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용기: 비하인드 더 씬

편집위원 루, 완벽한 근사

by 문우편집위원회



%EC%A3%BC%EC%84%9D_2020-09-09_2005143.png?type=w800 불편한 용기 타임라인. 64초 캡처


들어가며 - 왜 ‘불편한 용기’를 질문하는가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는 2018년 5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누드모델 불법촬영 및 유포 사건의 편파수사에 문제를 제기한 시위로, 발단이 된 수사는 5월 1일부터 12일까지 약 열흘에 걸쳐 진행되었다. (자세한 경위는 앞페이지 타임라인 참고) 해당 사건은 불과 열흘 만에 가해자가 구속되었으며, 진행 상황이 하나하나 언론에 공개되는 등 기존의 불법촬영 사건들과는 다소 이례적인 양상을 보였다. 이전까지의 불법촬영 사건 처리에서 흔히 보였던 태만한 수사나 솜방망이 처벌과 비교되는 경찰의 적극적인 대응에 여성들은 매우 실망하고 분노하였으며, 이는 그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그간 한국에서는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 집회나 미투 집회,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집회 등 다양한 여성의제 집회들이 열렸다. 그러나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이하 ‘불편한 용기’ 또는 ‘혜화역 시위’)는 이들과 사뭇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었고, 단일 여성 의제로 열린 집회로서는 사상 최대 인원을 끌어모아 크게 주목 받았다. 시위가 진행된 방식도 기존 넷페미니즘 운동에 묶이는 2016년 넥슨 클로저스 성우 교체 사건이나 2018년부터 시작된 미투운동과도 구별된다. 앞선 운동들은 중심 사건의 해결을 의제로 설정하고 인터넷상에서 여론을 환기하는 것으로 그쳤으나, ‘불편한’용기는 온라인을 기점으로 모인 여성들이 밖으로 나와 실질적인 구조 개혁과 정치 쇄신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요구를 관철할 대상으로 ‘사회 전체’나 ‘남성 집단’보다는 “정부”라는 이름으로 표상되는 국가 기관을 호명한다는 점에서도 이전의 넷페미니즘 운동과는 구분선을 긋는다.


기성 페미니즘 운동이나 이전의 넷페미니즘 운동과 구분되는 또 다른 시위로 2016년 10월에 시작되었던 ‘비웨이브(임신중단 전면 합법화 시위)’ 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비웨이브’가 시간상 ‘불편한 용기’에 선행하고 둘 사이에 유사지점이 다수 발견된다는 점에서, ‘혜화역 시위’가 그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둘은 ‘생물학적 여성’만을 참여 대상으로 설정했다는 점을 공유한다. 그러나 비웨이브는 임신 및 출산과 관련한 재생산권 의제를 다룬 반면 ‘불편한 용기’의 제1 의제는 불법촬영과 편파수사였기에 ‘불편한 용기'가 비웨이브의 참여제한 대상을 그대로 받아 안은 점은 비판적으로 성찰될 필요가 있다. 불법촬영의 표적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는 임신⠂출산 가능성이나 성염색체, 생식기의 모양이 아니라 (가해자에 의해) 외견상 여성으로 보이는지의 여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불편한 용기’는 현재 넷페미니즘의 지형을 형성한 중요한 전환점이기도 하다. 메갈리아-워마드 등으로 대표되어 외부에 ‘극단적 페미니즘’이라 여겨지던 넷페미니즘 운동은 ‘불편한 용기’를 통해 보다 넓은 대중을 포용하고, 여러 온라인 공간에서 파편화되어있던 목소리를 한 자리에 결집시키는 방향으로 심화확장 되었다. 이후 인터넷에서 형성된 여성주의 세력을 이후 여성의당 창당과 같이 정당 정치, 즉 제도적 차원의 정치로 진입하게 하는 마중물이 되기도 했기에 더욱 상징적이다. 여기에 더해 ‘혜화역 시위’의 규모와 상징성으로 인해 이후 넷페미니즘 운동이 ‘생물학적 여성’만을 집회 참여 대상으로 허용하는 분리주의 전략을 취하고 있는 바, 이는 향후 페미니즘 운동의 방향을 설정하고 가늠하기 위해 면밀히 살펴야 할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이 글은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공식 카페(http://cafe.daum.net/Hongdaenam)의 공지 게시판을 아카이빙하고, 커뮤니티의 두드러지는 특징이나 내부에서 논쟁적으로 다루어진 키워드 네 가지를 중심으로 정리 및 분석했다.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카페의 게시글은 최대한 캡처본을 통해 제목, 업로드된 날짜와 게시판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다. 불가피하게 글을 가공하거나 일부만을 발췌한 경우 출처를 각주로 따로 표시했다.



