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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완희 Mar 23. 2024

8화 돌이 씨앗을 품듯, 나무가 돌을 품듯

with 제주도 '거문오름'

 가끔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비우고 채우며, 비워지지도 채워지지도 않은 채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음악이 있다. 바로 '015B'의 노래. 조용히 015B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나만의 감성에 젖어 '옛 추억'에  빠질 때가 있다.



그런 날은 지금까지 나의 인생사, 모든 사진들을 꺼내어 나의 어린 시절부터 20대 리즈시절, 그리고 결혼앨범까지 몇백 장의 사진을 한참 동안 한 장씩 한 장씩 훑어보며 깔깔거리며 웃기도, 또 코 끝이 찡해지는 뭉클함도 느껴보는 날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들의 크는 모습이 너무 아까워 기록해두고 싶은 엄마마음에 아이가 생기고부터 나는 '포토북'을 만들었다. 비록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고부터는 포토북 대신 "우리 가족만의 밴드"를 개설하여 밴드에 아이들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사진은 '앨범'으로 한 장씩 넘겨가며 봐야 제맛이다.



그러던 중 내 눈에 들어온 사진 한 장.

"함께 걷자 오래오래."


 첫째 아이가 6살, 둘째 아이가 4살 때였다. 나와 아이들, 오롯이 '셋'이서 제주도 보름 살기를 할 때 '용눈이오름'에 올라가서 찍은 사진이었다.  


 이 사진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용눈이 오름은 언제 봐도 너무 예쁘다.'

'오름 올라가는데 내가, 이때 둘 다 원피스를 입혔네.'

'애들 너무 좋아한다.'


 그리고 '또 걷고 싶다. 제주도'

 


 용눈이오름의 사진 속으로부터 5년 후 첫째 아이 11살 둘째 아이 9살이 되던 해, 우리는 다시 제주도로 걷는 여행을 떠났고, 항공권 다음으로 예약한 곳이 바로 오늘 소개할 '거문오름'이다. 숙박예약보다 거문오름 탐방예약을 먼저 했던 건 그만큼 내가 아이들과 가보고 싶었고, 그곳을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숙소는 '교래자연휴양림' (거문오름까지 차로 15분 정도 되는 거리)이다. 엄마의 늦은 클릭속도로 한 곳에서의 연박 예약에 실패하여, 하루는 숲 속의 초가집, 이틀은 휴양관에서 지내야 하기 때문에 어제 풀었던 우리의 모든 짐들을 다시 챙겨서 퇴실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탐방예약시간이 9시 30분이라 혹여나 늦지 않을까 하는 걱정되는 마음이 있어서 일찍 일어나 분주하게 짐을 챙기며 아침을 준비했는데, 내가 "너무" 분주하게 움직인 탓인지 아이들이 6시에 깨고 말았다.

 

 그럼에도 기분 좋게 아침을 맞이하며 무사히(?) 퇴실을 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왔던 아이들이 너무 고마웠다. 엄마가 힘들까 봐 양손 가득 짐을 나눠 들고 휴양림을 빠져나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잘 키운 딸 둘, 열 아들 안 부러운 마음이었다. 그만큼 아이들이 기특했다.


 4월 14일의 날짜였지만 차에 히터를 틀어야 할 만큼 추웠던 날씨. 따뜻한 봄을 기대하며 제주도에 왔는데,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흐렸던' 날씨의 아침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으흑.. 날씨요정...'   

혹시 몰라, 패딩잠바와 털모자, 장갑을 챙겨 왔는데 안 챙겨 왔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며 안도의 숨을 몇 번이나 내 쉬며 거문오름으로 향하는 운전대를 잡았다.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입구(거문오름)로 가는 길, 들판에 자유롭게 있는 말들을 보며 아이들도 나도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되었다. 정말 '제주'스러웠다. 그렇게 15분 정도 차로 이동하여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입구에 도착했고 우리는 건물 안 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예약확인을 한 후, 거문오름 출입증을 받았다.

