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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완희 May 18. 2024

16화 나제동맹! 부부동맹!

백두대간의 능선이 보고 싶다면 '소백산 비로봉'

2022년 6월 2일에 구입한 귀한 포켓몬 빵.

 2022년 초, 가장 핫한 아이템은 바로 이 '포켓몬빵'이 아닐까 싶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포켓몬빵 띠부실을 모으는 게 어느 순간 유행이 되어버려, 포켓몬 빵 띠부실을 구하기 위해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엄마들이 '오늘 동네 편의점, 마트를 다 돌아도 포켓몬빵을 구하지 못했다', '대형마트 오픈런을 하기 위해 줄을 서있다' 등등 지역맘카페에 1시간이 멀다 하고 글이 올라왔었다. 물론 우리 아이들도 포켓몬 빵에 관심이 있었고 띠부실도 띠부실이지만, 포켓몬 빵도 먹어보고 싶어 했다.


 6월이 다 되어가도 포켓몬빵의 실물을 보지도, 맛보지도 못했는데, 우리 집에서 차로 25분 떨어진 대구의 어느 롯데마트에 포켓몬빵이 1박스 정도 풀린다(?)는 친한 언니의 긴급카톡을 받고 애들을 학교에 보내자마자 마트로 달려가 구입한 포켓몬 빵 한 봉지. 1인 1개 구매제한이 되어있어 딱 한 봉지밖에 구입할 수 없었지만, 이게 뭐라고 경산에 사는 내가 대구까지 가고 난리야..


 2022년 6월 2일, 아이들은 하교 후 처음으로 포켓몬빵을 맛보고, 띠부실을 구경하며, 엄마는 대체 이 귀한 빵을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 얘기를 듣고 싶어 했고 나는 MSG를 약간 섞어 포켓몬빵 구하기의 서사를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아이들은 나에게 포켓몬빵을 구해주셔서 감사하다며 몇 번이나 야기를 했고, 나는 얘기를 꺼냈다.


"얘들아. 현충일 있는 연휴에..(생략)"


그렇게 포켓몬빵 덕분에, 포켓몬빵 때문에, 얻은 기회(?)였다.

바로 소백산 '비로봉'




 소백산은 우리나라 12대 명산 중의 하나로 1987년 18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322.011km 2로 지리산, 설악산, 오대산에 이어 산악형 국립공원 가운데 네 번째로 넓다. 해발 1439.5m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국악봉, 연화봉, 도솔봉 등이 백두대간 마루금 상에 솟아있으며, 웅장하면서도 부드러운 산세로 수려한 경관을 보여주고 있다.

소백산국립공원 및 주변지역은 주로 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히 선캄브리기에 형성된 편마암이 두터운 풍화층을 형성하여 주능선은 토산의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소백산국립공원은 중생대 조산운동의 영향으로 습곡, 단층이 발생하였으며, 소백산 북서부의 단양지역은 석회암 분포지역으로 인근에 천동동굴 등 석회동굴이 위치하고 있다.



[소백산 등산코스]


1. 초암사코스(7.8km, 편도 3시간 40분)

배점주차장-초암탐방지원센터-초암사-봉두암-국망봉

2. 삼가동코스(5.5km, 편도 2시간 40분)

삼가탐방지원센터- 달밭골입구-양반바위-비로봉

3. 희방사 코스(3.7km, 편도 2시간)

희방탐방지원센터-희방사-깔딱 고개정상-연화봉

4. 죽령코스(7km, 편도 2시간 40분)

죽령탐방지원센터-제2 연화봉-연화봉

5. 어의곡코스(5.1km, 편도 2시간 40분)

어의곡탐방지원센터-어의곡삼거리-비로봉

6. 천동계곡코스(6.8km, 편도 3시간)

천동탐방지원센터-천동쉼터-천동삼거리-비로봉

7. 도솔봉코스(9.9km, 편도 5시간 30분)

묘적령-묘적봉-도솔봉-죽령


 우리는 소백산 정상 '비로봉'을 '천동계곡코스'로 올라가기로 했다. 천동계곡코스는 잘 정비된 탐방로와 쉬운 난이도의 탐방코스로 소백산 비로봉을 찾는 많은 탐방객이 선호하는 코스이기도 하다.




