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새우 태어나다.
드디어 아기새우가 태어났다. 어항을 씨앗조개 녀석들이 점령을 하고, 포기하려던 마음이 더 컸던 그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내 나름대로의 퇴치법을 써가며 이 녀석들을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아등바등했었다. 오늘 드디어 그 빛을 발하는 날.
이 새우란 녀석들이 신기한 게 뭐냐면, 암컷새우의 교미시기는 탈피하는 그때 딱 한 번뿐이다. 탈피를 하고 몸이 말랑말랑 해지면 페로몬을 뿜어내는데 이 페로몬 냄새를 맡은 수컷새우들이 어항 속을 헤엄치며 탈피한 암컷새우를 찾기 위해 한바탕 난리가 난다. 이를 포란춤을 춘다라고 이야기한다. 아주 현란하게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아주 미친 듯이 난리가 나는데, 이게 춤을 추는 것과 비슷해 보여서 그런가 보다. 그러다 숨어있는 암컷을 발견하게 되면 그때를 틈타! 연약한 갑을 뚫고 교미를 시도한다. 그냥 복불복 게임이다.
그렇게 임신?을 하게 되면, 머리 쪽에 있던 암컷의 난황이 커지기 시작하며 꼬리 쪽으로 점점점점 내려오게 되고, 꼬리 쪽으로 거의 다 내려오게 되면 암컷은 몸을 동그랗게 말아 말 그대로 새우깡 자세를 취한 뒤, 내려온 알들을 하나하나 자기 아랫배에다 붙인다.
그리고 알이 부화할 때까지 다리를 흔들어 산소를 공급해주기도 하고, 스펀지 여과기 뒤에 숨어 천적들에게 공격당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몸을 사리며 그날을 기다린다. 초보암컷은 종종 알을 버리기도 하지만, 나는 그런 경우는 알을 찾기도 힘들거니와 마땅히 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해 그냥 내버려 두지만 대부분 우리 집 암컷들은 끝까지 알을 지킨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알이 부화하기 시작하면 독립적인 개채로 새우는 자라나게 된다. 어항에 붙은 이끼를 뜯어먹고, 때로 어른새우들 몰래 바닥에 내려가 어른새우들이 흘린 먹이를 주워 먹으며 살금살금. 어른새우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탈피를 하고, 조용히 살금살금 자라기 시작한다.
저 눈에도 보이지 않아서 돋보기를 들이대며 봐야지 겨우 보이는 저 쪼끄만 생명체 하나하나가 모여 어느 날 새우가 문득 새우의 숫자가 불어났음을 느꼈을 때 그때의 그 뿌듯함은 이루다 말 못 한다. 자연의 신비이며, 매일매일 어항 컨디션을 확인하고 돌봤던 나의 보람이다.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나는 나만 생각한다. 내가 하기 싫은 건 목에 칼이 들어온다 그래도 하기가 싫다. 하라 그러면 입이 한 댓 발 나오고, 그러다 심통이 나는 날엔 일부러 일을 못하는 척해서 완전히 일의 체계를 망가트려버린다. 나는 정말 못된 인간이다.
그래서 나는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다. 예전에 엄마가 날 꾸중하실 때마다 '너도 너 같은 딸 낳아봐'라고 하셨는데 나는 나 같은 자식을 낳기 싫어서도 그렇거니와, 어떤 동물이든 유전자를 물려받은 두 생명체 간의 끈끈한 유대관계- 심리학책에선 이것을 라포라고 했다. 그 라포를 형성할 만큼 맘에 여유도 없고, 또 그 라포를 형성할 만큼 나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내가 좋은 부모에서 '좋은 모'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할까 봐.
좋은 부모에 대해 생각해 보자면, 물질적으로 많이 밀어줄 수 있는? 아니면 어떤 면에서 완전 전문적이고 학력이 높아 모든 걸 척척박사처럼 해결해 줄 수 있는? 아니면 자식이 해달라는 걸 다 해줄 수 있는 그런 완벽한? 뭐 여러 가지든 나오겠지만... 나는 숨이 끊어지는 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 자식은 어떻게든 끝까지 인격적으로 길러내는 부모가 좋은 부모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인격적으로 길러내는 데에 들어가는 돈이나 지식, 능력은 부차적인 문제인데, 문득 예전에 가난한 집에서 아이를 낳으면 학대라는 뭐 그런 궤변에 상처받았던 적도 있다. 이 말을 도대체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이 말을 처음 공개적인 자리에서 시작한 사람은 진짜 사회적으로 큰 타격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 이게 유행어가 되기 시작하더니 이제 아무나 그냥 가난하면 애 낳지 말아야 한다 염불만 왼다. 그래봤자 방구석 오은영인데. 웃긴다.