 9시 30분이 되어 우리의 거문오름 탐방을 도와주시는 해설사분이 밖으로 나오셨고, 거문오름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오늘 걸을 코스, 그리고 거문오름을 걸으며 주의해야 할 사항에 대해 알려주셨다.


 먼저, '오름'이라고 하는 것은 제주 방언으로 '자그마한 산'이라는 뜻이며, 한라산이 엄마화산이고 오름들은 새끼화산인데 제주에는 360개가량의 오름이 있다고 했다. 또한 오늘 들어가 볼 거문오름이 만들어진 초기에 용암이 뿜어져 나오고 흐르면서 벵뒤굴, 김녕굴, 만장굴, 용천동굴 등 20여 개의 용암동굴계를 형성했다고 알려주셨다.


거문오름은 제주도 한라산 기슭에 이루어진 기생화산 중 하나로, 숲이 우거져 검게 보인다고 해서 검은 오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높이 456m의 거문오름이 생성될 당시, 흘러나온 용암류가 경사지형을 따라 흘러내리면서 생긴 용암동굴이 주변에 산재해 있으며, 깔때기처럼 움푹 들어가 있는 분화구에는 낙엽수림이 많이 자라고 있으며 화구호에는 1년 내내 물이 고여있어 학술적. 자연유산적 가치가 매우 높아, 국가지정문화재(천연기념물 제444호)로 2005년에 지정되었고, 2007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다.



사진출처.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홈페이지

[거문오름의 코스]
1. 정상코스(약 1시간 소요 2.1km) / 진한분홍색
2. 분화구코스(약 2시간 30분 소요 5.5km) / 하늘색
3. 전체코스(약 3시간 30분 소요 6.7km) / 주황색


 탐방코스는 총 세 가지가 있고, 정상코스와 분화구코스는 해설사선생님과 함께 동행할 수 있으며 전체코스는 분화구코스가 끝난 후 나뉘는 갈래길에서 개인적으로 더 걸어봐도 된다고 하셨다.


 주의사항으로는 물 외에 어떤 음식물도 반입 불가하며, 등산스틱이나 우산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다. 거문오름이 세계자연유산인 만큼 엄격하게 관리가 되고 있는 곳이라는 것도 함께 덧붙여 설명해 주셨다.




 


 평일이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초등학생(초4. 초2)은 우리밖에 없었고 모두 50대 여성분들이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어디에서 왔느냐, 몇 살이냐, 어떤 분은 아빠는 왜 같이 안 왔느냐 등 물어보시며 제2, 제3의 엄마처럼 거문오름을 걷는 동안 우리 아이들을 정성스레 챙겨주셨다.


 거문오름의 초입에 들어서며 해설사선생님은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부터 15~20분 정도는 오르막이 계속되는 길이라서, 해설은 따로 없고 첫 번째 전망대에서 해설을 시작할게요. 조심해서 저 따라오시면 됩니다. 계단이 미끄러워울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처음 시작되는 길의 양 옆쪽에는 삼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져있는 삼나무숲이었다. 해설사선생님 말씀대로 첫 번째 전망대로 가는 흙길, 데크계단길 '모두' 오르막길이어서 몸도 무겁게 느껴지고, 숨도 거칠었지만, 차분히 올라가려고 아이들도 나도 애를 많이 쓴 것 같다. 아이들과 내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걷는 것이 처음이다 보니, 평소보다 더 긴장감이 느껴졌었던 순간이었다.



 첫 번째 전망대에 도착하니 우리가 제법 높이 올라왔음을 느꼈다. 거문오름 안에 있으며, 거문오름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오름들이 눈에 들어왔고 흐린 날씨였지만 멀리 한라산도 흐릿하게나마 보였다. 그리고 첫 번째 전망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있는 거문오름 정상 (456m)으로 이동했다. 정상에서는 해설사선생님과 분화구안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나무들이 많아서 쉽게 가늠하긴 어려웠지만, 거문오름의 분화구가 한라산 백록담 분화구의 3배라고 알려주셨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우리는 지금 거문오름 위쪽에서 다른 여러 오름들과 거문오름의 분화구를 보고 있지만, 거문오름에 와서 가장 중요한 건 거문오름 분화구안을 들여다보고, 또 들어가 보는 것이라 몇 번이나 강조하셨다. 그렇게 말씀하신 덕분인지 우리는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모두 두 번째 분화구코스로 향했다.


