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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69호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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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편집위원회 Mar 08. 2024

여기, 그대로, 애매하게

편집위원 비상

*직접적인 퀴어 혐오발언 및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으니 열람에 주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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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1학년 비상이는 키배[1]를 뜨고 있다. 계정의 프로필 사진에는 둥글게 트랜스젠더 플래그가 둘러져 있다. 트위터에서 젠더퀴어[2]임을 밝히고 비슷하게 퀴어인 사람들과 교류하던 비상은 하루에도 몇 번씩 (자칭)[3] 래디컬 페미니스트와 시비가 걸려 말싸움을 하곤 했다. 그날 비상이 키배를 하던 이유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대로 워마드[4]의 ‘워념글’[5]을 정독했는데도 그들의 이야기가 납득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다들 페미니즘에 ‘젠신병자’[6]들은 딱히 도움이 안 된다고 그랬다. 트랜스젠더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여성인권 신장에 해가 된다고 그랬다. 비상은 납득이 안 됨과 동시에 이게 진짜면 어쩌나 싶어서 페미니즘 쪽에 누는 안 끼치고 싶은데 일단 트랜스젠더는 하고 싶은, 존재의 아픔 같은 걸 겪고 있다. 비상만이 아니라, 비상의 트위터 친구들도 모두 맨날 키배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비상은 사실 페미니즘 그런 거 잘 몰랐다. 대충 좋은 거라고는 하는데 나한테 저렇게 시비를 터는 걸 보니 일단 대다수가 개새끼 같다. 비상은, 그냥 여자 할걸, 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다시 이 짜증을 분노로 풀어내며 트위터의 답글로 욕을 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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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2학년 비상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비상이 살고 있는 바로 그 동네가 싫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비상은 메갈[7]로 ‘각성’했다. 페미니즘 그런 거, 이제는 중학교 때보다 더 알게 되었다. 그래서 페미니즘 동아리 같은 걸 만들어보려고 하다가 여러 인물에게 혼이 났다. 그래도, 교실의 반은 터프한 TERF[8]인 여기서 페미니즘 동아리 안 한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공부를 했다. 비상은 여학생과 남학생이 완벽히 분리되어 있고, 교칙이 아주 엄격하여 여학생은 치마 교복만을 입어야 하는 이 지역이 싫었다. 부모님에게 자퇴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서울도 천국은 아니겠으나, 대충 다른 길이 펼쳐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어제는 비상의 친구가 인터넷에서 본 재밌는 글이라면서 ‘트랜스지구’[9] 이야기를 해줬다. 비상의 마음속에서 그 친구는 절교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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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교 새내기 비상은 문우편집위원회에 들어갔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진학하는 데 성공하고 나서, 편견 없는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동아리들에 대해 인터넷으로 조사를 거쳤고, 문우에서 집필된 글들의 주제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심지어 동아리 소개도 다음과 같았다. “문우에서는 페미니즘, 퀴어, 노동 등 각종 소수담론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며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많은 부조리를 마주함으로써, 우리 앞에 주어진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갑니다.” 이곳에서는 그래도 내 정신병 가득한 머리가 좀 더 맑아지지 않을까 기대했다. 비상은 최대한 문우에서 소개해주는 여러 행사와 업무에 열심히 참여하려 노력한다. ‘조각보’ 같은, 트랜스젠더와 연관된 단체들에 눈독을 들였다. 퀴어에 관한 이야기가 자유롭게 오가는 동아리 모임의 현장을 보며 감격했다. 차라리 퀴어 동아리를 들어갔어야 하나 싶지만, 비상은 딱히 프라이드[10]가 크진 않아서 그냥 퀴어임을 인정해 주고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동아리가 좋다고 생각했다. 휘휘 둘러보니 다들 똑똑해 보였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1      


