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완희 Jun 01. 2024

18화 허구한 날 곰배령 타령

천상의 화원, 인제 점봉산 '곰배령'

 지난주 걷기 여행의 여운이 내 마음속에, 내 머릿속에서 쉽게 떠나질 않았다. 낙동강 물줄기에서 낙동강오리알이 되어 오도 가도 못한 상황이었을 때 가족회의를 거쳐 V-train 백두대간 협곡열차를 타고 우연히 둘러본 강원도 태백 '철암역', 나와 아이들 인생 처음으로 밟아보았던 강원도 땅이어서 그랬던 걸까? 한여름의 오후였지만, 선선하게 다가왔던 강원도의 청량한 공기와 탄광촌을 둘러보며 느꼈던 우리의 따뜻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여러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었던 강원도 지역의 첫 느낌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에 홀린 듯, 나는 숲나들e 홈페이지에 들어가 이곳저곳을 살펴보다 강원도 자연휴양림의 여러 숙소 중, 평일에 비어있었던 방의 순서대로 덜컥 예약을 하고 말았다.

 남편은 나에게 '역마살'이 낀 건지, '자연휴양림 중독'인 건지 대체 이해할 수 없다며 잔소리를 했지만, 나는 여름방학 때 따로 휴가를 다녀오지 않았던 것(성수기라 비싸고, 붐비는 방학이라 예약도 어렵기 때문에)을 핑계 삼아 아이들과 며칠 다녀오고 싶었다.


 그리고 나의 마음속에 또 다른 꿍꿍이가 하나 더 있었으니 그건 바로 '산'. 언제나 나에겐 산이고 또 걷기다. 사실 숲나들e 홈페이지를 처음 알게 된 순간부터, 홈페이지에 나와있던 '숲길'이라는 카테고리를 통해 둘레길. 트레일. 탐방로 등 걷기 좋은 길들을 살펴보았고 그중 천상의 화원이라고 불리는 '곰배령'에 너무 가고 싶어서, 대리만족이라도 느껴보고 싶은 마음에, 점봉산 '곰배령' 탐방이 간략하게 나와있는 '곰배령 산행'을 유튜브에 검색했었다.


 보통 유튜브에 산을 검색하면 등산유튜버가 나와 산을 소개하고 걷는 영상이 나오는데, 곰배령은 등산유튜버분들의 영상보다 임영웅의 '곰배령' 무대영상이 나의 유튜브 상단에 올라왔었고, 나는 등산코스가 나와있는 곰배령의 영상을 보고, 다시 유튜브를 검색하여 들어갈 때마다 임영웅의 곰배령 영상이 함께 올라와 호기심에 도대체 어떤 노래 인가 싶어 들어보았다.


[곰배령 가사]

바람마저 길을 잃으면 하늘에 닿는다
점봉산 마루 산새들도 쉬어가는 곳
곰배령은 말이 없는데

여인네 속치마 같은 능선을 허리에 감고
동자꽃 물봉선이 곱게도 피는 그날
사랑 두고 님을 두고 그 누가 넘어가나
하늘고개 곰배령아

구불구불 산을 넘으면 하루가 다 간다
점봉산 마루 나그네도 길을 멈추면
곰배령의 구름이 되네

가엾이 떠돌아 가는 세월을 허리에 감고
산딸기 머루꽃이 곱게도 피는 그날
사랑 두고 님을 두고 그 누가 넘어가나
하늘고개 곰배령아.

 

 트로트를 즐겨 듣진 않지만, 대금간주로 시작하는 곰배령의 노래를 듣고 있으니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이 내 귀에 꽂히고, 구성진 노랫자락이 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수능금지곡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1절과 2절의 마지막 가사, '하늘고개 곰배령아~♬' 부분이 중독된 듯 내 입가에 계속 맴돌았다. 아마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곰배령 타령이.


 늘 나에게 강원도는 '먼 거리'라는 방어벽이 존재했고, '철암역'과 임영웅이 부른 '곰배령'이 그런 나의 방어벽을 산산조각 내 부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철암역과 임영웅의 '곰배령'이 쏘아 올린, 강원도 여행 인제 점봉산 '곰배령'으로 떠나보자.