 거문오름을 걸으며 가장 높은 위치인 정상의 가장자리에서, 점점 분화구 아래의 중심으로 들어가며 '자연 그대로의 원시림'을 느꼈다. 내 머리 위로 보였던 하늘을, 나뭇잎들이 나무줄기들이 점점 하늘의 시야를 가렸고, 옆으로는 꽈배기처럼 꼬불꼬불 올라가는 나무의 가는 줄기들과 빽빽하게 우거진 나무들로 가득했고, 숲 아래에는 바위. 돌을 덮고 있는 수많은 이끼들과 여기저기 자라 있는 고사리들까지, 거문오름은 용암동굴들만 만들어낸 것이 아닌, 아름다운 '숲 동굴'까지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거문오름이 만들어 낸, 긴 숲 동굴 안으로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분화구 안의 풍경을 보며 마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쥬라기공원'에 나오는 배경이 떠오르기도 했다. 영화 속 백악기 시대에 살던 공룡들이 되살아나 우리 앞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은 환상을 일으킬만한 분위기로 가득 찼다. 그만큼 '분화구'안은, '곶자왈'의 풍경은 신비로웠다.


 '곶자왈'이라는 것은 '곶'은 숲이라는 뜻이고, '자왈'은 자갈이나 바위 같은 암석을 의미한다. 제주도의 독특한 화산지형 중 하나이며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 수풀과 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으로 암석들이 불규칙하게 널려있는 지대에 형성된 숲으로 독특하고 다양한 동물과 식물이 같이 살고 있는 독특한 생태계가 유지되는 지역이다. 그래서 그런지, 곶자왈을 걸으며 나는 '곶자왈' 특유의 냄새를 맡았다. 일반 풀냄새와는 전혀 다른 특별한 냄새. '이끼'가 많은 곳에 가면 맡을 수 있는 보통의 이끼 냄새에서, 100배는 더 진한 이끼 냄새라고 하면 상상이 될까?


 걷다가 나무에 붙어있었던 왕 달팽이도 보았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비 오는 날 밖에서 발견한 달팽이를 집으로 데려와 키운다고 했던 적이 있었다. 우리는 투명한 통에 흙과 상추를 깔고, 그 위에 달팽이를 놓아둔 후 통 위에 양파망을 씌워 달팽이를 키운 적이 있었는데 그다음 날 어떻게 된 일인지 달팽이가 사라졌었다. 그렇게 아이들과 나는 '달팽이' 하면 '행방불명된 달팽이'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었는데, 이제는 거문오름의 '왕 달팽이'도 기억이 날 것 같다.    



 그런데 거문오름을 걸으며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제주도 전역에 군사시설을 만든 갱도도 확인할 수 있었다. 거문오름에서만 무려 10곳이라고 하였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을 동원하여 갱도 진지를 팠다고 하니,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을까. 란 생각이 들면서 아름다운 이곳에 어두웠던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게 되어 화도 났고 마음도 아팠다.  



 분화구 코스가 거의 끝나갈 때쯤, 해설사선생님께서 거문오름에 있는 동굴 중, 가장 독특한 동굴의 모양을 가지고 있는 '거문오름의 수직굴'을 소개해주셨다. 일반적인 용암동굴이 수평으로 발달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항아리 모양을 하고 있는 동굴이고 아파트 11층정도의 높이라고 하니, 꽤 깊고 추락의 위험이 있어 현재는 동굴입구를 막아놓은 상태라고 하셨고, 거리를 두고 수직굴을 들여다봤음에도 무서웠던 그때의 감정이 다시 생각난다.