  대학교 3학년 비상은 여전히 문우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편집장이다. 돌아보자니 나아진 게 있는데, 나아진 게 없는 것 같다. 아직도 정신병에 시달리고(물론 셀프 진단이다) 학교에 아는 트랜스젠더도 딱히 없다. 저 논바이너린[11]데요, 라고 소개도 여러 번 하게 됐고 그리 험악하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살게 된 건 너무 좋다. 또 SNS에서 TERF 유행이 지나가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그래도 여전히 비상은 눈에 거슬리는 발언들을 보았고, 눈물을 흘리...진 않았고 화를 냈다. 달라진 것이라면, 지금 비상의 SNS는 중학교 때부터 수많은 가지치기와 절교를 반복하며 형성된 혐오발언 청정구역으로, 안락한 친구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뭔가 찜찜하다. 살아가는데 맨날 화가 나고 짜증도 난다. 공부를 더 해서 해소하기에는, 생각보다 비상은 공부를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고 온갖 학술적 언어가 없는 사람도 퀴어 이야기할 수 있다고 반항하고 싶어졌다. 인터넷 세상은 더럽다고 화를 낸다. 어차피 가족이나 여러 주변인에게 나는 여자다. 수술비나 모아야지, 취업 생각을 한다.



영점으로     


  3학년을 끝낸 지금의 나는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내 정신에 많은 영향을 미친 문제적 사건들을 아직 가끔 곱씹는다. 그중 일부는 분명 나의 섹슈얼리티와 관련되어 있다.    

  

  나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상당히 빨리 시작한 편이다. 트랜스젠더 여성과 트랜스젠더 남성, 그리고 동성애자만 알던 매우 어렸을 때의 나는 내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퀴어라는 부류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었다. 하지만 묘한 갑갑함은 사라지지 않아서, 인터넷에서 이 이상함에 대해 검색을 거듭했다.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접하고 나서야, 트랜스젠더에 여성과 남성만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여성도 남성도 아닌 게 내가 겪고 있는 ‘문제’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 접한 논바이너리라든지, 젠더퀴어라든지 하는 정체성은, 솔직히 “이거네!” 싶기는 했지만, 구원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냥 너무 낯설었다. 처음 접해서 그렇겠지 싶었으나, 사실 지금도 그런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이 정체성은 너무 애매하다. 퀴어 이슈에 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웬만해서 논바이너리나 젠더퀴어라는 용어를 아는 지금도, 결국은 그 뜻에 대한 이해 없이 이름만 아는 것 뿐인 경우도 왕왕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용어를 들어본 적이 없고, 이런 용어가 지칭하는 존재에 대해서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당사자가 된 나조차도 그랬으니까. 심지어 나는 아웃팅[12]을 당해도 심각한 수준의 불링[13]을 당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게 뭔지 다들 몰랐으니까. 그래서 언제나 나에 대해 설명하기가 너무 애매했다.

  어딘가에 속하기도 애매했다. 나의 ‘문제’는 성정체성이었기 때문에, 여자인데 여자를 사랑해서 고통받거나, 남자인데 남자를 사랑해서 고통받는다는 등의 성지향성의 문제와는 결이 달랐다. 당연히 연대의 가능성은 열려 있으나, 본인을 동성애자라고 정체화한 사람에게 나의 문제를 설명하고 서로 공감하는 것에 어느 정도 어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성정체성의 ‘특이함’으로 문제를 겪는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게 되었다. 비교적 그 존재가 널리 알려져 있는 트랜스젠더라는 용어는 지정성별[14]과 성정체성이 다른 사람을 이야기하는데, 그래서 따지자면 논바이너리나 젠더퀴어의 경우도 트랜스젠더에 포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트랜스젠더가 모인 커뮤니티에 소속되어 보려고 해도, 트랜스젠더 대부분은 본인을 지정성별 남성인 여성 혹은 지정성별 여성인 남성으로 정체화하고 있었다. 꼭 트랜스젠더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인터넷 검색을 열심히 하기 전의 나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제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인 것 같아요” 혹은 “제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인 것 같아요”만 있다고 알고 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두 쪽 모두에 해당하지 않아서, 사람들 사이에서도, 퀴어들 사이에서도 어떤 식으로 나의 존재를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에 빠졌다.     