정치: 말할 수 없는 그것


‘불편한 용기’는 흔히 포스트 메갈리아라고 불리는 많은 여성주의 커뮤니티, 그리고 페미니즘적 실천이 그러하듯 온라인 공간에서 탄생했다. 그 점에서 ‘불편한 용기’는 시민단체와 그에 소속된 상임활동가를 주축으로 운영되어 온 기성 사회운동과 구별된다. 그러나 더 중요하게 방점을 찍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주최 측(스탭 내지는 운영진)이 특정한 단체 출신임을 밝히는 것을 꺼리고, 끊임없이 다른 ‘가치관은 모두 내려놓고’ 여성의 의제만을 위해 참여하기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더불어 이들은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 또한 모두 개인의 자격으로만 참여할 수 있다고 제한하며 운동권과의 연대, 혹은 내부 세력화를 지속적으로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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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공식 카페 〈캡처1, 2〉


〈캡처1〉과 〈캡처2〉에서 확인할 수 있듯, 이곳에서 주로 내세워지는 것은 ‘여성 위에 성역은 없’으며, ‘여성 의제’만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논리이다. 하나의 의제에 공감하여 모인 이들이 당연하게 다른 의제들에도 같은 의견을 가질 것을 보장할 순 없다. 당시 ‘불편한 용기’ 카페가 세워진(2018.05.10) 이후 1차 시위 개최(2018.05.19)까지 시간이 상당히 촉박했다는 것을 고려하였을 때 카페 구성원들의 다양한 논쟁은 시위의 기획과 진행에 있어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시위 준비 초기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골자의 피켓을 제작한 회원을 두고 뜨거운 찬반 논쟁이 벌어졌을 때도 회원들의 가장 큰 우려는 내부 분열로 시위의 ‘화력’이 떨어지는 것이었다.(〈캡처3-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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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공식 카페 〈캡처3-1, 3-2〉


이때 ‘여성 문제’를 가장 ‘정치적’인 것으로 내세움으로써 ‘여성’과 ‘비여성’을 가로지르는 배타적 공간을 형성하고, 그 이외의 문제는 시위를 방해하는 ‘정치적 분탕질’로 간주하는 경계짓기는 카페 안에서 발생하는 분쟁을 효과적으로 봉합하는 장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정치색을 띠지 않는’ 여성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합의하지 못한-않은- 상태로 이를 전면에 내세우는 시도는 시위 의제를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것들로만 축소시켰고, 무엇이 ‘여성 문제’를 빗겨나간 ‘정치 문제’인지를 판단하는 데에 있어 운영진에게 비대한 권력을 이양했다. 이러한 결과로 개인 피켓은 운영진들의 사전 검수를 받아야만 시위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었으며, 시위 참여의 경험을 공적으로 발화할 수 있는 권리는 전적으로 운영진에게만 돌아갔다. 완벽하게 평등한 개개인과 그 어떤 세력도 형성되지 않은 수평적 커뮤니티를 상정하는 ‘불편한 용기’에서 이러한 현실은 상당한 긴장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때 ‘불편한 용기’ 측에서 긴장을 늦추기 위해 사용한 방식은 익명성을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것이었다.



익명: 평등한 개인들?


앞서 언급했듯 ‘불편한 용기’는 온라인 교류를 기반으로 싹텄는데, 또 다른 관점에서 여기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불편한 용기'의 회원 대부분은 친목을 전면 금지하는 규칙을 별다른 의문 없이 수용한다. 이러한 규칙은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 안에서도 중요하게 통용되고 있다. 즉 시위 주최자와 참여자 모두 인터넷 익명 커뮤니티의 불문율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로 다수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친목은 집단 유지의 동력이 되기도, 집단의 분열을 야기하기도 하는 양면성을 지닌다. 주류 세력을 형성한 친목 집단이 자신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거나 비판을 가하는 이들의 여론에 ‘물타기’하는 현상이 흔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심화되면 커뮤니티 신규 가입자들의 수는 줄어들고, 결국 커뮤니티의 규모 자체가 축소되기 쉽다. 익명성 하에 유지되는 인터넷 커뮤니티들은 대부분 이를 경계하여 친목 행위를 전면 제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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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공식 카페 〈캡처4, 5〉