 그렇게 예상시간은 2시간 30분이었지만, 설명과 중간중간 짧은 휴식이 함께 진행되다 보니 거의 3시간가량 걸었던 두 번째 분화구코스가 드디어 끝이 났다. 해설사선생님께서 세 번째 코스로 가는 갈림길에서 "1시간 정도 더 걸리는 코스인데, 둘러보실 분들은 더 보고 나오셔도 됩니다."라고 말씀을 하셨지만, 한 명의 낙오자(?) 없이 해설사 선생님을 포함한 우리는 모두 출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한바탕 웃고는, 거문오름의 걷기를 마무리했다.


 해설사선생님의 '거문오름' 이야기를 들으며 5.5km 거리를 세 시간 동안 걸었지만 걷는 내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선생님의 이야기 속에 빠져있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거문오름을 머리로만 익히는것이 아닌 몸으로 걸어보 귀한가치의 소중함을 느껴보았던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거문오름의 분화구코스를 빠져나오는 길에서 어떤 큰 나무를 보았다. 들린 뿌리의 방향으로 강한 바람이 불어 아슬아슬 버티고 있었던 나무였는데, 신기한 나무아래엔 흙이 아닌 돌이 있었다. 해설사선생님은 이 나무를 보며 '곶자왈'의 숲에 대해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화산활동이 일어나 거문오름에 여러 용암동굴들이 만들어졌고 시간이 흐른 뒤, 돌 사이사이에 식물들이 자라게 되어 나무와 돌이 함께 공존하게 되는 것이 곶자왈의 독특한 지형이에요."  


 

'곶자왈은 돌과 나무의 공존'이라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한참 동안 흔들리는 나무를 보며 나는 '나무의 씨앗이 돌 사이로 들어가 싹을 틔우게 되면서 처음엔 돌이 씨앗을 품고, 씨앗이 자라 나무가 되면서 나중엔 나무가 돌을 품어주는 곶자왈의 돌과 나무가 너무 아름답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연아 나예야.

돌이 씨앗을 품고, 나무가 돌을 품듯

어려운 자연환경을 함께 이겨내고 버티는 

'곶자왈'의 돌과 나무처럼

우리도 서로 품어주며 살자꾸나.






걷는 것이 많이 힘들지만, 늘 함께 동행해 주는 나연이 나예 너무 고마워.






아이들과의 일곱 번째 걷기 여행 중, 어느 한순간.



우리의 걷기 여행은 계속 진행된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첫째 아이의 일기.


 근데, 말로만 못할 정도로 자연관경이 감탄할 정도로 멋졌다. 나는 식물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 보라색인데 암컷이고 붐 떠있던 애는 '붕붕님'이고, 이끼는 '산미역'이고, 삼나무는 꽃가루를 많이 일으켜서 그게 황사 같아서 '사막의 바람'이라고 지어줬다. 그리고 마지막 고사리는 덥고 습한 데에 잘 자라고, 오늘 내가 본 건 대부분 작아서 '미니 푸릇'이라고 지어줬다.

- 거문오름을 다녀온 후, 그날 저녁 아이가 쓴 일기의 일부분 -





[거문오름 탐방예약방법]


거문오름은 사전예약제로 운영되고 있다. 1일 450명, 9회 운영되며, 회당 50명의 인원으로 한정되어 있다. (매주 화요일, 설날. 추석은 자연 휴식의 날로 탐방 불가), 기상악화 시에도 전면 통제된다.

전화예약. 인터넷 예약이 모두 가능하며, 탐방 한 달 전 1일 오전 9시부터 탐방 전날 17시까지 선착순으로 예약을 할 수 있다.

거문오름 탐방료는 어른(개인) 일 경우 2천 원, 청소년. 군인(개인)은 1천 원, 어린이(개인) 1천 원이다.


탐방예약 -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jeju.go.kr)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홈페이지에서 거문오름 탐방예약을 할 수 있으며, 예약이 완료되면 안내문자를 전송받게 된다. 전송된 안내문자에 예약 탐방시간과 거문오름 찾아오는 길, 탐방 시 주의사항 등 예약확인내용을 받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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