  그런 내가 만난 것이 2010년대 중후반 휘몰아친 온라인 페미니즘의 광풍이다. 한국의 여성들은 불이 붙은 듯 분노하고, 당연하게 여겨졌던 일들에 이것은 여성혐오라고 소리쳤다. 인터넷상에서는 연일 온갖 혐오에 대한 고발과 저항이 이어졌다. 당시의 나는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나의 섹슈얼리티에 대해서도 아는 게 많이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지정성별 여성인, 자신의 성별이 뭔지 잘 모르는, 그러나 인터넷을 열심히 하던 사람이었고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의 물결에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당시의 대중적 페미니즘 담론이 피력하던 많은 문제의식은 나의 삶과도 크게 맞닿아 있었다. 어찌 되었든 나는 누군가 척 보기엔, 행정상으로는, 주변인들 사이에서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절에 페미니즘의 깃발 아래 모인 엄청난 대중의 관심과 동력은 나 같은 사람까지 생각하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내가 체감하기로는, 이런 현상은 워마드 개설 당시 극에 달했다. 내가 느끼는 문제들은 항상 특정한 형태로 상정된 여성주의라는 대의에 밀려날 수밖에 없는 ‘지금 당장 중요하지 않은 것’이었다. 혹은 헛소리였다. 여성주의를 위해서라면 퀴어 인권을 버리는 것이 당연하다거나, 트랜스젠더의 존재는 인정할 수 없다는 등의 말을 나는 페미니스트라 자칭하는 사람들의 글과 입을 통해 직접 들었다.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의 발화에서 여자로 인정받는 것은 인정받은 이와, 인정하는 이에게 안정감을 준다. 또한 해당 발화가 이루어지는 관계 및 공동체에도 안정감을 준다. 그런 이들의 발화에서 나는 위협을 가져다주는 적이거나, ‘우리 편’인데 단단히 착각 중인 불쌍한 존재였다. 

  보통 위의 흐름을 주도한 사람들은 워마드의 게시판에만 머무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터넷 커뮤니티를 떠돌며 퀴어 당사자를 조롱하고 불링했다. 이 흐름은 마치 페미니즘에 퀴어를 배제하고 혐오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는 듯한 인식을 심어주었고, 그 인식은 인터넷을 넘어 오프라인 세상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당시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혐오적인 말이 공공연히 떠돌던 나의 학교는 가장 벗어나고 싶은 끔찍한[15] 곳이었다. 지금도, 그 시절을 지나며 혐오발언을 용인해 온 페미니스트 아닌 페미니스트들의 머릿속에는, 퀴어 혐오가 선택지로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또 나를 애매하다고 생각했다. 여성으로 등록되고 길러져 여성으로서의 당사자성이 있는데도, ‘지금 당장 중요한 게 아닌’ 이야기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대화에 끼기 애매했다. 내가 이 논의에 참여하는 게, 어떤 대의를 위해서는 걸리적거린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분명 여자로 사는 게 얼마나 억울한지 알고 페미니즘이 당장 필요한 사람인데도. 그래서 페미니즘을 접한 뒤로 여러 가지 말말말을 쏟아냈지만, 나는 아직도 ‘나만의’ 의제를 꺼내올 때 다른 페미니스트들의 눈치를 본다. 여성주의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퀴어를 포함한 이런저런 소수자 혐오를 지양하자고 말할 때면 솔직히 무섭다. 말해 마땅한 말이었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다들 이건 ‘너의’ 의제이지 페미니즘의 주안점은 아니라고 이야기하며 또 불링을 시작할까 싶어서 무섭다. 그래서 모순적이게도 나는 가끔 ‘여자’로 여겨지고 싶다. 페미니즘 이야기를 할 때 묘한 눈치를 보고 싶지 않고, 사람들에게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때부터 나는 미치도록, 애매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래서 ‘무결한 여성주의자’로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여자가 되려고 노력해 보았다. 그러나 이 글을 썼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그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쪽에서 애매하지 않아 보려고 애썼다. 페미니스트들(정확히는 소수자와 연대하지 않는 여성주의를 꾸려나가려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면, 멋진 퀴어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당하게 깃발을 휘날리고, 누가 봐도 부러울 만한 삶을 사는 자신감 있는 퀴어가 된다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게 될 리가 없었다. 일단 내 정체성은, 설명해 봤자 비웃음거리가 되기 일쑤였다. 애초에 나는 그렇게 자신감이 없다. 이런 당당함을 시도할 여력도 당연히 없었다. 원래도 멀쩡하지 않았던 정신은 더 혼란스러웠다. 간신히 연이 닿은 퀴어들은 잔혹한 세상과 쏟아지는 불링 속에서 죽고 있었고 그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오래 살아있었다. 그게 참 어색하게 느껴졌다. 어디 시위라도 나가고 하기엔, 나는 겁쟁이였고 동시에 수도권에서 먼 지방 중에서도 구석탱이에 사는 외딴 지역의 퀴어였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무력감에 시달렸다. 이래저래 갑갑한 일들이 건강에도 문제를 발생시킨 것일까, 몸도 일 년에 몇 번씩은 쓰러질 정도로 멀쩡하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면 며칠이면 회복하는 수술도 꼬박 한 달은 누워 지내야 했다. 그런 경험들을 거듭하다 보니, 원래는 탑수술[16]을 할까 했는데 수술 한 번 잘못했다가 언제까지 아픈 상태로 살아야 할지 무서워졌다. 탑수술을 해내고 당당하게 나서는 몸을 상상하기에는 나는 아프고 돈을 모으기도 벅차고 사실 그렇게 간절하게 수술을 원하지도 않는다. 