※ 하루 전 날, 소백산 천동탐방센터 주변 민박집에 도착했다.


2022년 6월 4일 

05:00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온 새벽기상타임, 민박집 작은방에 알람소리가 울려 퍼지는 시간은 05시. 등산을 하는 날이면, 늘 '새벽'에 알람을 맞춰둘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밥'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오르는 소백산도 매점이 없고, 왕복 6~7시간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점심을 챙기는 것'은 필수다.


 사실, 소백산은 이른 아침이더라도 도시락을 주문할 수 있는 '소백 내 도시락을 부탁해'라는 곳이 있다. 소백산 국립공원 친환경도시락 서비스는 산행 전 도시락을 주문하면 탐방로(천동, 어의곡) 입구의 정해진 장소에서 도시락을 받을 수 있으며, 이는 일회용품의 사용을 줄이고 탐방객의 도시락 준비 불편함을 줄이기 위한 서비스다. (★기본 4개 이상 주문가능, 2024년 기준으로 도시락 1개당 1만원)

카카오톡채널 - 소백내도시락을부탁해 (kakao.com)


 우리 가족은 인원수는 4명이지만, 특히 둘째 아이가 먹는 양이 적기도 했고, 심한 편식으로 인해 도시락 1개는 무조건 남길 것 같아, 환경을 위해 친환경 도시락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인데 음식물쓰레기를 도로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밥과 점심도시락을 준비했다. 남기지 않고 우리가 먹을 양만큼만.

그리곤 5시 40분쯤 남편과 아이들을 깨웠다. 연신 하품을 했지만, 옷을 입으며 밥을 먹고 자기 배낭까지 야무지게 챙겨 민박집을 나서는 아이들을 보니 이제는 제법 익숙한 그 모습에 오늘아침도 내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천동계곡코스 주차장으로 향했다.


06:40 

 6월이라 7시가 되지 않은 시간인데도 엄청 밝았다. 다리안 관광지 주차장에는 비로봉으로 올라가는 사람들도 조금씩 있었지만, 더욱 내 눈에 띄었던 건 다리안 주차장 옆 야영장에서 캠핑을 하시는 분들이었다. 주차장의 차들보다 몇 배나 더 빽빽하게 자리를 잡고 있던 텐트들을 보며 그땐 몰랐지만, 다리안 관광지 주차장에서 천동탐방지원센터까지 걸어가며 왜 그곳에 주차된 차들보다 텐트들이 더 많았는지 알 것 같았다.

높이 뻗어있는 초록빛들의 나무들을 보고,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잘 정비된 나무데크길을 걸으니 꼭 소백산의 비로봉에 오르지 않더라도 산이 주는 마음의 평온함을 느낄 수 있는 숲길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곳이 야영장 바로 옆에 있으니 소백산의 빽빽하게 우거진 나무처럼, 야영장에도 빽빽하게 텐트가 우거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07:15 

 그렇게 800m 정도 계곡을 따라 평온한 숲길을 걷다 보니, 천동탐방지원센터가 나왔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소백산 품 안으로 들어갈 차례, 늘 등산초입에 들어서며 등반을 시작하는 내 마음은 너무 설레고 두근거린다. 지금 내 옆을 함께 걷고 있는 남편은 등반을 시작하며 어떤 마음이 들까? 등산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남편에게도 마음을 많이 썼던 것 같다.

 그런데 걷기 시작한 지 1시간 반 정도 지났을쯤일까? 작은 날벌레떼들이 숲길에 정말 많이 나타났다. 아니. 원래 날벌레떼들이 있었던 곳에 우리가 나타났을지도 모르겠다. 우린 날벌레떼들과의 치열한 사투를 벌였다. 양팔로 날벌레떼를 후치는 것은 기본이고, 그늘로 피하기도 했으며, 우리 눈높이에 있는 날벌레떼를 피하려 몸을 숙이고 앉아있기도 했다.

전날 살짝 비가 와서 그랬는지, 아니면 비가 더 오려고 해서 그런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날벌레떼가 정말 많았고 그 구간이 지나니 날벌레떼가 조금 덜해졌다.