〈캡처4〉는 카페 개설 초반 “분탕 의심 회원들”로 인한 “카페 내 분열에 대한 우려”로 자유게시판을 임시 폐쇄하였다는 공지에 달린 댓글이다. “시시콜콜 대화를 나눈다거나 니가 맞다 내가 맞다 의논하러 여기 모인 게 아닙니다. 싸움하려고 온 것도 아니고요.”라는 문장은 카페에서 친목이 주된 목적이 아니고 때로는 ‘대의’에 방해가 된다는 인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캡처5〉는 카페가 생긴 지 며칠 지나지 않아 1차 시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카페 내 규칙을 간단히 밝힌 공지 글로, 역시 “저격” 혹은 “친목성” 게시글이나 댓글을 모두 금지하고 있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해당 규칙은 “카페 내에서 분란을 일으킬 수 있는 부분”을 규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목적이 명시되어 있다. 이렇듯 ‘불편한 용기’는 친목 금지 규정을 두어 평등한 개인이 단일한 의제를 위해 모였다는 상상을 지속적으로 환기하고, 내부 인원을 ‘여성 인권’을 위한 “시위에만 집중”시키고자 한다.



%EC%BA%A1%EC%B2%986.png?type=w800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공식 카페 〈캡처 6〉

통상 운영진 카카오톡, 텔레그램 등 개별 소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스탭은 비교적 다른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기 쉽고, 그렇기 때문에 일반 참가자보다도 더 까다로운 규정을 적용받는다. (〈캡처 6〉) “친목 금지”, “분란 조장 금지”, “유출 금지”, “셀털[1] 금지”는 모두 내부 분열의 여지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대책이다. “시위 스탭 경력을 본인 PR이나 스펙으로 사용 금지”, “개인 SNS나 커뮤니티에 스탭 자표[2] 금지”, “의견 피력 금지” 등의 조항은 스탭이 개인의 이름으로 의견을 표명하였을 때 시위 전체의 의견으로 대변되는 상황을 경계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 또한 시위 구성원 ‘모두’가 공유한다고 여겨지는 의견만을 표출하는 하나의 목소리, 하나의 외침을 위해 설정된 전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외치는 사안의 급진성이 온라인 커뮤니티의 익명성과 만났을 때 극심한 내부검열이 따라붙는 현상에 문제를 제기해보아야 한다. 분란을 이토록 경계하는 태도는 여성주의 의제들이 사회에서 수용되고 해석되는 방식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다른 소수자 운동에 비해 여성 인권 운동은 그 역사가 비교적 길고, 실질적으로 이룬 성과도 그만큼 많은 편이다. 그렇기에 더욱더 여성주의 운동은 “이쯤 되면 여성 상위 시대”라는 식으로 남성 권력의 직접적 반발과 함께 공격받고 그 가치가 격하되기 쉽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들의 인권을 외치는 여성들은 곧잘 자가당착에 빠진다. 자신들이 외치는 바를 사회에 수용시키기 위해서는 ‘꼬투리 잡힐 일’을 최소화하고 비난의 여지를 남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EC%BA%A1%EC%B2%987.jpg?type=w800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공식 카페 〈캡처7〉

흔히 인터넷 공간에서는 개개인 간의 평등한 지위가 보장된다고 생각하지만, 그 안에서 개인이 갖는 영향력이나 상황 통제권, 발언 무게에 따른 구성원 간 위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곳에서 모두가 하나의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는 프레임은, 필연적 위계로 인해 발생하는 이러한 문제들을 쉽게 지우거나 사소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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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처8-3.PNG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공식 카페 〈캡처8-1, 8-2, 8-3〉

그러나 일방적으로 논의의 창을 닫아 이견을 차단하는 데에도 분명히 한계가 있다. 6차 시위 구호문(〈캡처7〉)이 공개된 직후 댓글창에서 벌어진 “커뮤용어” 사용 논란(〈캡처8-1〉, 〈캡처8-2〉, 〈캡처 8-3〉)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하나로 단합시키기 위한 규칙들이 꼭 내부 언쟁을 완벽하게 봉합해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특히나 이 사건은 카페 구성원들이 완전히 평등한 권력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당시 웹하드 카르텔이 디지털 성범죄 영상을 불법 유통한다는 사실이 밝혀져 그 공론화가 한창이었고, 불법촬영과 디지털 성범죄 등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가 상당히 올라가 있었다. 그런 와중 시위에서 온라인 커뮤니티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다소 낯설고 거리감이 느껴질 수 있는 “커뮤용어”를 구호문에 사용하면, 진입장벽을 높여 새로운 참가자가 유입될 수 없을 것이라는 댓글이 여러 차례 달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국 구호문은 수정되지 않았다. 구호문에 대한 의견을 받는 아이디어 게시판이 존재했고 그곳을 참고하여 구호문이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주최 측에서 최종 결과물을 발표한 후에는 피드백이 일절 수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불편한 용기’의 운영은 사실상 분열을 방지하는 것이 아니라 묵과하고 봉합하는 방식에 가까웠다.


