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8일
2013년 3월 11일
신(神)이 우주 만물을 처음으로 만들었듯, 내가 전에 없던 새로운 '인간'을 세상밖으로 처음 존재하게 했던 그날, 그 어떤 날보다 아름다운 날로 나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난 2011년, 둘째 아이가 태어난 2013년 후부터 나의 3월은 그 어떤 봄 보다 기쁘게 다가왔다. 비발디의 사계 中 '봄' 1악장처럼, 아이의 옹알이는 봄에 지저귀는 새들의 노랫소리와 같았고, 아이의 미소는 평온한 봄의 즐거움이 느껴졌고, 집이 떠나갈 듯 큰 울음소리를 내며 안아달라고 했던 아이의 떼씀은 봄날의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나를 놀라게 했지만, 아이라는 존재는 추운 겨울이 지나고 찾아오는 따뜻한 봄의 생명력 그 자체였다.
아이들은 생일 때마다 나에게 자신들이 태어났던 날의 여러 상황에 대해 묻고,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나는 매년 아이들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들을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듣 듯, 나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가끔 MSG를 살짝 첨가해 '와니(엄마)와 허니(아빠)의 신화' 속 '나연이 나예의 탄생'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이어가곤 했다.
아이들에게 '창조(創造, creation)'와 관련된 이야기는 굉장히 흥미롭다. 그리스로마신화, 우리나라 역사의 건국신화처럼 '설문대 할망'의 제주 설화 또한 아이들은 신비롭게 생각했다.
(*설화(說話): 각 민족사이에 전승되어 오는 신화, 전설, 민담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아주 먼 옛날, 밑도 끝도 없는 짙은 어둠 속에 커다란 불기둥들이 사방팔방에서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하늘로 솟은 수많은 불덩어리 들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면서 태양과 달과 별이 되고, 아래로 떨어져 내린 불덩어리 들은 땅과 바다가 되었다.
이승과 저승이 갈라지던 어느 날 시커먼 연기와 함께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망망대해 속에서 거대한 여인이 떠올라 하늘을 향해 우뚝 섰다. 여인은 젖은 치마폭 가득가득 화산재와 돌덩이들을 담아 바다 가운데로 옮겨 섬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가 떠오르고, 해가 지고 밤낮이 바뀌는 동안 마침내 섬이 만들어지고 은하수에 가닿는 한라산도 생겨났다. 그러나 봉우리가 하늘에 닿는 것이 마음에 걸린 여인은 그 꼭대기를 꺾어 내던졌다. 그것이 지금의 산방산이 되었고, 그때 치마폭이 해진 틈으로 흘러내린 흙들이 여기저기에 쌓여 360여 개의 오름들이 생겨났다.
그때의 사람들은 어둠을 밝히는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밤이 되면 칠흑처럼 어두워 섬사람들은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섬사람들을 위하여 여인은 성산일출봉 암벽에 있는 등경돌에 밤마다 불을 밝혀 주었다. 그 불은 고깃배들의 바닷길도 인도해 주었다. 이렇게 제주섬을 만들고 처음으로 등경돌에 불을 밝혀 준 그 여인을 제주사람들은 설문대할망이라고 불렀다.
설문대할망은 얼마나 키가 컸던지 한라산을 베개 삼고 누워 두 다리는 관탈섬(제주북쪽 용담 해안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면 보이는 작은 섬)에 걸쳐 낮잠을 자기도 했다. 한라산 백록담에서 관탈섬까지의 거리는 49,000m라고 한다. 그렇게 셈해 보면 설문대할망은 한라산 높이의 25배나 되는 크기다.
설문대할망이 백록담에 걸터앉아 왼발은 관탈섬에, 오른발은 지귀도에 걸치고, 일출봉 분화구를 돌구덕 삼아 빨랫감을 담고는 우도를 돌빨래판 삼아 빨래를 했다고도 한다.
설문대할망은 명주 100동으로 속옷을 하나 만들어 주면 제주에서 육지까지 돌다리를 놓아주겠다고도 했다. 한 동은 100 필을 가리킨다.
그래서 제주사람들은 모두 힘을 다하여 명주를 모았지만, 99동밖에 모으질 못했다. 할망의 속옷은 미완성이 되어버렸고 돌다리를 놓는 일도 중도에 그만두게 되었다.