 점봉산은 한반도 자생식물의 북방한계선과 남방한계선이 맞닿는 지역으로 자생종의 약 20%에 해당하는 약 850종의 식물이 자생하고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숲이 서서히 변화해 가는 천이과정의 마지막 단계인 '극상림'을 이루고 있어 한반도의 대표적인 원시림을 볼 수 있는 숲이다. 산림생물다양성을 안정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1987년부터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 고시하고 연중입산통제하여 보호. 관리하고 있는 지역으로 2005년부터는 백두대간보호지역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에 대한 산림생태계 훼손을 예방하기 위해 산림보호구역 일부 지역을 제한된 시간에 한하여 일정 인원에게 산림생태탐방을 제공하는 제한적 탐방제(사전예약제)를 운영하고 있다.

※ 인위적인 피해로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기능 유지가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휴식년제 도입이나 산림생태탐방 전면폐기를 검토할 수 있다.



[점봉산 곰배령 코스]

사진출처. 점봉산 산림생태관리센터 홈페이지


사진출처. 점봉산 산림생태관리센터 홈페이지

코스 1) 산림생태관리센터-중간초소-나무다리-곰배령 (편도 5.1km, 평균 1시간 50분)

코스 2) 곰배령-전망대-주목군락지-철쭉군락지-산림생태관리센터 (편도 5.4km, 평균 약 2시간) : 하산전용


※ 곰배령의 정보는 리플릿을 통해 더욱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점봉산 곰배령 예약하기]


 선착순 예약

매주 수요일 오전 9시부터 주단위로 4주 차 일요일까지 예약 개시

1인당 성인 최대 2인 예약 가능 (월 1회로 예약 횟수 제한)

전일 18시에 예약, 예약취소/변경 마감

예약부도 횟수 2회 누적 시 6개월간 예약 불가

1일 450명 예약가능

점봉산 곰배령 산림생태탐방 (foresttrip.go.kr)


마을대행예약제

곰배령과 연접한 인제군 기린면진동리 산촌주민들을 통해 곰배령 탐방로를 예약할 수 있다.




2022년 9월 29일 목요일

 새벽 6시 20분 맞춰둔 알람이 울렸다. 여긴 강원도 양양군 미천골 자연휴양림이다. 어제 늦은 밤까지 숙소 바로 옆에서 흐르는 계곡 물소리가 좋아서 눈을 감고 계속 듣다가, 오늘을 위해 억지로 잠을 청했는데 아침이 되어 어젯밤 그 소리 그대로 물 흐르는 소리와 들의 소리, 자연 속 숲 집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며 눈을 뜨니, 핸드폰의 인위적인 알람소리가 숲 속의 평화로움 속, 듣기 불편한 소음같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은 아직까지 콜콜 잠을 자고 있다. 나는 조용히 쌀을 씻어 밥을 안친 후, 간단히 세수를 하고 반찬을 준비했다. 오늘아침은 미리 집에서 절여온 닭갈비와 만들어 온 멸치볶음 그리고 친정엄마가 담가준 열무김치다. 이 메뉴는 점심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참! 점심에는 밥에 뿌려먹는 야채후레이크와 김이 추가된다.) 여행을 갈 때, 취사가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아이스박스에 반찬과 국, 그리고 각종양념을 챙겨가서 여기가 우리 집인가?라고 느낄 만큼 아이들에게 알뜰살뜰 집밥을 해서 먹이는 편이다. (첫 번째 가장 큰 이유는 비용절감, 두 번째는 첫째 아이의 집밥 타령 때문이다. 간편식이나, 빵은 끼니를 떼 울 수 있는 먹을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느덧 시간은 07시 30분이 되었고, 나는 아이들을 깨워 아침밥을 먹고 점심도시락을 준비한 후 숙소를 나섰다. 며칠만 있으면 10월이라 그런지, 조금은 쌀쌀함이 느껴지는 날씨다. 여기가 강원도지역이라 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40여 분간 운전해 우린 점봉산 '생태관리센터'에 도착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주차장의 자리는 여유가 많다. 산을 오르기 전, 입산허가증을 받고 천천히 곰배령을 향해 출발해 본다.