이렇듯 ‘불편한 용기’의 주최 측은 내규를 일방적으로 결정하여 일반 회원이 의문을 제시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전달한다. 단 하나의 목소리만을 내보내고자 하는 이러한 움직임은 역설적이게도 소통의 흐름을 가로막아 장기적인 연대 의식 저해 및 일부 회원들의 반강제적 이탈로 이어진다.



여성: 단 하나의 공동체


메르스 갤러리에서 파생된 메갈리아가 워마드로 다시 변주되기까지, ‘단일한 여성’이라는 범주와 연대 주체 간의 갈등은 언제나 논쟁의 중심이었다. ‘불편한 용기’ 시위 또한 의제 당사자의 구분선을 ‘생물학적 여성’으로 설정하며 앞선 논란들과 같은 궤적을 그렸다. 그러나 ‘생물학적 여성’이 포괄하는 범위는 결코 공고하지 않으며, 오히려 불완전하다. 일반적으로 성염색체나 생식기의 모양 등이 ‘생물학적 여성’을 구별해내는 기준으로 제시되나, 카페회원들이 실제 상황에서 ‘생물학적 여성’을 구분하는 방식은 사실 해당 조건을 검증한다고 볼 수 없다. 〈캡처9〉, 〈캡처10〉를 보면, ‘불편한 용기’ 카페지기는 운전면허증(법적 성별)과 페미니즘 의제 스티커를 소지한 사실로 자신이 여성임을 인증했고, 스탭은 주민등록번호 뒤 첫 자리(마찬가지로 법적 성별)와 손이 보이는 사진, 하관과 목소리가 드러나는 영상으로 자신들이 여성임을 인증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떤 방식으로 규정되든 ‘생물학적 성별’은 법적 성별과 언제나 일치하는 범주가 아니며, 손의 모양, 하관, 목소리 등의 외형적 요인으로 ‘생물학적 여성’을 구분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이 공동체 내에서 ‘생물학적 여성’을 인정하는 방식이 정말 ‘염색체’나 ‘성기’의 인증이 아니라는 점은 (그들의 주장대로) ‘생물학적 여성’의 경계가 언제나 명징하게 구분되어 그에 따라 억압과 차별의 기제가 작동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역으로 증명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진정한’ 여성됨을 이토록 중시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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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공식 카페 〈캡처9, 10, 11〉

배타적인 공간을 구획하려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시위 참여자이자 불법촬영물의 피해 당사자, 혹은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여성들을 보호하겠다는 명목이다.(〈캡처11〉) 이토록 ‘안전한 공간’에 매달리는 모습은 한국 사회가 여성들에게 일상적인 공포를 심어주고 있음을 명시적으로 드러낸다.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인 집에서부터 거리에서까지 여성이라는 표식을 달고 있으면 무차별적으로 불법촬영 범죄를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은 일상적인 불안을 만들어낸다. 압도적으로 성별화된 가해-피해 구도 안에서 여성들은 스스로를 피해자로 규정짓고 범주화하는 방향으로 흐르기 쉽다. 이는 단순히 공감의 서사를 형성하는 것을 넘어서 ‘모든 여성’을 정치적 집단으로 한데 묶고 공통된 목소리를 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렇기에 상당히 많은인원을 하나의 맥락으로 묶어내는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키워드가 시위의 화력을 키우는 데 큰 몫을 해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분리주의적인 방식으로 구성된 젠더 위계질서는, 여성을 본질적으로 취약한 존재로 만들 뿐만 아니라 공격을 당해도 물리적사회적으로 반격하기 불리한 존재라는 위치에 고정한다. 분리주의 담론은 비대칭적인 젠더 위계질서에 저항하고 변화를 촉구하고자 하는 본래 목적을 흐리고, 복합적인 지위를 가진 개인을 성별 이분법의 틀로 환원하여 절대적인 피해자, 혹은 가해자 위치에 공고히 고착시키고 만다. 성폭력 가해자의 다수가 남성이라는 사실이, 남성이 본질적으로, 혹은 ‘생물학적으로’ 위험한 존재라는 의미는 아니다. 불법촬영이 하나의 주류 문화가 되고, 성별에 따른 편파수사와 편파판결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는 세상에서 가장 우선으로 바뀌어야 할 대상은 남성 중심적으로 쌓아 올라간 불합리한 사회구조다. 그런데 남성들이 어차피 바뀌지 않을 존재라면, 남성들이 오로지 가해자이기만 하다면, 페미니즘 공동체는 과연 어디에서 변화의 추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단순히 ‘특정 성별’의 존재만이 성차별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님에도 분리를 통한 한시적 해방감에 만족하는 것은 결국 성차별의 원인을 직시하지 못하게 가려버린다.