  물론 나는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든 퀴어들을 응원한다. 그런 퀴어의 존재 덕분에 나도 위안을 얻고, 나에 대한 마지막 긍정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 모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언제나 무력해진다. 여기서도 실패한 나는 또다시 나를 애매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동시에 그 애매함이 너무나 싫어졌다. 대의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당당하게 살아내지 못한다면, 나는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그런 시간들이 계속되니 나는 프라이드를 잃었다. 예전에는 여러 퀴어 관련 용어들을 알아보고 이래저래 나에게 수식어를 붙였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냥 귀찮기만 하다. 비퀴어가 되고 싶다는 말은 아닌데, 퀴어가 아니었으면 했던 적은 아주 많다. 나의 퀴어 정체성에 관해 직접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포용적인 자리에서도 가끔은 논바이너리라는 단어만 뱉고 대화의 주제를 빨리 넘어가고 싶다. 프라이드를 잃은 배경에는 여기에 더해, 아마도 당분간 계속해서 아픈 사람으로 살아갈, 가끔 건강하라는 말이 부담스러운 내가 있다. 또 여성주의에 맘 편히 가담하지 못하는 내가 있다. 퀴어들 사이에서도 공감을 쌓기 힘들었던 내가 있다. 외딴곳에 살며 비웃음 당하던 내가 있다. 정신과에 간절히 가고 싶은 내가 있다.

  물론 내가 모든 것을 잃었다는 말은 아니다. 힘든 순간을 버티게 해 준 고마운 유형 또는 무형의 대상들이 있었고, 지금은 살아서 대학에서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나의 섹슈얼리티는 처참하다. ‘처참하다’를 풀어 설명하자면 확신이 없고, 어디 내세우기 부끄럽고, 앞으로 나에게 지금보다 더 긍정적으로 느껴질 것 같지도 않다는 말인데, 이게 최선의 설명 같으나 찜찜함이 남는, 하지만 어떻게 더 설명하기 어려운, 거북한 단어다. 정체성에 대한 공감 및 이해의 부족과, 공동체의 부재와, 혐오의 흐름과, 정신과 신체의 무너짐과, 자잘하게 설명하지 않은 여러 환경들로 나의 섹슈얼리티는 애매하고도 황당해졌다. 다들 당당해 보이고 확신이 있어 보이는 와중에 나는 구석에서 그냥 욕이나 하는 음침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이 모습으로 살아가기로 한 이유를, 아니 마지못해 살아있던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애매함 때문이었다. 