09시 10분, 점봉산 생태관리센터 앞에서


 들어가는 입구에 '대한민국 국유림' '천상의 화원, 곰배령 생태숲'이라는 글자를 보는데, 왜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쓰여있는 나무판자는 왜 그렇게 또 멋진지. 그 옆에 서있는 아이들은 오늘따라 더 사랑스럽게 보인다.

생태관리센터 앞부터 안쪽 등산로, 강선마을까지 걸어가는 길은 넓고 잘 닦여진 길이라 어린아이들도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다. 흐르는 계곡물소리를 들으며, 길 양쪽으로 피어있는 여러 꽃들을 구경하며 완만하게 이어지는 길을 걸었다.

 피어있는 작은 꽃들을 하나하나 내 눈에 담고 싶어 가다 멈추고를 반복하다 보니 보통 20분 정도면 가는 강선마을까지의 시간이 꽤 오래 걸린듯하다. 오늘따라 아이들은 나를 조금은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속도를 내지 못하더라도 늘 부지런히 걷는 엄마인데, 오늘은 느릿느릿 쉬어가듯 걷는 것이 느껴지니 말이다.

 그런데 더 이상하게 생각한 것이 있었으니, '하늘고개 곰배령아~♬'를 부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강원도 여행의 첫날 '정선 오일장'에 갈 때는 '정선 아리랑'을 차에서 자꾸 들려주더니, 지금은 '곰배령' 노래를 부른다며, 그런 엄마의 모습에 아이들은 동시에 "엄마~~~"라고 얘기하며 '쉿'하는 손모양으로 노래를 부르는 나를 말렸다. 30분 정도 걸려 도착한 첫 번째 목적지인 '강선마을과 식당길'. 아이스크림, 컵라면, 과자, 햇반.. 등등 많은 것들을 판매하고 있었고 우리는 내려오는 길에 먹자며 가게들을 살펴보는 관찰 레이더를 가동하여 맛집과 메뉴를 정해두었다.


투구꽃과 까실 쑥부쟁이


 식당가를 벗어나, 곰배령으로 향하는 길은 더 이상 넓은 평지길이 아니었다. 오솔길처럼 좁은 길로 이어지며 돌길 또 '돌길'이었다. 하지만 숨이 막힐 만큼의 힘든 경사는 아니어서 한 걸음 한걸음 올라가다가도, 들꽃을 보면 그저 미소가 나왔고, 계곡을 보며,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기분은 가볍고 상쾌했다.

우리가 정상으로 올라가며 보았던 들꽃 중, 가장 많이 피어있었던 꽃은 '투구꽃'과 '까실쑥부쟁이'였다. 깊은 산속에 피어있는 들꽃을 보니 자연의 생명력과 꽃의 순수함이 느껴졌다. 그 마음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였던 걸까? 걷다가 어느 순간 들꽃을 보면 '안녕'이라고 인사를 하며 반갑게 웃으며 산을 올랐던 것 같다.


 오솔길에 접어들고 꽃들을 구경하며, 부지런히 걷기 시작한 지 1시간 20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우린 드디어 '곰배령'에 도착했고 나는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여러 번 했다. 여행이라고 하면 보통(우리 아이들)은 휴식이나 관광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분들이 많은데, 엄마의 (걷는) 여행에 맞춰주고 힘들지만 함께 걷는 부분들이 진심으로 고마웠기 때문이다.

   


 해발 1164m 고지에 있는 곰배령은 영남알프스 간월재를 떠올리게 했다. 간월재가 억새평원이라면, 곰배령은 야생화(들꽃) 평원이다. 지금은 가을이란 계절로 향하고 있어 중간중간 들꽃이 보이지만,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의 곰배령은 여러 들꽃들이 곰배령을 천상의 화원이라 불리게 할 만큼 아름답게 피어 환상의 꽃파티를 연다고 하니, 여름날 한번 더 이곳으로 올 이유가 생겼다.  

그리고 곰이 하늘로 배를 드러내고 누운 형상이라 하여 '곰배령'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는데, 불룩하게 솟아오른 정상부를 보니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이제 조금 쉬면서 곰배령을 느껴볼 시간이다. 우린 곰배령 전망대 쪽으로 올라가, 어느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밥과 반찬만 놓아둘 수 있을 만큼의 작은 돗자리를 깔고 그 옆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허기진 배를 채워본다. 아침과 같은 반찬이지만 맛있게 잘 먹어주는 아이들의 모습이, 내려다보이는 곰배령의 풍경만큼이나 예쁜 순간이었다.