더불어 이는 시위 공간에서만 맛보는 안전감이기도 하다. 시위가 끝나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순간부터 시위에 참여한 이들은 ‘자매’가 아닌 이들과 한 공간에 존재해야 한다는 현실을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참가 대상을 성별에 따라 제한하는 것이 갖는 효용은 굉장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많은 경우 여성들은 ‘위험하고 불안한’ 성차별의 공간에서 삶을 이어나가야 한다. 어디가 되었건 ‘위험으로부터 완벽한 무균실’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 혹은 그것이 구원의 열쇠가 될 수 있다는 믿음만으로는 실질적인 대책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여성들의 삶은 계속 ‘보편 수준의 경험’에서 한 발짝 물러나 사회적 중심부로부터 고립되어 있기에 가시화되기 더욱 어렵거나 피해의 한 사례로서만 기능하게 된다. 혹자는 여성 대표성이 충분히 확보되고, 여성끼리 삶을 꾸려나가는 공간은 훨씬 성평등할 것이라 믿기도 한다. 물론 여성으로서의 삶이 평등의 감수성을 더욱 쉽게 체득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당사자'로서의 경험이 감수성, 리터러시, 그리고 상상력으로 언제나 직결되지는 않는다. 앞서 설명했듯 당사자라는 개념이 절대적이지 않으며 누구든 자의적으로 구성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중요하게 작용한다.


또한 젠더폭력의 상황에서 피해자는 가해자의 눈에 여성으로 보이는 순간 쉽게 약자로 표상되고 위험에 노출된다. 따라서 ‘생물학적 여성’ 범주는 (잠재적) 피해자의 범주를 명확하게 짚어내지조차 못한다. 각종 젠더 위계를 바탕으로 한, 불법촬영을 비롯한 폭력의 가해자가 피해자의 ‘생식기’나 ‘성염색체’를 확인한 순간에 폭력을 결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성으로 보인다는 것은 여성이라는 성별을 부여받은 사람, 법적으로 여성인 사람, 자궁이나 질을 가진 사람, XX 성염색체를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 중 그 어느 것으로도 완벽하게 설명되지 못한다.


캡처12.jpg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공식 카페 〈캡처12〉

둘째로 분리주의는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좁은 범주 안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를 배제함으로써 내부 결집을 다지는 방식이기도 했다. 이때 여성이라는 범주를 튼튼하게 세우고자 하는 이들의 칼끝은 비단 (시스젠더) 남성 일반뿐만 아닌 트랜스젠더 여성에게도 향했다. 〈캡처12〉는 4차 시위 지침 공지와 함께 게시된 웹툰의 일부이다. 해당 웹툰이 외부의 거센 반발을 사면서 결국 삭제된 것과는 별개로, 이 웹툰이 사용한 혐오의 문법은 그대로 전승되었고 트랜스젠더에 대한 조롱은 ‘불편한 용기’의 시위 공간에서 마치 스포츠처럼 번져나갔다. 여성 vs 남성이라는 성별 이분법을 차용하고, 그것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배제하는 태도는 가부장적 권력 구도를 단순히 여남만 뒤집은 채로 그대로 답습한다는 점에서 반성적으로 사유되어야 한다. 국가의 남성중심적 정책은 오랫동안 가부장 질서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이단’의 존재들을 배격해왔다. 이러한 배제주의적인 전략은 결국 권력 구조의 해체와 억압된 자들의 해방이 아닌, 성별 권력의 단순 전복에만 가닿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EC%A3%BC%EC%84%9D_2020-09-09_200239.png?type=w800 2018년 5월 19일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3]


‘불편한 용기’는 명백히 차별적인 수사 태도를 보인 (검경으로 대유되는) 사법부와, 그간 자신들을 외면한 채 시혜적인 태도만을 보였던 행정부, 입법부를 규탄했다. 더불어 불법촬영물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소비했던 한국의 남성들과 ‘조회수 장사’를 위하여 선정적 기사만을 써대던 언론을 비난하며, 이 사태에 분노하였다. 위의 성명서는 무엇이 이들을 혜화로 이끌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분노한 이유가 여러 문단에 걸쳐 적힌 것에 비해 단 네 줄을 빌어 제시된 요구사항은 다소 모호하다. 온라인에서 시작된 집회 중 규모가 가장 컸고, 시의성이 높은 의제로 뭉쳤다는 점에서 주목은 분명히 받았으나 1차 시위에서 표출된 분노는 구체적인 방향성이 없었다. 2, 3차 시위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내부에서 인식한 듯, 보다 상세한 의제와 대상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 기조는 6차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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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A3%BC%EC%84%9D_2020-09-09_200514.png?type=w800 2018년 6월 9일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4]