  나와 같은 형태가 아니더라도, 가끔 나는 스스로를 애매하다고 칭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고민의 형태는 다양했다. 자신이 페미니스트가 아닌 것 같다거나, 자신이 이런 퀴어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것 같다거나, 여러 성별이나 여러 사람을 사랑하는 자신을 이래저래 퀴어를 비롯한 타인에게도 납득시키기 어렵다거나, 자신의 투쟁 아닌 투쟁의 삶이 너무나 사소하고 보잘것없이 느껴진다거나.... 이런 모든 고민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 힘이 되었다. 애매한 것은 애매하다는 그 속성 자체 때문에 존재함을 확인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 존재를 어렴풋이 확인해 내는 순간들은 기가 죽은 나에게 반발심을 주었다. 애매하다면, 그래서 뭐? 

사실 정체성의 모든 면에서 확신을 가지기는 쉽지만은 않은 듯하다. 그리고 그런 확신이 특히나 어려운 나와 내 주변 사람들 같은 존재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리저리 사회의 정상성에 떠밀리게 하고, 집단의 기준과 이상에 치이게 하고,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히게 하는 이 세상에서는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어중이떠중이가 되는 존재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그런 맥락에서 발생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애매함’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꼭 퀴어 이슈와 연관되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런 애매함은 세상이 더 따스해지고 나아질수록 덜 애매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세계가 멀게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애매한 우리는, 우리를 애매하게 만들어버리는 이 세상을 헤쳐나가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그래서 나의 경우에는 오만 생각을 다 하다가 욕심쟁이가 되었다. 안정적인 삶과 다양한 사람들과의 융화를 위해 여자도 가끔 되고 싶고, 그렇다고 여자는 되기 싫다. 탑수술 등의 의학적 처치가 간절하고 긴급하다기보다는, 나의 정체성에 대한 진정성 증명으로 의학적 처치를 ‘사용’하고 싶어한다. 동시에 그렇게 하기에는 겁이 난다. 프라이드도 없다. 

  하지만 그게 무슨 죄인가? 나는 그냥 여기 있을 뿐이다. 나도 아직 나를 애매하게 만드는 이 세상을 살아나갈 비책 같은 건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하고 싶은 말은, 나는 애매하고 애매한 사람들이 자신의 애매함과 관계없이 그 자리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다른 애매한 존재들의 존재 그 자체와, 타인의 애매함과 마주치는 순간이 이런 삶에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우리 참 애매하구나, 하면서 하하 웃거나 엉엉 우는 순간순간이 소중하다고 믿는다.     


      

1, 2, 3, 숫자를 무한히 세보자  

   

  언제나 나에게는 내일이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내일이 있다면, 좀 살만할지도 모르고, 아플지도 모르고, 기분이 좋을지도 모르고, 기분이 최악이라 당장 죽고 싶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정해진 것이 없다. 지금의 나에게는 알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 나 자신조차도 모르는데 미래는 당연히 더 모른다. 그래서 이토록 애매한 나 자신이 스스로 불안하다. 나의 애매함 위에 내일을 쌓아 올리는 일은 매번 힘들다.

  그래도 하나는 깨달았다. 어떤 소수자성을 가졌든, 그 소수자성을 어떻게 받아들이든 내가 PC끝판왕이 되는 것도 아니고, 죽어 마땅한 놈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우린 그냥 애매한 사람이 되는 거다. 그러니까 애매한 삶을 대충 살아가려고 한다. 뭐 어쩌라고... 하면서 살아가려고 한다. 다만 애매한 대로 살아가는 와중에 꿈도 좀 품어보려고 한다. 애매모호함도 언젠가는 온전히 존중받으리라는, 이 세계의 미래에 대한 희망, 나와 비슷하게 태어날 아이들이 더 나은 삶을 누리리라는 희망, 나의 10년 후가 나아지리라는 희망,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본다. 그것이 애매한 삶에서 누릴 수 있는 동시에 모두가 품어야만 하는 무한한 희망임을 믿는다.  

