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오이 맛있으신가요?
손이 부들부들 떨리지만 꾹꾹 눌러 쓴다.
우리 학교는 아파트로 둘러싸인 도심 속에 있다.
텃밭은 만들어 주지 못하지만, 작물을 심을 수 있는 큰 화분을 외부에 놓아 원하는 학급이 심고 관리할 수 있다.
학생들과 선생님이 작물 종류를 정해 비료를 담고 모종을 심는다.
매일 일찍 나와 물을 주고 주말이나 연휴에도 멈추지 않는다.
흙을 만지며 잎을 따주고 잡초도 뽑는 손들이 꽤 야무지다.
열매 맺히는 순간, 아이들의 환호성 소리가 온 학교를 울린다.
이렇게 소중한 것을 먹을 수 없다며 너스레를 떤다.
유치원생부터 모든 학생이 다양한 식물의 한 살이 과정을 관찰하고 있었다.
좋은 땅을 만들고 꾸준히 애쓴 만큼 작물이 노력에 응답해 준다.
조그맣게 맺혀 점점 커지는 열매를 보며
자연의 수많은 생명들이 ‘힘껏 산다는 것’을 느낀다.
조금만 더 자라면 상추와 오이를 따서 비빔면을 해 먹기로 약속했다고 후배 선생님이 환히 웃었다.
주말이 지나고 그 반의 오이는 모두 사라졌다.
아이들은 분노하고 속상해했지만
식물은 또다시 열매를 맺을 것이며
더 필요한 분들이 가져가셨을 수도 있으니 넓은 마음으로 기다리자고 지도한다.
아이들은 이전보다 더 심혈을 기울여 돌보고 기도한다.
2주일이 지난 어제, 다 큰 오이가 또 사라졌다.
어제 확인했던 남은 2개의 작은 오이.
오늘은 그 오이마저 없다.
고추며 딸기며 호박이며 아무 열매도 없다.
사실 작년 우리 반 방울토마토가 다 사라지고.
나는 다시는 야외 화단에 작물을 심지 않기로 했었다.
우리 반의 실망이 되풀이되고 있다.
들떠 있던 후배 선생님들과 아이들의 표정이
무기력으로 바뀐 걸 보니 내가 겪은 일보다 더 속상하다. 마음이 아파 눈물이 난다.
아이들의 상처는 오래 갈 것이다.
선생님, 이제 물 주고 싶지 않아요
잠을 못 자겠다.
어른들이 이럴 수 있나.
CCTV는 있다.
그러나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순간, 행복한 재잘거림은 돌아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