2차 시위에서는 스스로가 40만 명의 청와대 청원자들의 목소리를 받아 안았음을 외친다. 이는 일명 “아가리페미”[5]로 공약만 내세워 ‘우리의 표’를 가져간 문재인과 그를 필두로 한 청와대를 효과적으로 불러내고, 그들의 묵묵부답을 환기할 수 있는 전략이다. 더불어 2~6차 시위는 불법촬영 편파 수사 그 자체에 분노하는 것을 넘어 해당 사건의 이면에 여성혐오적인 인터넷 문화와 여러 직종에서의 성비 불균형이 자리하고 있음을 직접적으로 지적한다는 점에서 앞선 1차 시위와 구별된다. 이는 사법부에게 (여성혐오가 만연하여) “역겨운 남초 사이트”를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검·경찰청장에 여성을 임명하며, 여경과 남경 비율 9:1을 달성하라는 직접적 요구로 이어진다. 급진적인 듯 보이는 이 주장은 공권력의 장에서 남성이 과대대표되어 왔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현행 구조 안에서는 여성의 목소리가 충분히 전달되기 어려웠고, 이는 성폭력을 법의 언어로 포섭하는 과정에서도 고질적인 문제가 되어 왔다. 이러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이들이 내놓은 해결책은 가장 먼저 여성에게 공감하고, 여성의 시각을 담지하고 있는 여성 대표자의 비율을 높이라는 것이다. 지금껏 한국의 고위 공무원 사회가 거의 남성 독점적인 사회였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히 의미 있는 지적이다. 집단의 성비 불균형을 지적하며 이를 해결하라고 외치는 것은 그 외침이 겨냥하고 있는 현실을 양적으로 측정하여 감각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교적 직관적인 설득 방법이기도 하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바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그간 남성이 독점적으로 행사한 공권력이 이토록 부패했으니, 여성들이 나서서 뜯어 고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별 대표성의 전략은 그 자체가 성차의 정치학이라는 점에서 내재한 긴장과 진동이 있기에 조심스럽게 검토될 필요가 있다. ‘여성이라서’, 혹은 ‘여성만이’ 여성들의 문제에 공감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그러한 논리에 기반하여 대표자로 진입한 여성들을 이미 젠더화된 존재로 가정하는 것과 공명한다. 이는 대표자들이 ‘대표할 수 있는’ 일들의 폭을 좁힐 위험성이 있다. 권김현영은 「성적 차이는 대표될 수 있는가」에서 프랑스의 동수제 논의를 중심으로 검토하면서, 성차의 정치학은 “궁극적으로 여성 정치의 전망은 여성을 여성이, 남성을 남성이 대표하는 이원체계를 공고화하는 것이 아니라 성차가 현존하는 세계의 경험을 반영하되, 성차의 작동 방식을 끊임없이 의심스러워하는, 어제의 여성에서 출발하여 미래의 여성으로 나아가는 기획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성차의 정치학을 성공적으로 이뤄내기 위해서는 성별 기획과 여성성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이 수반되어야 한다. 여성 범주를 하나의 고정태로 이해하는 ‘불편한 용기’의 전략이 질문되어야 할 또 다른 이유다.


더 나아가 ‘불편한 용기’가 행한 경고가 2018년 6월 13일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향해 있다는 점도 매우 상징적이다. 그러나 2018년 6월 13일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해당 시위에 대한 별다른 응답 없이도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제1야당의 입지를 굳힌 자유한국당 (현재 미래통합당의 전신)도 마찬가지였다. 총선 이후 2018년 7월 13일을 기점으로 각 정부부처는 시위 참여자들을 내각에 불러 목소리를 들을 의지를 표명했으나, 정부의 답안은 대체로 미온적인 수준에서 그쳤다. 이 시점에서 왜 이들의 의견이 효과적으로 관철되지 못했는지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대한민국을 불태울’ 준비까지 하는 이들은 왜 정부와 국회가 바짝 긴장할 정도로 ‘위협적이지’ 않았던 것일까?


