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 별생각없이 인터넷을 들락이다가 우리나라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다. 대박. 안방에서 폰으로 드라마를 보던 남편에게 소식을 전하고, TV를 켜고, 뉴스를 틀었다. 한 시간정도 대박, 대박 거리다가 문득 '빨리 저 작가의 대표작을 주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정도인 듯 했다. 얼른 주문을 넣고 보니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일 아침쯤 재고 부족으로 못 보내주겠다는 연락이 올 것 같았다. 남편이 "아냐아냐, 출판사에서 발빠르게 노벨 문학상 수상 기념 특별 에디션을 만들지 않을까? 표지도 엄청 예쁘게 해서? 그걸 사는게 낫지 않아?"했다. 일리가 있군. "아냐, 그래도 오늘 주문해서 책을 받는게 더 의미있어"
고등학교 때 나는 도서부원이었다. 그 당시 많은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도서부는 성적이 좋은 학생들로 구성된 특별 선발 집단인 경우가 많았다. 학교 도서관에 들어오는 책을 관리하고 대출업무를 담당하며 동시에 도서관을 아지트로 우리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특권집단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많은 책에 둘러싸여 살게 되면 책은 더욱 안 읽게 된다. 어릴때, 엄마가 없는 살림에서도 그것만은 해주고 싶으셨는지 88권짜리 에이브(ABE) 전집을 벽면 가득 꽂아놓으신 적이 있었다. 그 책들을 읽기에는 조금 어렸던 초등 3,4학년 때쯤 책이 들어왔고, 그 두꺼운 책들이 내게 이른 숙제가 되어 부담을 준 탓에 정작 읽을 수 있는 나이를 지나면서도 쉽게 꺼내들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대신 우리 집보다 더 빈곤했지만 유난히 똑똑했던 큰 이모의 세 남매 언니 오빠들이 약 10년의 시간동안 부지런히 우리집을 들락거리며 그 책들을 알뜰히 읽어내주었다. 풍요속의 빈곤이랄까, 도서관에서 3년을 책속에 파묻혀 지내며 우리는 그래서 더 책을 안 읽었던 것 같다. 대신 온갖 책들의 제목과 표지, 작가 이름만 많이 외웠다. 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유난히 좋은 책을 잘 찾아내는 능력이 있다. 학교 도서관에서 구매희망도서 목록을 요청하거나 아이들에게 읽힐만한 책을 고르기 위해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서평만 좀 읽어보아도 귀신같이 재미있는 책을 찾아내곤 한다. 그렇게 좋은 책을 잘 사는 나는 지금도 책 구매를 즐긴다. 그리고 서재에 꽂아둔다. 읽는건? 그건 그 책이 나를 불러내는 그 날이 와야하는것이다. 그런 날이 존재한다. 책이 나를 운명적으로 부르는 날. 원래 책은 그렇게 운명적으로 만나야하는거다. 우리 식구들은 좋은 책을 잘 사서 잘 꽂아놓고 읽지는 않는 나를 재미있어 한다.
예상대로 주문한 책은 재고가 없다고 연락이 왔다. 그런데 하루 더 기다리니 온갖 쇼핑몰에서 '사나흘 후에 보내줄 수 있으니 이 자랑스러운 노벨상 수상자의 책을 예약 주문하라'는 알림들이 왔다. 인쇄소가 풀가동중인가보다. 그저께 주문했던 세 권의 책을 다시 주문하고 다른 책들을 훑어보는데 단편집 하나가 눈에 띄었다. <내 여자의 열매>? 이거 우리 집에 있는 책인데? 아이 방에 가보니 역시나 꽂혀 있다. 그레이스가 작년에 서평 수행평가를 위해 구입했던 책이다. 마침 집에 있던 그레이스가 '세상에, 그게 한강 책이야? 그거 진짜 이상한데? 나 그 책 고른거 후회했잖아. 이상하던데....'한다. 그래도 주문한 책들이 오기전까지 볼 수 있는 단편집이 있다는 사실이 기뻐서 첫 작품을 읽었다. <내 여자의 열매>
좋았다. 카프카의 <변신>이 살짝 생각나긴 했다. 그러나 하고 싶은 얘기나 정서는 전혀 달랐다. 내용도 잘 기억 안 나지만 <변신>이야말고 진짜 기괴하고 이상했다. 그런데 <내 여자의 열매>는 너무너무 공감이 되었다. 부부가, 사람이 사람에게, 이해받기 원하고 기대기 원하지만 피차 자신의 결핍 때문에 서로를 돕기는커녕 서로의 몸부림이 좌절이 되고 짜증이 되고 그래서 더 외로워지는 그 모든 것이 이해됐다. 50년 가까이 삶을 살아내며 끝없는 갈증을 느껴본 경험이 있어서일까, 20년 넘게 불완전한 또다른 인간과 '함께 하지만 외롭고, 기대하지만 실망을 주는 관계'를 살아봐서일까. 이제 막 스물이 된 그레이스가 '진짜 이상한 소설'이라고 말한 이유를 나는 안다. 그 나이에는 절대 쓸 수 없는 소설이기 때문이고 그 나이에는 절대 읽을 수 없는 책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 기괴하다고 느꼈던 때도 20대였다.
내 말이 진짜 맞다. 책은 그 책이 때가 되어 나를 부를 때 읽어야 한다. 꽂아 놓으면 책이 '읽어줘 읽어줘' 손짓할 날이 온다. 그런데 간혹 유행이, 혹은 허세가 그 손짓이 되어주기도 한다. 지금이 그 때인 것 같다.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독서 놀이 텍스트힙(Text-Hip)에 나도 가세할 때가 된 거 같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올림픽이 열렸던 88년도에 초등학생이었고, 몇 해 전에는 인생 첫 동계올림픽을 구경하러 평창에도 가보았다. 생긴지 얼마 안 된 코엑스몰을 구경하다 우리나라 첫 노벨상이었던 노벨 평화상 발표소식을 길거리에서 접하고 환호했던 게 20대 때였고, 첫 아시안 여성 작가로서 노벨 문학상을 내 또래의 작가가 받게 되는 역사적인 순간에 40대를 보내다니. 이 정도면 나도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나 <포레스트 검프>만큼이나 역사적인 순간을 살아내고 있는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어 좀 뿌듯하다. 그러니 적어도 반 년 정도는 텍스트힙에 빠져 지내도 될 것 같다. 자꾸 허무나 회의나 의미없음 같은 단어들이 불쑥불쑥 끼어드는 중년의 나이에 Hip 같은 허세어린 유행 덕에 질문에 대한 작은 답들을 좀 얻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기대하며 말이다.
자, 과연 오늘은 어떤 책이 나를 부를까? 귀를 쫑긋 세우고 책장 앞에 좀 서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