그때 육지와 다리를 놓던 흔적이 조천읍 신촌리 앞바다에 남아 있는데, 육지를 향해 흘러 뻗어나간 엉장매코지가 바로 그곳이다.
설문대할망은 자신의 키가 얼마나 큰가를 실험해 보기 위해 깊다고 소문난 샘에 발을 들여놓는다.
처음 시도한 곳은 제주시 용담동의 용연이었는데, 용연의 물은 설문대할망의 발등을 겨우 적셨다.
다시 서귀포시 서홍동에 있는 홍리물이 깊다는 말을 듣고 들어서 보니 무릎까지 닿았다.
마지막으로, 설문대할망은 끝이 없다는 한라산 물장오리의 깊이를 재어 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그 큰 몸이 차츰차츰 물속에 빠져들더니 이윽고 아주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물장오리가 밑이 터져 한없이 깊은 물임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설문대할망은 한번 물 위에 솟아올랐다가 자신이 만든 물장오리 속으로 영영 사라져 버렸다.
※ 제주 돌문화공원홈페이지 '설문대할망 신화' 내용을 참고하였습니다.
설문대할망이 한라산 꼭대기의 흙을 걷어내어 바다 쪽으로 '휘' 던지며, 치마폭이 해진 틈으로 여기저기 떨어진 흙이 만들어냈을지도 모를 작은 산 '거문오름'을 다녀온 바로 그다음 날, 우리는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을 오르기로 했다.
한반도의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한라산'은 높이 1,950m로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2007년 6월 27일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우리나라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고, 2010년 10월 4일에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받았다.
사진출처. 한라산 국립공원 홈페이지 [한라산을 오를 수 있는 코스]
1. 어리목탐방로(윗세오름 2시간, 남벽분기점 3시간) 6.8km
2. 영실탐방로(윗세오름 1시간 30분, 남벽분기점 2시간 30분) 5.8km
3. 성판악탐방로(탐방예약 필수/ 진달래밭 3시간, 정상 4시간 30분) 9.6km
4. 관음사탐방로(탐방예약 필수/ 삼각봉 3시간 20분, 정상 5시간) 8.7km
5. 돈내코탐방로(남벽분기점 3시간 30분) 7km
6. 어승생악탐방로(어승생악 정상 30분) 1.3km
7. 석굴암탐방로(석굴암 50분) 1.5km
한라산을 오를 수 있는 코스는 총 7코스가 있지만, 한라산 정상 '백록담'으로 오를 수 있는 코스는 3.성판악탐방로와 4.관음사탐방로 코스가 있으며, 한라산탐방 예약시스템 홈페이지 한라산탐방 예약시스템 (jeju.go.kr)에서 꼭 "탐방예약"을 해야 백록담을 오를 수 있다.
[탐방 시 주의사항]
지정된 탐방로를 이용해야 하며, 계절별 탐방로 통제시간이 정해져 있으므로 탐방 전 확인을 해야 한다.
기상청 기상특보 ( 호우, 태풍, 대설 주의보 및 경보 ) 시 탐방이 부분통제 혹은 전면통제 되는 구간을 확인해야 한다.
국립공원 구역 내에서 식물, 곤충, 토석채취 등 일체의 자연훼손을 금지한다.
한라산은 날씨의 변화가 심한 지역이므로 비상식량( 사탕, 초콜릿, 소금 등)과 여벌옷을 준비해야 하며 겨울철 탐방 시에는 방한복, 아이젠, 장갑, 따뜻한 물 등을 준비해야 한다.
한라산국립공원에서 야영과 취사가 가능한 곳은 관음사지구 야영장이며, 그 외의 지역은 야영과 취사가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
1회용 도시락 및 화기물질 반입, 음주행위, 흡연 등이 금지되어 있다.(김밥, 햄버거는 허용)
아이들과 나, 우리 '셋'이 한라산 백록담 정상으로 오를 코스는 한라산 탐방로 중 가장 긴 '왕복 19.2km'의 '성판악 코스'이다. 난이도는 보통이며, 탐방로의 시작부터 끝까지 매점은 없다.