나 역시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그 나이에 안 해도 될 고생을 해보고 그 나이에 안 해도 될 상처를 받았던 적이 있어서 물론 그게 뼈아픈 상처이긴 하지만 우리 집이 가난해서 내가 학대를 받으며 성장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되려 그런 말을 한 얼굴도 없는 당사자들에 의해 되려 내가 학대받았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뭔데 남보고 학대받았다는 둥 뭐라는둥 도장 찍는지.
난 타인을 전혀 존중하지 못하는 저런 사람은 절대 좋은 부모 밑에서 자랐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일차적으로 부모와 자식 간에 서로 존중이 없었기에 타인의 삶도 존중하지 못하고 함부로 재단하고 뇌까리며 저런 말을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아무 거름망 없이 갖다 내뱉는 거다.
두 번째로, 자식에게 관심이 있어야 한다. 이건 비단 부모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말이다.
요즘 나는 시간이 남으면 디페스 게임을 즐겨한다. 매칭을 하고 나와 상대방이 서로 돈을 모아 유닛을 소환하고 소환한 유닛으로 몬스터를 잡고, 몬스터를 잡아서 번 돈으로 다시 유닛을 점점 더 좋은 걸 뽑아가면서 단계를 높여나가는 건데, 협동하는 게임이다 보니 별 사람들을 다 만난다.
주고받고 서로 왔다 갔다 서로 매칭이 잘돼서 웃으면서 게임하는 사람을 만나는 반면, 진짜 아무것도 할 줄 몰라서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요청하면 바로 "응, 느금마"가 나온다. 아니 왜? 그 말이 도대체 왜 튀어나오는지? 나는 진짜 그런 말 하는 애들의 부모님 얼굴이 보고 싶다.
10대 20대 친구들의 문맹률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심심한 사과'를 말 그대로 심심해서 하는 사과로 받아들이거나 '00명 모집'에서 진짜 0명을 모집하는거냐며 갑자기 급발진하는 거까지. 문맹률도 그러하지만 요청이나 충고를 자신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생각하며 조금이라도 서운한 말 하면 진짜 무슨 미친 사람처럼 날뛰는 경우를 종종 본다.
자식이 어떻게 엇나가고 있는지 아무 관심도 없고 그저 관심 있는 거라곤 자식이 주기적으로 받아오는 성적표 그거 말곤 관심도 없고 성적 조금 떨어지면 바로 학원 가볼래?
mzmz 그러지만 이젠 뭐 이런건 소용없고 갈등상황에서 면대면으로 만나 대화하는건 무서워서 못하고, 인터넷에서 응 느금마 해버리면 끝나 버리는 참 이상한 세대를 직면하고 있다.
내가 20대까지만 하더라도 인터넷 안에서는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가고 생산적인 이야기들, 훈훈한 이야기들이 오고갔는데 요즘은 살기가 힘들어서 그런지 아니면 뭐가 달라진건지 그냥 타인의 다른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와 조금 성향이 다르면 그냥 무조건 욕을 '박거나' 아니면 '응 느금마'해버리는 참 이상한 상황.
내 자식이 어디서 무슨짓을 하고 다니는지 관심이 없었기에 벌어지는 참 말도 안되는 비극이자 촌극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항을 알뜰살뜰 보살피는것 처럼, 사람들도 자신의 자식을 좀 알뜰살뜰 보살필순 없나. 엇나가면 따끔한 훈계로 가르칠법도 하지만 내자식은 안그러고 다닐거야 귀 틀어막고 눈 틀어막고 있으니 되려 이런 상황은 더 빈번해지지 않을까 싶다.
어항을 보살피며 느끼는점은 참 많다. 주기적으로 환수도 해줘야 하고, 어항물의 온도도 맞춰줘야 하고, 어항에 물이 새진 않는지 챙겨봐야 하고, 어느순간은 씨앗조개의 출현으로 어항에 관심이 뜸해졌던 적도 있지만 하나의 인격체를 인격체로 빚어내는 과정이니 만큼 자식을 빚어내는 과정은 내가 어항에 붓는 수고로움보다 그 이상의 수고로움이 있어야 하거늘.
새우가 자신이 품은 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듯, 내가 씨앗새우가 창궐한 어항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으켜 세웠듯, 아이가 잘못 되어가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돌이켜 자식을 끝까지 포기 하지 않고 바른길로 올려놓는것. 좋은 부모로서의 제일 큰 덕목이 아닐까 싶다.
1. 이 글은 오늘 게임하다 느금마 거리는 애들 한 다섯명 만나고 쓴 글 맞음.
2. 느금마 거리는 애들은 부모 얼굴이 진짜 궁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