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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66호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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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편집위원회 Feb 24. 2024

지친 계절의 날빛

편집위원 단(丹)

불길에 몸통을 부대던 나방이, 날이 밝으면 떠오를까? 

모기향이 그려놓은 실금을 따라 날개를 누덕누덕 꿰맸어 

도망가는 밤나방을 집어삼키고, 날이 새도록 타닥타닥

솟구치는 여름을 거처 삼아 머리를 대는, 가죽이 바싹 마른 것들이 타닥타닥

우린 아직 등 안에 바람을 숨겼어. 다음 계절에는 허물을 벗도록 하자


창문을 두드리는 빗줄기 하나하나가 작고 흐르는 절망이야

왜 투명한 유리 밑에 낯을 내밀고는, 하염없이 믿으십니까? 묻지

어느 날, 북서쪽 창문이 기울어졌다. 엄마 소풍 다녀올게

여전히 건너편의 너머로 내가 눌어붙는다.

우리는 창문이 있는 것처럼 살아간다. 다가가며 부딪히기 위하여

비 오는 밤이 숨겨주는 것은 머물러있는 나입니까, 다가오는 그들입니까? 답했지


언젠가 물뱀이 되는 거야

빗물을 기다리며 빙하의 표면을 핥기에는, 더운 김이 나오잖니

더운 것들은 엉겨 붙으니까, 여행 짐에 빨랫비누를 챙기렴

산 것들을 뒤쫓다보면, 사체들이 나룻배 위에서 흰 천에 싸여 떠밀려온다.

그것만으로 배부르기에는 이 북극곰은 비대했다. 유약한 것만 흘러가니까.


뒤돌아보지 않는 이들의 밑창을 들여다보았다.

당겨진 것인지, 밀려난 것인지, 돌아보지 못하고, 그러하더라

그리하여 나는 그 아이를 어두운 날에 버리고 왔다.

수많은 손이 회벽에 거스러미를 새긴다.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이들만 뭉툭한 손끝을 가질 수 있다.

어른 노릇은 간편하다. 우산을 접는 연습만 한다면


형광등이 내 공책을 들여다본다.

회전하는 선풍기 머리가 벽을 밀고 들어가자, 나는 내 눈꺼풀 안을 들여다보려 노력했다.

절대 뒤돌아보지 않는 등이 나를 가려준다.

앞을 보며 울었다. 

웅크리기에는 날이 너무 더웠고, 발목이 따끔거렸다.

맥박이 뛰자 천장도 쿵쿵거리며 조금, 아주 조금 내려앉았다.


마지막으로

농담이니

마저들 살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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