈]는 출연진들이 말다툼하는 과정을 촬영한 영상을 이용하여 그들의 감정선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연출을 선보였다. 이에 시청자들은 ‘내가 저 자리에 있는 것 같다’, ‘내가 겪은 갈등이 생각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촬영 방식들은 매체 속 등장인물들의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 주어 시청자들이 그들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장치로써 활용되었다.
연애 리얼리티 예능들은 참여자가 본인의 감정을 진솔하게 털어 놓는 인터뷰 장면 및 리얼리티 특유의 현장감을 날 것 그대로 전달하려는 연출 등의 시도를 통해 ‘진정성’을 어필한다. 시청자들이 보고 있는 것이 대본으로 이루어진 픽션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는 현실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그들이 출연진의 상황과 감정에 최대한 깊게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현재 유행하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의 출연진이 대부분 일반인이라는 점 역시 그 이유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겠다. 연애 리얼리티 예능의 소비자들은 연예인처럼 먼 존재로 느껴지지 않는 일반인들의 모습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며 그들의 연애 과정과 감정, 갈등에 이입한다. 출연진들의 입장에 서서 본인이라면 어떻게 행동할지 생각하고, 이를 자신의 연애 경험과 비교하기도 한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소비자들로 하여금 본인의 연애 가치관을 되돌아보고 이를 타인과 공유하도록 만드는 하나의 장을 마련한다는 해석도 존재한다.[1] 다시 말해서, 시청자들은 프로그램 속에서 생생하게 다가오는 일반인들의 연애에 깊게 공감하며 본인의 연애 경험과 가치관을 성찰하는 모습을 보인다. 로맨스 드라마나 멜로 영화와 달리, 연애 리얼리티 예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다.
그렇다면 최대한 ‘현실적’으로 연애의 모습을 보여 주어 많은 ‘공감’을 산다고 여겨지는 이러한 리얼리티 예능 시장의 성장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최근 도래한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전성시대’를 다방면으로 해석하는 연구들이 등장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연애 프로그램을 보는 행위가 꼭 시청자 자신의 연애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연애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이유에는 분명 설렘을 느끼고 싶다는 소비자의 욕구가 내재하여 있으나, 이들은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연애를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연애 예능이 현실적으로 어렵게 다가오는 연애에 대한 ‘대리 만족’의 요소로 소비되고 있다는 뜻이다.[2] 수많은 통계는 과거에 비해 요즘의 젊은이들이 ‘비연애’를 추구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23년 6월 이루어진 인식 조사에서 절반 세대(2001~2004년생)의 74%가 ‘현재 연애를 하지 않고 있다’라고 답했다. '한창' 나이라고 불리며, 연애 사업에 전념할 것으로 보이는 젊은 층의 단 26%만이 연애를 하고 있는 셈이다.[3] 작년의 ‘저출산 인식조사 제1차 토론회’에서 발표된 '젊은 층의 연애, 결혼, 성에 대한 인식'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5.5%가 연애를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 중 본인의 의지로 연애를 하지 않는다는 응답자는 70.4%에 달했다.
자발적으로 연애를 택하지 않은 이들이 과반수를 차지함에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연애 프로그램들이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다. 많은 젊은이가 최대한 현실적이고 생생한 연애 예능을 추구하면서도 가장 현실적일 본인의 연애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앞서 언급한 인식조사의 후속 질문인 ‘연애를 하고 싶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응답자의 58.2%가 ‘여유가 없어서’를 가장 높은 비율로 답변했다. 이는 그들이 본인의 경제적, 정서적 상황이 연애할 정도로 여유롭지 않다고 판단했다는 점을 짚는다. ‘연애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전성시대’에서 윤복실은 경기 침체와 부의 양극화로 인해 ‘N포 세대’로 위치하게 된 오늘날의 청년 세대가 연애에 따른 감정 소비를 원치 않게 되었으며, 불확실한 미래를 살게 되면서 책임을 필요로 하는 기존의 연애 관념으로부터 탈피하려 했다고 분석하였다.[4]
또한,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이 하나의 방송 트렌드가 되어 가고 있음에도 ‘현재 연애 중’인 커플들의 서사를 다루는 예능은 그 수와 화제성이 몹시 적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현재 인기 있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하트 시그널], [솔로지옥] 시리즈 등은 ‘연애’ 그 자체가 아닌, 대부분 연애를 시작하려는 남녀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최근 성황리에 진행되는 연애 프로그램 트렌드의 주축이 될 만한 단어는 ‘썸’이 아닐까 싶다. ‘썸’이란 아직 연인 관계는 아니지만 서로 사귀는 듯이 가까이 지내는 관계를 의미하는 신조어다. 언급한 작품들은 현재 연애 중인 이들의 이야기가 아닌 처음 만난 이성끼리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은 매번 다른 사람과 데이트를 즐기기도 하며, 마음에 드는 상대를 바꿔 지목하기도 한다. 프로그램의 마지막에서 ‘최종 커플’로 이어진 이들조차 종영 이후 연애 관계로 발전해 나가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현실성과 진정성을 어필하는 리얼리티 컨텐츠로서는 다소 가벼운 끝마무리로 느껴질 수 있는 무게감이다.