사진출처. 한라산탐방 예약시스템 홈페이지 성판악 탐방안내소(해발 750m)를 지나, 속밭대피소, 사라오름 입구, 진달래밭대피소를 올라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다. 평균 진달래밭까지 편도 3시간, 백록담 정상까지는 편도로 4시간 30분, 왕복 9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동절기(11,12,1,2월)에는 입산시간이 06:00부터 성판악 탐방로 입구는 12:00부터, 진달래밭통제소는 12:00부터 정상 탐방이 통제된다.
성판악코스로 한라산 백록담을 올라가기로 결정하고부터 나에게 고민이 생겼다.
첫째, '제주국제대학교'에 주차한 후, 순환버스를 타고 성판악탐방안내소까지 갈 것인가.(주차를 쉽게 할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순환버스를 타며 이동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둘째, 숙소(교래자연휴양림)에서 성판악탐방안내소까지 렌트한 차를 가져갈 것인가. (적어도 새벽 5시 30분에 성판악휴게소에 도착해야 주차장에 여유 있게 주차를 할 수 있다고 하던데, 그러려면 숙소에서 5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아이들과 내가 대체 얼마나 일찍 일어나야 하는가?)
셋째, 숙소(교래자연휴양림)에서 '콜택시'를 예약하여 성판악탐방안내소까지 갈 것인가.(어디선가 제주 콜택시는 '총알택시'라는 걸 본 적이 있어서 고민이 되었다. 나는 규정속도가 80km인 도로에선 60~70km의 속도로, 규정속도가 50km인 도로에선 30~40km로 운전을 하는 '느림보 아줌마' 다 보니 총알택시가 너무 무서웠고 겁이 났다.)
아이 둘을 데리고 한라산 정상에 올라가는 것보다 성판악휴게소까지 어떻게 갈 것인가를 더 고민했던 나였다. 거문오름을 다녀온 날 저녁, 많은 고민 끝에 내가 전화를 건 곳은 '교래 콜택시'
"내일 새벽 6시에 교래자연휴양림 입구에서 성판악휴게소까지 택시 예약할 수 있을까요?"
"네. 예약됩니다. 비용은 2만 2천 원이고요. 늦지 않게 나오셔야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콜택시"였다. 교래자연휴양림에서 성판악휴게소까지 차로 15~20분 정도의 거리지만, '엄청' 빠르다고 해서 아이들이 새벽부터 멀미는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다른 방법은 더 힘들 것 같아 조금만 견디자.라는 생각으로 콜택시를 예약한 것이었다.
내일 입을 옷들과 한라산을 오르며 먹을 간식들, 그리고 내일아침으로 먹을 것 등을 준비를 해 두고 우리는 저녁 8시 30분부터 불을 끄고 누웠다. 첫째 아이는 내일 한라산에 올라갈 생각을 하니 긴장이 돼서 잠이 안 온다, 둘째 아이는 방에 불을 끄니까 무서워서 잠이 안 온다, 나는 너희들 때문에 잠이 안 온다며, 두 아이들의 긴장되는 마음과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 매일 자기 전 틀어주는 유튜브의 자장가메들리를 틀었다. 아이들은 몇십 분을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고, 나도 2분 간격으로 맞춰놓은 알람을 몇 번이고 확인한 후 잠이 들었다.
새벽 5시 휴대폰의 알람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을 몇 분이라도 더 재우기 위해, 오늘도 분주했지만 '조용히' 씻고 아침을 준비했다. 그리고 5시 20분쯤 아이들을 깨웠다.
나는 '즉석밥'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어서, 평소 여행을 가서도 잘 먹지는 않지만 (나는 취사가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전기밥솥'을 들고 다닌다.) 오늘은 어쩔 수 없다. 즉석밥과 레토르트 식품의 '갈비탕'이 우리의 아침이다.
"얘들아. 엄마가 오늘 한라산 다녀오면 저녁에 맛있는 거 만들어줄게. 아침은 우리 간단하게, 이렇게 먹자." 그렇게 갈비탕에 밥을 말아 꼬마김치와 뚝딱 한 그릇을 먹었다.
새벽 5시 45분쯤 숙소를 나섰다. 밖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밝았다. 우리는 다른 숙소에 계신 분들께 피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휴양관을 빠져나왔고, 휴양림 안의 숲길을 걷기 시작했다.
