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비상
문우편집위원회의 2023년 2학기 세미나 주제는 섹스/섹슈얼리티였습니다. 문우의 편집위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고민을 거듭했고, 세미나의 현장과 편집회의에서는 섹슈얼리티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질문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래서, 왜 섹슈얼리티를 공부하는지 묻고 일탈적 섹슈얼리티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부장제 안에서의 여성의 성 거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국가가 여성의 재생산을 어떻게 통제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HIV 감염인의 인권에 대해, 에이즈의 통제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국가의 기지촌 및 성산업 관여와, 현재의 성노동 운동 및 성노동에 관한 교차적 사유들을 고민하였습니다. 장애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위의 주제들로 한 학기의 세미나를 거친 뒤 모두가 이것 하나만큼은 깨달았습니다. 섹슈얼리티는 좋든 싫든 우리와 언제나 함께한다고요. 우리에게 성에 관련된 정보가 필요한 이상, 성적 건강이 존재하고 성적 건강이 필요한 이상, 성교육이 필요한 이상, 신체에 대한 존중이 필요한 이상, 성관계와 결혼이 존재하는 이상, 인간이 계속해서 태어나는 이상, 섹슈얼리티는 언제나 우리의 소중하고도 미운 동반자로 존재할 겁니다. 어쩌면 섹슈얼리티를 ‘동반자’라고 분리해서 칭하기에는, ‘나’와 너무나도 나눌 수도 없고 구분할 수도 없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수많은 자리에 있는 무수한 ‘나’와 함께하기에, 섹슈얼리티의 형태와, 섹슈얼리티와 각자가 관계 맺는 형태도 가지각색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문우』의 "메인 기획 - 섹스/섹슈얼리티"에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서로 다른 글들이 실렸습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페미니즘의 형태에 관해, 로맨스에 관해, 자신의 성정체성에 관해서요.
문우에서 진행된 섹스/섹슈얼리티 세미나와 비슷한 문제의식들을 공유하며 고민하는 사람은 문우가 아닌 곳에도 여럿 존재합니다. 그래서 문우는 문우가 아닌 곳에서 말하고 생각하는 사람과도 이야기를 나누고 닿고 싶습니다. 문우의 눈에 실린 페스포트와의 인터뷰가 바로 그러한 현장이었습니다. 이 인터뷰가 페스포트에 애정을 가진 많은 분께 소중한 기록으로 남길 바랍니다. 그리고 문우가 앞으로도 이런 소중한 연결의 현장에 함께할 수 있길 바랍니다. 이외에도 문우의 눈에는 연세대학교의 쓰레기 문제의 실태를 조사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연세대 쓰레기 탐험대의 첫 연재글이 실렸습니다. 함께 독자모임을 진행한 015B와 연세편집위원회의 『연희관 015B』와 『연세』에 추후 연세대 쓰레기 탐험대의 활동을 담은 연재글이 이어질 예정입니다. 연세대 쓰레기 탐험대의 활동을 통해 학내의 쓰레기 문제를 더욱 구체화하고, 청소노동자와 학생이 함께 고민하며 학교 안팎의 쓰레기 문제의 맥락을 알리고 바꾸어나가는 모습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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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의 제목은 "울렁이는 지구 위에서"입니다. 지구는 끊임없이 돌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 회전의 기준이 되는 자전축마저도 움직인다고 합니다. 이렇게나 요동치는 지구 위라서 그런지, 사람들마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맵니다. 온갖 울렁임이 가득한 세상에서, 여러분은 어떻게 울렁이고 계신가요? 그 속에서도, 음침한 곳에 숨어 자신조차도 찾기 어려운 섹슈얼리티, 있는지도 모르겠는 섹슈얼리티. 당신과 다르고도 같은 그 섹슈얼리티라는 동반자는 과연 어떻게 울렁이나요? 당신과 섹슈얼리티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나요? 그 답이 어떻든, 울렁이는 섹슈얼리티를 포함한 여러 울렁임과 함께하는 여러분 모두의 삶을 응원합니다. 여러분이 위의 질문들에 답을 내리고 세상에 선보이는 과정이 정상성의 입장에서 껄끄럽고 역겹더라도, 그 과정에 맞는 언어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당신의 울렁임이 당신을 상처 입히지 않기를 바라며, 편집장 비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