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임, 꾸준함, 끈질김 3박자
차샘은 애들 말을 어떻게 다 기억해?
기억력이 좋은건가?”
어린이와 함께 살아본 어른이라면 그들이 던진 밑도 끝도 없는 말 한마디에 웃음이 터지거나 당황하거나 반성하는 일이 있었을 것이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도 한 번쯤 겪어본 일들이 글로 쓰여지니 공감을 해주신다.
어릴 때부터 나는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주변을 관찰하고 기록해 왔다. 지금도 내 공간과 내 가방 속에는 이면지를 잘라 집게로 집어 만든 수첩들이 있다. 근무 중 통화나 회의 등에서 항상 쥐고 있는 업무용, 아이들 관찰용, 문득 드는 생각을 끄적이는 호작질용 등 용도별로 쓴다.
교장실에서는 교장 선생님 표정을 분류해 그리고 말풍선 속에 말씀을 메모한다.
아이들 대화를 엿들으며 적어놓은 메모에서 그들에게 맞는 수업 아이디어를 찾는다.
안경이 매일 달라지는 멋쟁이 팀장님을 관찰하고 안경 변경 패턴을 알아맞춘다.
일이 풀리지 않을 때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날려놓은 메모들을 다시 짚는다.
스마트한 시대이지만 난 아직 종이 뭉탱이가 편하다.
내 수첩을 본 아이들은 나를 따라 한다. 막상 들여다보면 낙서하고 있다는 걸 들키지만, 겉으로 보기엔 뭔가를 계속 쓰는 모습이 멋진가 보다.
기록하고 휴대하기 좋은 손바닥만 한 크기의 수첩을 선물로 준다.
‘안녕’ 어떻게 써요?”
특히 1학년들은 맞춤법을 물어보는 경우가 많은데 그 수첩에 써주면 앞뒤를 돌려보며 단어들을 새긴다. 이맘때쯤 되면 수첩 속 글씨가 가득 찬 만큼 성장했다.
내가 ‘안녕’을 몰랐다고?”
하고 어이없어 하는데 내가 더 어이없다.
수첩이 교실 바닥에 떨어져 있다. 들춰보니 우리반 남학생들 순위를 매겨놓고 1위 아이의 말투와 옷차림, 그 날의 점수가 적혀있다. 한 여자아이가 수첩을 뺏으며 나에게 윙크한다.
그 녀석에게서 나를 본다.
쓸데없다는 걸 기록한다고 누가 뭐라 해도 꿋꿋이 계속 해야 한다.
끄적임, 꾸준함, 끈질김 3박자가 맞으면 뭐라도 된다.
‘차탐정’은 내 별명 중 하나이다.
쓸데없는 짓을 잘했던 나는 탐정을 겸하는 선생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