우리의 숙소(휴양관)는 교래자연휴양림 안에서도 제일 안쪽에 자리 잡고 있어 휴양림 입구까지 약간의 경사가 있는 길을 거쳐 총 300m를 걸어가야 한다. 걸어가는 숲길의 중간중간 '뱀조심'이라는 안내판이 새벽의 고요한 분위기 속, 뱀이 나오지는 않을까? 하는 무서웠던 마음을 더해, 아이들의 긴장감은 더욱 커졌고, 나는 15분 후 우리가 타고 갈 택시가 '총알택시'만 아니길 바라고 또 바랬던 것 같다.
드디어 6시 '교래콜택시'를 탔다. 택시가 출발하며 나는 "기사님. 안전하게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15~20분 정도 되는 거리를 10분남짓 안되어 성판악 휴게소에 도착을 했고, 아이들은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처음 경험한 총알택시의 놀라움을 감추지 못해, 흥분의 도가니 상태가 되었다.
첫째 아이는 "엄마. 속이 안 좋아요."
둘째 아이는 "너무 빨리 가서 무서웠어요."
모두 내가 예상했던 결과였다. 하지만 택시를 타고 와야 우리가 조금 더 자고 여길 올 수 있었다며 아이들에게 이해를 구했고, 아이들은 돌아갈 때도 '콜택시=총알택시'를 타고 가야 하냐며 걱정을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이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땐 괜찮지 않을까?"
평일 6시 20분쯤의 성판악휴게소는 주차할 곳이 단 한 곳도 없었고 사람들도 많이 붐볐다. 나는 아이들과 성판악휴게소 매점에 들러 점심으로 먹을 김밥 6줄과 500ml 물 10통을 구입한 후, 짐을 '균등' 하게 나눴다. 첫째 아이 500ml 물 2통과 젤리, 초콜릿, 200ml 주스하나, 둘째 아이 500ml 물 2통과 사탕, 200ml 주스하나를 가방에 넣어주었다. 엄마인 나는 김밥 6줄과 500ml 물 6통과 간식 및 물티슈 비상약 등등.. 을 넣고 가방을 메어보니 어깨가 눌렸다. 적어도 10kg 이상 나갈 것 같은 가방의 무게였고, 김밥과 물의 무게가 상당히 무거웠다.
그렇게 한라산국립공원 성판악탐방안내소에서 새벽 6시 30분 한라산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항상 걷는 여행을 하는 날이면, 흐리거나 춥거나 날씨가 좋지 않았는데 오늘은 햇볕도 보이고 기온도 걷기에 알맞고 시작이 좋았다.
정상의 백록담까지 여러 쉬어가는 곳이 있지만, 우리가 갈 첫 번째 목표지는 '속밭대피소'이다. 입구에서부터 4.1km를 걸으면 나오는 곳으로 평균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처음엔 매트가 깔린 완만한 길이었는데, 걷기 시작하여 15-20분 정도가 지나자 그때부터 '돌길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 안전하게 올라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나는 다른 때보다 아이들의 안전에 더 신경을 쓰며 산을 올랐다.
"나연아. 나예야. 조심해."
"어떤 돌을 밟아야 되는지 잘 살펴봐."
"발에 집중하자."
"얘들아. 장갑 바짝 껴야 된다."
"천천히 가면 된다."
"힘들면 꼭 얘기하기."
한 발짝 한 발짝 디딜 때마다, 내가 아이들에게 했던 말이다.
무조건 정상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건 없었다. 아이들의 안전이 가장 중요했고 올라가면서도 절대 '욕심내지 않기'로 아이들과 약속했다. 그렇게 속밭대피소로 가는 동안, 90% 아이들의 시선은 바닥으로 향해있었고, 90% 나의 시선은 아이들을 향해있었다.
속밭대피소까지 가는 길은 대체적으로 완만했지만, 큰 돌, 작은 돌, 돌이 정말 많이 있었고 일정한 모양. 간격으로 놓인 돌길이 아니어서, 나도 아이들도 처음 속밭대피소까지 가는 '돌길'을 적응하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평소라면 아이들이 아직까지 따뜻한 이불속에서 자고 있을 시간인데, 이른 새벽에 일어나 한라산 백록담으로 오르며 "엄마도 조심하세요."라고 얘기하며 나에게 미소 짓는 아이들이 '이 세상에 천사가 있다면 이 아이들을 보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부족한 엄마지만 나의 딸들로 태어나 준 것이 너무나 감사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살피며 산을 올랐다.