대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각종 이익집단이 정부를 상대로 요구를 관철할 때 가장 효과적 카드라고 여기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시민들의 심판’, 즉 투표이다. 선거철마다 후보들이, 정당의 ‘거물 인사’들이 기꺼이 거리에 나와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는 행위도 이러한 상상을 공고히 해주는 장치 중 하나다. 이러한 제스처는 마치 ‘개개인의 평등한 유권자’ 위에는 아무것도 군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1인 1표라는 구호가 가져다주는 달콤한 환상이다. 그러나 한국의 평등 선거 원칙은 보편 선거를 전제로 한다. 다시 말해 이권이 충돌하는 두 집단이 맞부딪힐 때, 누군가가 ‘유권자 되기’를 선언하고 심판의 칼날을 빼드는 순간, 피선거인은 당연하게도 그와 충돌하는 집단의 표수를 함께 놓고 저울질할 수밖에 없다. 단일 대표제의 한국 사회에서는 표를 ‘(여러 집단에서) 골고루 얻는 것’이 아닌 ‘(남들보다)많이 얻는 것’이 중요하기에, 이 싸움은 결국 수적인 소수가 절대로 이기지 못하는, 이미 완결이 난 책과 같다. 당연하게도 혜화역 시위를 둘러싼 정치망 아래에서 가장 쉽게 대립의 위치에 놓이는 것은 ‘시위 참여 여성’들과 ‘남성 일반’이었고, 민주 선거라는 경합의 장 안에서는 남성 일반이 절대다수일 수밖에 없다. 정치에서 ‘다수결 원칙’이 곧 공익이자 정의인양 여겨지는 것을 경계해야 하듯, 같은 원리로 페미니즘에서도 성별 이분법을 비판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나가며 - 이제는 ‘불편한 용기’에 질문하는 불편함이 필요하다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는 여러 시사점을 남긴다. 온라인 집회로는 전례 없는 막대한 규모의 시위였고, 그렇기에 온라인 공간을 오프라인의 하위 세계로만 취급하는 것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몸소 증명했다. 집회 참여자들에게 ‘불편한 용기’ 카페는 서로가 대등하게 연결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었으며, 그들은 이러한 사고를 기반으로 새롭고 빠른, 동시에 파급력이 큰 정치적 집결을 도모했다.



불편한 용기는 무엇을 남겼는가


2020년 3월 8일, “한국 최초의 여성의제 정당”이라는 기치 아래 '여성의당'이 창당되었다. 여성의당은 '불편한 용기'의 참여자들이 집회에서 끊임없이 외쳤던 '여성 의제'만을 전면에 내세워 싸울 여성 정치인의 집합이 현실화된 형태라 할 수 있다. '여성의당'은 ‘불편한 용기’의 추진력과 효과적 집결 전략을 이어받아 창당 결의로부터 27일, 당원 모집 9일 만에 정당 설립요건을 충족하는 당원을 확보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들은 강령의 처음부터 끝까지 여성만을 위해 헌신할 것을 주창하고 있으며, 실제로 선거 입후보 자격을 ‘여성’으로 제한하고 있기도 하다. 성별 비대칭적인 정치권력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근래 의회 내 여성 정치인의 비율을 높이고자 하는 움직임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여성의당 또한 할당제의 제도화에 힘을 싣고자 결성된 정당이다.


여성의당의 주요 기조는 7인 공동대표 중 하나인 김진아의 저서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의 제목과 상통한다. 이들은 '(제한된) 파이 나눠 먹기'라는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여성 정치는 곧 ‘여성의 몫’을 늘리기 위한 일환이라는 점을 홍보의 주로 둔다. 여기에서 개인의 권리 보장이 전체값이 고정된 있는 파이의 일부분으로 유비되는 현상은 아주 문제적이다. 특히나 그간 정치의 영역에서 권리라는 것이 얼마나 제한적인 대상에게만 보장되었는지를 생각해본다면 더욱 그렇다. 제한된 상상력으로 인해 누군가가 주변화되고 비가시화되는 현상을 막으려면, 정치는 항상 생산적이고 확장적인 방식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이 때 권리신장의 정치를 정태적이고 고정적인 ‘파이'로 여기는 것은 그 자체로 인권운동의 가능성을 가로막는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너무나도 뚜렷하게 보이는 현실에서 그것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감각이나 고통을 끊임없이 고백하는 것을 비난할 이유는 없다. 마찬가지로 남성 혹은 남성만을 대변하는 보편 사회에 대한 실망과 분노도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나 배제의 수사학은 혐오의 수사학과 결코 유리될 수 없다. 남성중심적인 권력 구도 아래에서 함께 억압받는 다른 소수자들을 향한 비난에 성찰 없이 가담하고, 바깥세상과의 단절을 선언하는 방식으로만 흘러가는 것이 페미니즘이라면, 결국 남는 것은 ‘여성 카르텔’을 만들어 새로운 억압구조를 생산하겠다는 공허한 외침뿐이다. ‘진보 남성들’을 정치 공동체로서 믿고 연대했던 많은 여성계 인사들의 믿음을 배반함으로써 그들을 좌절하게 했던 “해일이 밀려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는 조소를, 그 모욕의 대상이었던 여성들이 전유해 또 다른 소수자 집단에 돌려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경제나 사회구조에 내재된 차별과 억압 구조를 해체하는 대신 여성을 권력의 우위에 올려놓는 정치, 중요한 쟁점들을 묵과한 채 ‘여성 보편의 인권을 저해한다’며 ‘정상성’에 부합하지 않는 여성들의 삶을 지워버리고 편견과 혐오를 재생산하는 정치에 어떤 정당성과 포괄적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2018년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 집회에서 ‘불편한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고 외쳤던 우리는 그 문구에 담긴 힘을 믿었다. 부당함으로부터 이익을 편취하는 자들로 인한 숱한 비난과 폭력이 이어질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그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이들의 단단함과 용기가 이제껏 세상을 바꿔왔고, 설령 먼 미래가 될지라도 그러한 변화는 또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용기’의 칭호는 지금껏 박탈당해왔던 수많은 이들과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한 걸음을 내딛는 감각으로 체화되어야만 한다.