다양한 연애 프로그램들이 쏟아지는 과정에서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가져올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경계하는 시각 역시 등장하고 있다. ‘리얼리티’를 표방하고 있으나, 시청자들이 보는 장면은 결국 전문가들에 의해 고도로 편집된 연출이라는 사실이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TV 프로그램의 궁극적인 목표는 결국 화제성을 얻고 최대한 높은 시청률을 확보하는 것이다. 최근 유행하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역시 화제성을 위해 인기를 끌 장면들을 재구성해 내는 과정에서 도리어 ‘가벼움’을 조장할 수도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출연자들이 함께 지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의 모습을 몇 주간 지속해서 보여 주고, 그들이 가진 호감을 과장하며 감정을 부풀리는 편집 기법들이 그 예시가 될 수 있다. 또한, 연애 프로그램이 사랑을 대하는 태도가 연애에 대한 왜곡된 가치관을 갖도록 유도한다고 보는 이들도 존재한다.[5] 연애 프로그램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시청자들은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보여주기식 연애’를 추구하는 사회로 유도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6] 리얼리티 연애 예능들이 시청자에게 주는 영향에 대해 다룬 논문들 역시 이 점을 짚는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몰입 및 지속시청 의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한 연구는, 연애에 대해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기대를 하는 소비자일수록 해당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에 더 몰입하게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7] 이는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이 그들에게 오히려 하나의 비현실적 판타지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모든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출연진들은 철저히 수요와 공급 논리가 부여된 ‘연애 시장’의 구조 아래에서 움직인다. 은연중에 출연진의 외모와 스펙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며, 누구에게도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은 벌칙을 받는 등 다른 이성의 마음을 얻는 것이 점수 형식으로 환산된다. ‘현실’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어폐가 있는 모습들이며, 우리가 살아가야 할 현실 속 세상으로 치부하기에는 지나치게 자극적인 설정들이다.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의 시청이 사랑스타일에 미치는 영향’에서 진행한 설문 조사는 이러한 프로그램이 가져올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나는 애정관계들을 꽤 쉽고도 신속하게 끝낼 수 있다’, ‘나는 몇 명의 상대들과 사랑의 게임을 즐긴다’와 같은 문항에 ‘매우 그렇다’를 표기한 이들의 비율이 연애 프로그램 시청 이후 높아졌다는 점은[8] 이러한 컨텐츠가 젊은 층이 연애관계를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현재 인기를 끌고 있는 연애 예능은 분명 ‘트렌디’하다. 어쩌면 이는 연애의 진중함이 주는 부담에서 벗어나 ‘썸’이 주는 자유를 느끼고 싶은 젊은 층의 욕구를 투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합의된 가벼움을 매체로써 즐기는 행위는 책임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이들에게 하나의 위안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위적인 세트장 위에 일반인 출연진들을 배치하여 촬영한 영상들을 ‘리얼리티’라는 이름으로 송출하는 행위는, ‘현실적’이라는 단어가 주는 책임을 지나치게 간과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제작진들은 방영 기간과 비교하면 몹시 짧은 촬영 기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프로그램 내부에 여러 연출적 장치를 설정해 두었다. 이러한 세트장 안에서 일반인 출연자들이 주고받는 호감과, 그들이 서로 연애를 ‘시작하려 하는’ 과정은 모두 시청자의 흥미를 끌 수 있도록 컨텐츠화되고 있다. 가볍게 볼 수 있는 장르이지만, 현재 연애 프로그램들이 우리나라의 방송계에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 가볍지 않다.
[1] 최민지, "연애 예능 전성시대, 우리가 ‘남의 연애’를 보는 이유", 경향신문, 2022.10.30. https://m.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210301444001#c2b
[2] 이승연, “남의 연애에 과몰입 중입니다”...연애 프로그램 전성시대", 매일경제, 2022.10.21., https://www.mk.co.kr/economy/view.php?sc=50000001&year=2022&no=932598
[3] 박지영, "우린 연애세포 없는 초식남녀... 20대 초반 26%만 연애 중", 한국일보, 23.06.13,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3061001050005835
[4] 윤복실, 「연애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전성시대」, 『미디어 이슈&트렌드』 58호,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2023.
[5] 김가현 외, "연애 리얼리티 전성시대, ‘요즘것들’의 사랑법:", 홍대신문, 2023.03.21, https://hiupress.hongik.ac.kr/news/articleView.html?idxno=10098
[6] 마크로밀엠브레인, 「연애 예능 프로그램 관련 인식 조사」, 22.03.
[7] 공유경 외,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몰입 및 지속시청 의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연구」, 『한국 콘텐츠학회 논문지』 23권 3호, 한국콘텐츠학회, 2023.
[8] 최미경,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의 시청이 사랑스타일에 미치는 영향」, 한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