걷기 시작한 지 1시간 40분 만에 속밭대피소에 도착했다. 우리는 가방을 내려놓고 간식으로 젤리하나를 나눠먹으며 15분가량 쉬었다.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와 함께 백록담을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 주변의 삼나무와 소나무들 그리고 유독 많이 보였던 조릿대까지. 속밭대피소 벤치에 앉아있으니 선명하게 느껴지는 새소리와 은은한 숲냄새가 새벽부터 긴장했던 내 몸의 근육들을 풀어주는 듯 느껴졌다. 계속 앉아있고 싶을 만큼 편안했고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15분의 달콤한 휴식 다음, 우리의 목적지는 1.7km 떨어진 사라오름이다. 평균 40분 정도 소요된다고 하니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평탄한 길이었지만, 오르막이 시작되는 사라오름으로 가는 길, 아이들의 몸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산을 오르며 더워지면 외투를 벗어 가방에 넣고, 올라가다 쉬는 동안 추워지면 다시 옷을 꺼내 입고, 그렇게 가방에 옷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며, 걷는 시간과 동일하게 많은 시간을 소모했던 '옷의 입고 벗음의 시간들'.
쭉쭉 늘어나는 후드 집업의 외투를 입고 왔어야 했나..? 그러면 벗을 땐, 허리에 묶어 고정시키면 훨씬 수월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에 올라가면 추울 것 같아 얇은 패딩을 챙겼는데 스판소재가 아니어서, 불편함이 있었던 것 같다. 아직까지 산에 오르는 경험이 부족한 '등산 새내기엄마' 라 이런 디테일한 부분까지는 신경을 쓰지 못한 것 같다.
'가벼우면서도 따뜻하고 쭉쭉 잘 늘어나는 외투를 찾아봐야겠다.'
열심히 걷다 보니 사라오름으로 가는 곳과 한라산 정상으로 가는 길의 갈림길이 나왔다. 출발지점부터 6km 정도를 3시간 동안 걸었다. 비교하자면 어제 거문오름 분화구 5.5km를 3시간 정도 걸었던 것과 비슷하지만 아이들은 어제보다 훨씬 더 가볍게 걸었다. 그 이유는 뭘까?
바로 "칭찬"이었다. 한라산 정상을 오르며 우리는 많은 분들을 만났고 서로 인사를 건네었는데 그분들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너희들 진짜 대단하다'
'장하다'
'최고다'
'정말 멋지다'
젊은 대학생으로 보이는 어떤 분은 둘째 아이가 초등 2학년인데, 키가 작아 보였는지 "유치원생도 올라간다."라는 얘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들을 보며 "사탕 줄까?", "초콜릿 줄까?"라는 말을 건네는 분들도 계셨다. 나는 그분들이 너무 감사했다. 그래서 그렇게 말씀을 건네는 분들께 잊지 않고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전했다.
칭찬의 힘은 아이들을 한라산 정상으로 오를 수 있는, 긍정의 에너지가 되었고 우리는 많은 분들의 응원을 받아 점점 고도를 높이며 진달래밭대피소로 향했다. 1.5km의 거리고 평균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는 구간, 우린 여전히 돌길을 열심히 걸었고, 진달래밭대피소에 도착을 했다.
성판악탐방안내소에서 걷기 시작한 지 4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기서 김밥을 한 줄씩 먹기로 했다. 나는 다리보다 '목과 어깨'가 너무 아팠다. 물 3L와 김밥 여섯 줄이.. 사람을 아주 제대로 잡는다.
하지만 나란 사람을 제대로 잡는 게 또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강한 햇볕"이다. 아이들과 걷는 여행을 한 이후부터 나의 얼굴에 기미. 잡티가 눈에 띄게 올라오고 있는데, 고도가 높은 만큼 햇볕도 더 강하게 느껴졌다. '기미. 잡티 안돼!'
그렇게 우리는 휴게소에서 구입한 김밥을 한 줄씩 나눠먹었고, 아이들은 진달래밭대피소까지 총 4시간을 걸었다는 것만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대단하다며 엄지 척 윙크를 날려주기도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절대 '강요'하지 않았다. 진달래밭대피소까지 온 것만으로도 아이들이 너무 대견하고 기특했기 때문에 아이들의 의견을 무조건 따르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이들이 아래로 내려가자고 하면 이유불문하고 내려갈 마음이었다. 하지만 두 아이들 모두 생각했던 것보다 산을 오르는 것이 많이 힘들지 않다고 얘기를 했고, 또 한라산 정상에 올라 '백록담'을 보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다.