지금 우리의 걸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용기로 이루어낸 행진 끝에는 어떤 세상이 도래해야 하는가?  





[1] 셀프 신상털이의 줄임말로, 자신의 개인정보를 스스로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는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러한 규칙은 대부분 성문화되지 않은 불문율이기 때문에 허용되는 개인정보의 범위가 명확하지는 않다. 일반적으로 직접적인 개인정보인 이름, 나이, 직업, 주소지 등을 포함하여, 신상을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언급까지 금지하는 경우가 많다.

[2] ‘자기표현’ 혹은 ‘자기표출’의 줄임말로 추정

[3]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1차) 성명서. (2018.05.19). http://cafe.daum.net/Hongdaenam/ig3k/69

[4]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2차) 성명서. (2018.06.09). http://cafe.daum.net/Hongdaenam/ig3k/160

[5]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6차) 구호문 인용. (2018.12.13). http://cafe.daum.net/Hongdaenam/ig3k/434


참고문헌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공식 카페 (불편한 용기) http://cafe.daum.net/Hongdaenam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 시위 카페 (BWAVE 비웨이브) http://cafe.daum.net/myboddymychoice

여성의당 공식 홈페이지 https://www.womensparty.kr

페미위키 https://femiwiki.com/w/워마드_누드모델_촬영_및_유포_사건

김서현. (2019.12.27). ‘불편한 용기’가 남긴 시위 문법. 여성신문. 접속일 2020.06.13.,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5167)

윤김지영. (2018.12.29). ‘불편한 용기’의 분노는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꿨나. 한겨레. 접속일 2020.06.13.,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76251.html)

이보라. (2020.02.27).‘여성의당’ 한 달 만에 당원 8200여명. 경향신문. 접속일 2020.06.13. https://news.khan.kr/EPoN

김애라. (2019). ‘탈코르셋’, 겟레디위드미(#getreadywithme) : 디지털경제의 대중화된 페미니즘. 한국여성학, 35(3), 43-78.

김유미. (2019). 페미니즘 열풍, 어떻게 볼 것인가. 계간 사회진보연대. 167, 86-115.

김해원, 박동숙, 이재원, 정사강, 강혜원, 백지연. (2018). 5월 19일, 여성들은 혜화역에 어떻게 모였나?. 언론과 사회, 26(4), 85-139.

박영민, 이나영. (2019). ‘새로운’ 페미니스트 운동의 등장? :〈불편한 용기〉 참여자들의 경험을 중심으로. 시민과세계. 34, 135-191.

정승환, 김희은, 김신우. (2018).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친목질’의 행태와 폐해에 대한 탐색적 연구. 한국디지털콘텐츠학회 논문지. 19(8), 1471-1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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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아. (2019).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서울:바다출판사.

정희진, 서민, 손아람, 한채윤, 권김현영, 손희정, 홍성수. (2018).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X민주주의. 파주:교유서가.


캡처본 (접속일 2020.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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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처7〉 6차 시위 구호문 및 노래 2018.12.13. http://cafe.daum.net/Hongdaenam/ig3k/434

〈캡처8-1, 8-2, 8-3〉 위의 글 (댓글)

〈캡처9〉 카페지기 여성인증입니다. 2018.05.12. http://cafe.daum.net/Hongdaenam/ig3k/10

〈캡처10〉 혼선을 드려 죄송합니다. 2018.05.12. http://cafe.daum.net/Hongdaenam/ig3k/15

〈캡처11〉 본 시위는 생물학적 여성만 참여가능합니다. 2018.05.13. http://cafe.daum.net/Hongdaenam/ig3k/27

〈캡처12〉 (현재 삭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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