  



 점심을 다 먹고, 하산하기 전 우린 곰배령에 피어있는 들꽃을 살펴보았다. 진퍼리용담, 흰 잎엉겅퀴, 산쥐손이 이름도 모습도 생소한 들꽃이지만 높은 지대에 피어있는 형형색색 꽃들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교감하며 꽃잎 하나하나, 뻗어있는 작은 줄기 하나하나 애틋했고 사랑스러웠다. 작은 들꽃이 주는 가치로움을 느끼며 내 삶의 소중함도 마음속에 새겼던 곰배령에서의 '꽃 멍'.


 내려가기 싫을 만큼 더 머물고 싶었던 곰배령의 공간이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아이들에게 "이제 여기에서 사진 한 번만 찍고 내려가자."라고 했더니 표정이 너무 밝았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감탄이 또 절로 나왔다. 그리고 '하늘고개~ 곰배령아~♬' 콧노래도 절로 나온다. 오늘따라 하늘도 맑고, 구름도 처음 보는 새 모양의 구름이고, 모든 것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는 점봉산 곰배령..

'다음의 언제는 꼭 여름에 올게.'라는 나 혼잣말로 곰배령의 등반을 마무리했다.


 아쉬운 마음을 안은채 곰배령에서 하산을 한 지, 1시간 10분여 만에 우린 강선마을로 내려왔고 곰배령으로 올라가며 미리 정해두었던 (허영만 님과 이영표 님의 사진이 현수막으로 크게 걸려있던) 곰배령끝집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리는 여러 가지 메뉴 중, 고추를 뺀 순한 맛의 산나물 전과 식혜를 주문했다. 산나물로 만든 전이라, 아이들이 잘 먹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했는데, 나의 걱정이 무색해질 만큼 아이들은 호호 불어가며 산나물 전을 맛있게 먹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산을 오르고 난 후 숲 속 식당에서 먹었던 바삭한 식감에 고소하면서도 쌉싸름한 맛이 느껴졌던 산나물전이 너무 그립다.




 

 아이들과 곰배령을 오르며, 또 내려오며 임영웅의 '곰배령'을 콧노래 부르듯 정말 많이 불렀다. 어릴 때 아빠차를 타면 어김없이 흘러나왔던 트로트 아니, 뽕짝(?)에 더 어울릴만한 음악(가끔은 노래 없이 반주만 나왔던) 일지도 모르겠다. 어딜 여행 가더라도 고속도로 휴게소를 지날 때면 늘 노래테이프를 하나씩 사셨던 아빠였다. 그땐 왜 그렇게.. 트로트나 뽕짝이 싫었는지 아빠차에서 요란스러운 노래만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아빠에게 전화를 걸 때면 자동으로 흘러나오는 트로트! 영탁의 '막걸리 한잔'.


 마흔이 넘은 지금에서야 나는 그때와 지금, 아빠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다. 왜 그렇게 트로트를 좋아하나 싶었는데, 임영웅이 부르는 곰배령을 들었을 때, 편안한 마음이 듦과 동시에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고, 가사를 떠나 멜로디가 우리 인생사 힘들고 고달팠던 일 모두 괜찮다고 얘기해 주는 그런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곰배령만큼이나 곰배령의 노래 또한 큰 매력이 느껴졌다.


허구한 날, 나의 곰배령 타령으로 곰배령을 다녀왔으니 이제는 다음에 가고 싶은 곳을 알아봐야겠다. 

그리고 허구한 날, 불러야지. 그곳의 타령을.


 

임영웅이 부른 '곰배령'

 




엄마의 곰배령 타령에 '흔쾌히' 함께 동행해 준, 나연이 나예 너무 고마워.





아이들과의 열일곱 번째 여행 중, 어느 한순간.



 우리의 걷기 여행은 계속 진행된다.








(동영상과 대문사진 출처. TV조선 사랑의콜센타 임영웅이 부른 '곰배령')


이전 17화 17화 분천역에서 철암역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