   

  처음 퀴어퍼레이드를 갔던 날을 기억한다. 나는 친구들과 몰래 집을 나섰고 얼굴을 가리는 옷을 입었다. 태어나서 본 풍경 중 그날의 장면에 경찰이 제일 많았다. 그날에는 퀴어퍼레이드에서 매번 불린다던,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수많은 군중 속에서 불렀다. 그 노랫말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내가 애매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어느 정도는 그랬다. 그곳은 따뜻했고, 환대로 가득했다. 내가 여기서 무언가 확실한 존재가 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다. 경찰의 벽 저 너머에 피켓을 들고 찬양을 부르는 사람들이 보이고, ‘진짜 가족’을 회복하자는 부스 행사가 보이고, 일행의 연락을 확인하려 휴대폰을 확인하니 며칠 전 인터넷에서 나의 퀴어 정체성이 가진 진정성을 두고 싸웠던 사람이 생각나고, 아주 천천히 걸었는데도 완전히 지쳐버렸고 통증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퀴퍼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서지 못한 나의 친구들, 이렇게 얼굴을 가리고 몰래 길을 나선 나, 설명하기 어려운 나와 내 섹슈얼리티, 퀴어퍼레이드까지 와서 프라이드도 별로 못 느끼겠는 나. 이토록 애매해도 될까. 하지만 동시에 생각했다. 여기에서 노래 부르지 못하는 존재들도, 나도, 그대로 잘 살아갈 수 있길. 애써 당당해질 필요가 없길. 애매함 그대로도 괜찮길. 여기까지 생각하니 다시 무지갯빛 풍경이 보였고, 어쩌면 허황된 꿈들도 다시 떠올려 마음에 간직하게 되었다. 이런 이상한 날들을 살아갈 수많은 애매한 족속들에게 수시로 안부를 묻고 싶다.   

       


[1] ‘키보드 배틀’의 줄임말로, 인터넷상에서 텍스트를 통해 다른 사람과 말싸움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2] 성소수자부모모임 홈페이지에 기재된 정의에 따르면, 젠더퀴어는 “‘남성’과 ‘여성’ 둘로만 분류하는 기존의 이분법적인 성별 구분(Gender binary)을 벗어난 종류의 성별 정체성, 또는 그런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본문에서도 위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성소수자부모모임, “성소수자 관련 용어”, 성소수자부모모임, https://www.pflagkorea.org/%EC%84%B1%EC%86%8C%EC%88%98%EC%9E%90-%EA%B4%80%EB%A0%A8-%EC%9A%A9%EC%96%B4 .

[3] 본문에서 언급된 시기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페미니즘의 여러 이론적 갈래 중 ‘래디컬 페미니스트’에 해당하는 부류임을 자처하면서 성소수자나 아동 등에 대한 혐오를 자행하는 계정이 많았다. 이 글의 전반에 이러한 상황적, 시대적 맥락이 영향을 미친다.

[4] 여성혐오에 대해 반발하고, 기존의 여성혐오적 용어를 남성 대상으로 바꾸어 말해보는 ‘미러링’을 유행시킨 메갈리아 사이트의 사용자들이 여러 사이트로 갈라져 나오며 생긴 사이트이다. 이런 분화가 발생한 주된 이유는 성소수자 혐오에 대한 견해 차이였고, 워마드는 페미니즘은 ‘순수한 여성’만을 ‘챙겨야’한다는 일념 아래 게이, 트랜스젠더 등의 성소수자를 적극적으로 혐오하는 사이트였다.

[5] 워마드 사이트 내에 존재하던, ‘워념’이라 불리는 추천수가 일정 이상으로 많아진 게시물을 모아두는 게시판이다. 