나는 아이들이 힘들었음에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얘기하는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진달래밭대피소까지 올라오며, 아이들도 나도, 아이들 가방에 들어있는 물을 마셨고, 내 가방에 있는 물은 꺼내지 않고 그대로 넣어둔 상태였는데, 아이들이 엄마 가방이 너무 무겁다며 자기 가방에 물 한 통씩을 더 넣어도 된다고 얘기하는 그 말에 순간 코 끝이 찡해져, 눈시울이 붉어졌다.
힘들지만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아이들의 긍정적인 마음과 엄마의 무거운 가방에서 물 한 통씩을 꺼내 서로 나눠들자며 엄마의 가방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 주려는 엄마를 배려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느껴져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에 더 감동이 느껴졌다.
이제 마지막 구간이다.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정상 백록담까지의 구간, 2.3km의 거리고 평균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코스. 현재시간 10시 40분, 12시에 정상탐방이 통제되는데 우리는 여유 있게 진달래밭통제소를 통과를 했다.
해발 1800m를 지났을 때였다. 산 넘어 산이 아니라, '산 위에 산'이란 말이 생각났다. '헉. 산 하나를 더 올라가야 백록담이 나오는구나.' 그런데 이때부터였다. 돌길도 돌길이지만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의 경사가 많이 가팔랐다. 허벅지가 터질 듯, 이러다 다리근육이 파열되는 건 아닌가 싶을 만큼 아팠다. 그렇게 힘들었던 돌길 그리고 큰 바위길과 많고 많았던 계단을 하나씩 참으며 올라왔는데, 나와 아이들 눈에 보였던 '밧줄'.
밧줄길을 올라갈 땐 두발이 아닌 네발로 밧줄과 바닥의 돌을 짚고 올라갔다. 그런데 밧줄보다 더, 나와 아이들을 놀라게 한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한라산 백록담 정상석에서 사진 찍으려고 줄을 서 있던 사람들'.
'3단 콤보'란 이런 게 아닐까.
산 위의 산, 밧줄, 정상석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줄 서있던 사람들.
정확히는 알 수없지만, 50명보다 훨씬 더 많아 보였던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나와 아이들은 아직 백록담을 보지도 못했는데 일단 '줄'부터 섰다. 15분? 20분쯤? 지났을까? 첫째 아이가 나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엄마. 근데 저는 저기 돌이랑 사진 찍으러 여기 온 게 아니라, 백록담을 보고 싶어서 한라산에 올라왔어요."
첫째 아이는 한라산 정상의 기온만큼이나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백록담'을 보고 싶어서 한라산에 올라왔는데, 정상석에서의 사진이 뭐라고 백록담을 코앞에 두고 줄부터 섰으니 아이는 충분히 그럴만했다.
"기다리기 힘들지? 나연아. 너 말이 무슨 뜻인지는 엄마가 잘 알 것 같아. 그런데 엄마가 언제 또 한라산 백록담에 올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정상석 앞에서 너희들.. 사진 찍어주고 싶어"
"..."
"그럼, 엄마가 줄 서있을 테니까 나연이가 나예 데리고 조심히 걸어가서 백록담 보고올래? 엄마가 여기에서 너희들 보고 있을게."
백록담 앞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긴 했지만, 내 눈에 아이들이 어디에 있는지 보였고 아이들끼리 잠시 다녀와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이가 찍은 백록담 사진 아이들은 백록담 앞까지 조심히 걸어가, 드디어 백록담과 마주했고 아이들의 표정은 너무 밝았다. 아이들은 나를 보며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최고'라고 얘기해주기도 했다. 백록담을 보고 나에게 온 아이들은,
"엄마. 안에 물이 있어요. 파래요"
"분화구가 커요."
"돌도 있고, 풀도 있고, 흙도 있어요."
그 후로도 아이들은 몇 번이나 백록담을 보러 갔고, 백록담의 귀한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짧고도 긴 30~40분을 기다려 우리는 정상석에서 드디어 사진을 찍었다.