 날벌레떼들과의 사투를 겪으며 짜증을 낼 수도 있었던 순간들이었지만, 아이들은 날벌레가 입으로 코로 들어갈까 봐, 숨을 제대로 잘 쉬지 못한 것 빼고는 괜찮았다며 얘기했다. 그러곤 '날벌레떼'들의 습격 원인과 분석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날벌레떼들은 왜 나타나는 것인가?' '날벌레떼들은 하루살이종류인가?' '왜 빛을 좋아하는가?' '기후의 변화와 관련이 있는가?' 등 심층 높은 대화를 이어가며, 우리의 소백산 등반의 고도도 함께 높여갔다.


 두 살 터울의 자매들이라, 평소 아옹다옹 싸우는 일들이 많은데 산에만 오면 이상하게도 싸우는 일이 '없다'.


"언니. 앞에 큰 돌 밟지 마. 흔들거리는 돌이야."

"나예야. 너 가방에 물 나한테 줘. 언니 가방에 넣을게."


 천동 쉼터까지 나와 남편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걷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얘기를 하며 걷다가 어느 순간 아이들을 보니, 길 중간에 브이를 하며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고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그 순간을 놓칠세라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보통의 난이도라 하더라도, 날씨에 따라, 개인컨디션에 따라 힘들 수도 더 쉬울 수도 있다. 그런데 오늘은 굉장히 습한 날씨여서 올라가는 길이 힘듦에도 불구하고, 서로 사이좋게 웃으며 걷는 모습에 힘이 났다.

  

 그렇게 도착한 '천동쉼터', 천동코스 중 유일한 화장실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이곳 화장실을 '무조건' 다녀와야 한다. 날벌레떼들과의 전쟁이 1차전이었다면, 2차전은 '푸세식 화장실'이다.  


"얘들아. 올라올 땐 날벌레들이 그렇게 공격하더니, 이제는 화장실이다 그렇지?"


 화장실과의 전쟁을 무사히 마치기 위해, 나는 아이들을 달랬고 아이들은 싫었지만 용기 있게 푸세식 화장실을 다녀왔다. 그리고 마지막 정상을 향해 열심히 올라갔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경사도 높고, 울퉁불퉁 튀어나와 있는 돌들로 험했던 길도 간혹 있었던 터라 아이들을 잘 살피며 걸었던 것 같다.



10:20

아이들과 걷기 시작한 지 3시간이 넘었고, 숲길에서 벗어나니, 이제는 정상 비로봉 가까이에 온 듯 하늘이 가깝게 느껴졌다. 우린 소백산에서 유명한 고사목까지 도착했다. 고지대의 강렬한 햇볕을 조금이라도 피할세라 고사목이 만들어주는 작은 그늘에 아이들이 들어가 있었다. 아이들은 고사목을 보며 굉장히 신기해했다. 우리가 산을 다니며 높은 지대에 있는 나무들을 많이 살펴봤지만 소백산의 고사목은 모양이 특이하기도 했고 멋있어서 한참을 살펴보며 얼마나 오래된 나무일까?라는 아이들의 궁금증도 자아내게 만들었다.


 보통 고사목은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고 말한다. 소백산 고사목이 있는 이곳 '단양'도 우리나라의 오랜 역사에 굉장히 중요한 요지였는데, 삼국시대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삼국시대 신라를 둘러싼 긴 산맥이었던 '소백산맥', 신라가 한강 유역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이곳 '단양'을 반드시 지나야 했다.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차지했을 때, 신라는 백제와 '나제동맹'을 결성했고, 백제 성왕과 신라 진흥왕 대에 이르러 신라와 백제는 고구려에게서 한강 유역을 빼앗는 데 성공한다.
이곳에서 흐르는 남한강은 한강 상류이기 때문에 한강 하류까지 병사와 곡식을 빠르게 보낼 수 있었고, 높은 적성에서 넓은 지역을 감시할 수 있었던 곳이기 때문에 단양은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 당시 막강한 힘을 가진 고구려를 막아내기 위해, 백제와 나제동맹을 결성하여 한강유역을 차지했던 신라의 모습이 고스란히 단양에 묻어났던 것과 오랜 세월 동안 굳건하게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소백산의 고사목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 시대 신라의 역사적 유산만큼, 고사목 또한 오늘날까지 자연유산의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35