[6] 트랜스젠더의 ‘젠’과 정신병자의 ‘신병자’를 합쳐 만들어진 말로, ‘트랜스젠더는 다 정신병’이라는 맥락으로 트랜스젠더를 조롱하기 위해 사용된다. 즉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와 정신질환에 대한 혐오를 동시에 드러내는 말이다. 

[7] 메갈리아 사이트의 이용자, 즉  ‘메갈리안’의 줄임말이다. 이는 페미니스트에 대한 비하의 의미로 활발히 쓰이는 용어이다. 페미니스트를 조롱하고 비하할 목적으로 ‘메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흐름에 맞서  ‘#내가메갈이다’라는 해시태그가 많은 페미니스트의 SNS에서 활발히 사용된 적도 있다. 본문의 경우에도,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당시 인터넷에서의 페미니스트가 할 법한 발화처럼 드러내기 위해 해당 용어를 사용하였다.   

[8] 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m 혹은 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 즉 트랜스젠더에 대해 배제적인 래디컬 페미니즘 혹은 페미니스트를 뜻한다. 이 글에서는 후자의 의미로 쓰였다.

[9]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유행한, 트랜스젠더를 조롱하기 위해 만들어진 합성어. 트랜스젠더들은 성별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냐면서, 이에 대한 혐오적 비난으로  “나는 내가 강아지라고 생각하니 트랜스멍멍이다.” 와 같이 ‘트랜스’와 다른 명사를 결합한 형태로 사용된다. 현재의 온라인상에서도 이러한 합성어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10] 자부심, 자긍심 등으로도 서술할 수 있겠으나 퀴어로서의 자긍심이라는 맥락을 살리기 위하여 프라이드플래그, 프라이드먼스 등 퀴어와 연관된 이름 붙이기에 널리 사용되는 ‘프라이드’라는 영어를 한국어 발음대로 표기하였다.

[11] 성소수자부모모임 홈페이지에 기재된 논바이너리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남성’과 ‘여성’에 국한하지 않고 자신의 성별정체성을 정체화하는 사람을 말한다.” 성소수자부모모임, 앞의 홈페이지.

[12] 성소수자부모모임 홈페이지에 기재된 아웃팅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타인이 성소수자 본인의 동의 없이 성적 지향이나 성별정체성을 공개하는 행위.” 아웃팅은 성소수자를 향한 폭력이자 혐오의 한 종류이다. 앞의 홈페이지.

[13] 이 글에서는 따돌림 및 괴롭힘 등 오프라인상의 여러 폭력과, 사이버불링 및 신상 알아내기 등 온라인상의 여러 폭력을 두루 지칭하기 위해 불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14] 성소수자부모모임 홈페이지에 기재된 지정성별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출생 시 성기의 모양이나 형태를 기준으로 출생증명서 등 문서에 기록된 성별. 간성이나 트랜스젠더 같은 경우 본인이 정체화하는 성별과 지정성별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지정성별이라는 단어는 간성이나 트랜스젠더가 출생 시 부여받은 성별 분류와 본인의 성정체성이 일으키는 괴리를, 간성 및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관점에서 문제적으로 조명하고자 고안된 단어이다. 따라서 해당 맥락이 아닌 상황에서 지정성별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시 용어의 남발 및 오용이 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성소수자부모모임, 앞의 홈페이지.

[15] 여담이지만, 그래서 나는 이런 무심했던 페미니즘이(혹은 그 이름을 빌린 무언가가) 남자보다는 무해했다거나, 실질적으로 소수자에게 끼친 해악이 무엇이 있냐는 등의 말을 보면 종종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내가 그 무심함과 해악의 증인이다.     

[16] 유방절제술을 말하는 용어이나, 이 글에서는/퀴어와 관련한 맥락에서는 특별히 퀴어가 자신의 퀴어 정체성에 관련된 목적으로 유방절제를 시행할 때 그 수술을 가리켜 탑수술이라고 칭한다.      


참고문헌

페미위키 

https://femiwiki.com/w/%ED%8E%98%EB%AF%B8%EC%9C%84%ED%82%A4:%EB%8C%80%EB%AC%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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