첫째 아이는 사진을 찍은 후, 나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엄마. 백록담이라고 적힌 돌을 몇 개 더 만들어서 여기에 놔두면 좋겠어요."
"나연이는 돌이 여러 개 있었으면 좋겠어?"
"네. 그러면 이렇게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리고.. 아까 전에 짜증내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나연아. 엄마가 나연이 마음을 몰라줘서 미안해. 엄마가 정상석에서 찍는 사진에 욕심났나 봐."
만약 정상석에서의 사진을 찍지 않았다면 아쉬웠겠지만, 백록담을 둘러보며 아이들이 느꼈던 처음 그 감동을 그 순간 나와 함께 나눌 수 있었을 것 같은데.라는 사진보다 더 소중한 무언가를 놓친 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 또한 남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한라산 정상의 백록담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며칠 전 비가 와서 그랬는지 무언가 파란 듯, 신비로운 색깔로 백록담 안을 채우고 있었던 물이 환상적으로 보였고 백록담 아래로 구름들이 떠다니며 바람을 타고 이동하는 모습조차 너무 신기했다. 내 마음속에 오래오래 담아두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던 백록담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백록담둘레의 돌을 바라보며, 한라산은 '돌'만 생각이 난다고 할 만큼, 돌이 많았다고 했다. 설문대할망이 만든 한라산의 크고 작은 모든 것, 그중 우리가 보았던 돌 하나하나에 설문대할망의 혼이 깃들어 있어 한라산의 모든 것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하며 제주설화 속 설문대할망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아이들과 온전히 백록담을 느끼고 있을 때, 안내방송이 나왔다. 하산시간이 오후 2시고, 서둘러 하산 준비를 하라는 방송이었다. 나는 정말 내려가기 싫었다. 조금이라도 더, 이곳에 머물고 싶었고 내 눈에 더 담고 싶었다. 우리와 정상에 계셨던 다른 분들도 마음이 다 그러했는지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백록담과 멀리 보이는 제주풍경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맑았던 하늘에 갑자기 구름이 몰려오더니 한순간 백록담을 집어삼켰고 한라산 정상을 모두 구름 속에 가둬버렸다.
그렇게 우리는 인위적인 안내방송으로의 하산이 아닌, 자연섭리에 따른 자연적인 하산을 시작했다.
돌길과 큰 바위길, 계단으로 내려가며 혹여나 발목에 무리가 되어 다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되는 마음에 우리는 올라갈 때보다 더 집중해서 내려갔고, 그렇게 내려간 지 5시간 만에 아침에 출발했던 성판악탐방안내소에 도착을 했다.
한라산 백록담에 있었던 우리의 사진으로, 내려오며 신청해 두었던 한라산 등정인증서도 받고 이제는 숙소로 돌아가야 할 시간.
"엄마~긴장돼요~"
아이들은 두 발을 콩콩거리며 얘기했고, 나는 전화를 걸었다.
"지금 성판악 탐방안내소 앞인데, 교래자연휴양림까지 가려고 해요. 택시 가능할까요?"
이번엔 총알보다 더 빠른, 빛의 속도로 교래자연휴양림까지 우리를 안전하게 데려다주셨다. 터프하게 운전하시는 모습과는 반대로, 오는 내내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시며 아이들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신 기사님께 너무 감사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어떤 것보다 빛나던 아이들의 모습이.
한라산 정상에 오르며 해발고도를 알려주는 비석들.
우리나라에서 최고 높은 산인 한라산 정상에 오르며 아이들과 나는 12시간 동안 최선을 다했다. 힘들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과 느리지만 차근차근 하나씩 해결해 나가려는 마음의 태도를 가지며 걸었다.
아주 작고 사소할 수 있는 우리의 마음과 태도였지만, 그 결과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게 해주는 아주 거대하고 의미 있는 존재로 우리에게 다가와, 느낄 수 있는 모든 우리 몸의 감각 속으로 흡수되었다. 우리는 '오늘의 우리를 최고'라 여겼고, 중요한 사실도 깨달았다.
최고를 위한 최선의 마음가짐은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과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어느새 최고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도.
걷는 것이 많이 힘들지만, 늘 함께 동행해 주는 나연이 나예 너무 고마워.
아이들과의 여덟 번째 걷기 여행 중, 어느 한순간.
우리의 걷기 여행은 계속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