 거의 다 왔다. 저기 멀리 보이는 산 능선의 끝자락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소백산의 '비로봉'이다. 소백산의 능선은 여러 계절 중, 봄엔 철쭉으로 겨울엔 '칼바람'으로 굉장히 유명하다. 하지만 6월이어도 아직까지 철쭉이 많이 피어있지 않은 걸 보니, 올해 소백산의 봄은 조금 늦게 찾아오려나보다. 아이들은 넓게 펼쳐진 주목나무 군락지와 소백산의 능선을 눈에 담으며 천천히 걸었다.


10:45

신라의 진흥왕이 한강의 영토를 차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넘어가는 죽령을 넘어 '단양' 지역을 차지했듯, 우리 또한 소백산 비로봉을 오르며 '충청북도 단양'까지 걷기 여행의 등반지역을 확장시킨 순간이었다.



 하지만 우리 외에도 충청북도 단양의 소백산 비로봉을 등반하며, 등반지역을 넓혔던 제2의 진흥왕들이 꽤 많아 무려 40분을 기다린 후에야, 정상석에서의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이제 마음 편히 점심을 먹으며, 소백산 정상의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차례다. 주목나무 군락지와 하늘을 뒤덮은 엷은 구름들, 멀리 보이는 여러 산맥들을 보며 먹는 점심은 밥에 김만 싸 먹어도 여러 재료가 들어간 듯 느껴지는 모둠김밥 맛이었다. 

하얗고 엷은 구름은 밥, 초록빛의 주목나무는 시금치와 오이, 연한 회색빛의 바위들은 김밥무, 중간중간 붉은 나무들은 맛살과 당근이 되어 하나하나의 다른 맛이 모여 풍부한 맛의 조화를 이루고 있듯, 소백산 정상의 풍경도 아름다운 자연의 조화가 느껴졌다.


 점심을 먹고, 잠시 쉬며 남편은 나에게 '힘들지만 아이들과 산에 오르는 것이 굉장히 좋은 것 같다'라고 얘기했다. 평소 남편은 여행을 가더라도 '휴식'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이라,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 나에겐 아주 큰 힘이 되었다. 그렇게 우린 그 자리에서 부부동맹을 결성했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아이들을 더욱 잘 설득하여 자주 산을 오를 수 있도록 하자고 약속했다.


 소백산에서 내려가야 하는 시간.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우린 한참을 내려왔다. 3시간 정도 열심히 걸었을 때쯤, 드디어 천동탐방지원센터에 도착했고 소백산의 깃대종인 붉은여우 '미우' 캐릭터 앞에서 아이들 사진을 찍어주며 소백산 비로봉의 등반을 마무리했다.


15:40 

소백산 '비로봉'을 다녀온 후, 천동탐방지원센터 앞에서.

 



 산을 내려오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이 습하고 더웠던 날씨 때문인지, 옷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던 남편이 다리안 주차장 가까이 차가운 계곡물에 빨갛게 달아오른 두 발을 담그며, 우리 집 뒤 '백자산 둘레길만 걸어도..'라고 얘기를 하는 걸 보니, 순간 나제동맹을 결렬시키고 백제를 공격한 신라의 진흥왕이 생각났다.

나(백제)와 등산동맹을 맺어 아이들(고구려)의 등산거부를 함께 막아 내자 했지만, 결국 나를 공격하여 등산거부의 의사를 밝혀, 진흥왕처럼 삼국통일의 야망을 꿈꾸는 건 아닌지 조금 걱정이 되었다.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나제동맹'은 결렬되었지만,

각자도생의 시대인 지금, 아이들의 등산거부를 막기 위한 '부부동맹' 만큼은

영원히 깨지지 않길 바라고 또 바라본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어려웠고, 더운 날씨에 산을 오르는 것이 많이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늘 함께 동행해 주는 나연이 나예 너무 고마워.  




아이들과의 열다섯 번째 여행 중, 어느 한순간.

                    


 우리의 걷기 여행은 계속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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