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완희 May 25. 2024

17화  분천역에서 철암역까지

V-train 백두대간협곡열차를 타고, 걷는 '낙동강 세평하늘길'

 2022년 8월 21일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나는 무더운 여름이었지만, 여름방학이 끝나가는 것이 아쉬운 마음에 아이들과 대(구) 프리카로 골목투어나섰다. 경산역에서 대구역까지는 무궁화호 기차로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 대구역 건너편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열리는 대구시립교향악단의 클래식 정기연주회가 있을 때 가끔 아이들과 나가곤 했었는데 그날은 클래식 나들이가 아닌, 대구 시내 골목을 걷는 '골목투어'를 했다.


 대구역에 내려 처음 간 곳은 대구역 앞 교동 구제골목이었다. 골목구경도 식후경이라, 대구 명물인 납작 만두와 매콤한 떡볶이를 사 먹고, 여러 구제옷. 소품가게들에 시선을 빼앗기며 이어지는 동성로 골목으로 걸어가 나의 학창 시절에 많이 유행했던 '포토사진' 요즘은 '인생 네 컷'이라고 하는 것을 아이들과 셋이서 처음으로 찍어보았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동성로 한복판 만남의 장소였던 대구백화점의 추억과 야끼우동으로 유명한 식당이 있는 골목, 휴대폰가게들이 즐비한 골목을 지나, 건너편 약전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겨 시원한 에어컨바람도 쐴 겸 약령시 한의약 박물관을 둘러보며, 걸으면서 뜨겁다 못해 불이 난 우리의 발바닥을 위해 한방족욕체험의 긴급처방을 한 뒤, 대구의 옛 풍경이 고스란히 담긴 진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겨 나만의 옛 추억을 회상하며, 초저녁이 다 되어서야 기차를 타기 위해 대구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기차'에 대한 느낌이 평소와 다르게, 나에게 다가왔다. 기차역의 안내방송, 철로 위를 달리는 기차소리, 기차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등 기차의 모든 소리들, 보이는 모든 것들이 나의 감각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한증막을 연상시키듯 더운 공기로 가득한 날씨였지만, 아이들과 함께 골목길을 걸으며 느꼈던 나의 행복했던 마음 때문이었을까? 기차 안에서 아이들에게 "오늘 어땠어?"라고 물어보았는데, 즐거웠다는 아이들의 '엄지 척' 평가 때문이었을까? 철로 위 덜컹거리는 기차를 타고 경산으로 돌아오는 15분이란 시간 동안, 설레는 감정은 내 마음의 문이 덜컹거릴 만큼 사방으로 흔들어놓았다.


 하루의 모든 기억이 기차의 소리와 모습과 맞물리며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기차를 타며, 걷는 여행은 없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우리가 찾아간 곳은 백두대간 협곡열차 V- train를 타고, 걷는 '낙동강 하늘세평길'




사진출처. 산림청 홈페이지


 백두대간은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적인 지리인식체계이며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금강산, 설악산을 거쳐 지리산에 이르는 한반도의 중심산줄기로서 남과 북을 잇는 주축이며, 총길이는 약 1,400km에 이른다. 자연생태계의 핵심축을 이루는 생물다양성의 보고로서 인문사회, 자연생태 등 다양한 측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태백산맥, 소백산맥의 '산맥'이란 말은 땅 속 지질의 생성연대나 생성방법을 추정하여 그린 가상의 지질도이며, 이는 일본에 의해 왜곡된 역사라고 한다. 바른 명칭의 백두대간은 우리나라의 중심 산줄기로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백두'는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에서 따온 말이며, '대간'은 '정간', '정맥', '지맥' 들에 비해 큰 산줄기를 표현하는 명칭이라고 한다.



우리가 걸을 코스는 백두대간 13정맥 중, 6정맥인 낙동정맥, 그중에서도 '낙동강 세평하늘길'이다.  


1. 낙동강 세평하늘길 1코스 5.6km

영동선 승부역 - 양원역 (낙동비경길구간)


2. 낙동강 세평하늘길 2코스 2.2km

영동선 양원역 - 비동승강장 (체르마트길구간)


3. 낙동강 세평하늘길 3코스 4.3km

비동승강장 - 분천역  (분천 비동구간)


총 12.1km로 도보 평균소요시간은 4시간이다.


자세한 내용은 봉화문화관광 홈페이지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낙동강 세평하늘길 트레킹 - 봉화문화관광 (bonghwa.go.kr)


[백두대간협곡열차 예약하기]

V-train의 V는 백두대간 깊은 협곡의 모습을 상징함과 동시에 Valley(협곡)의 약자를 나타낸 것으로 다이내믹한 여행의 즐거움을 표현한 것으로, 열차의 백호무늬 디자인은 백두대간 호랑이의 기상을 표현하고 실내는 큰 유리창으로 꾸며져 백두대간의 협곡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관광열차다.

사진출처. 코레일 홈페이지


사진출처. 코레일 홈페이지

 백두대간협곡열차는 영주역 - 봉화역 - 춘양역 - 분천역 - 양원역 - 승부역 - 철암역의 노선으로 운행이 이루어지고 있다. 백두대간협곡열차의 예약은 코레일 홈페이지에서 예약할 수 있다.

관광열차_V-train (letskorail.com) 


예) 분천역(출발 09:59/ 14:25) - 승부역(도착 10:29/ 14:53)인 경우, 목요일~월요일(화, 수요일 운행 X) / 운임요금 어른(8400원), 어린이(6000원) / 소요시간은 편도 30분가량 걸린다.




하루 , 봉화 문수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2022.9.17. 토요일

 추석연휴가 지나, 더위가 한풀 꺾이나 싶더니 아침부터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날씨다. 특별히 오늘은 기차를 타고 걷는 것이라 그런지, 높게 올라가는 봉화의 기온만큼이나 아이들도 최상의 흥분상태로 올라가더니 결국 둘이 싸우고 난리가 났다. 우리의 숙소인 문수산 자연휴양림에서부터 분천역까지 가는 30분 동안, 남편은 운전을 하고 나는 몸을 비틀어 뒷좌석에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힘들게 이야기(잔소리?)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서로를 흘겨보며 잡아먹을 듯했고, 결국 나는 아이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고를 했다.


"둘이 한 번만 더 싸우면, 오늘 낙동강 하늘세평길 걷고, 낙동정맥 트레일코스도 함께 걸을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낙동강 하늘세평길 12.1km도 오늘같이 더운 날씨에 많이 힘들 텐데, 배바위 고개를 넘는 낙동정맥 트레일 코스 10.2km를 더 걸을 거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으니, 오늘 하루 '절대로' 싸울 일은 없을 것 같다. 나의 예상대로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이좋은(?) 자매가 되었고, 그 사이 우린 '분천역' 산타마을에 도착했다.


 12월의 크리스마스가 오려면 세 달이나 더 기다려야 하지만 지금 아이들의 눈앞에 산타할아버지, 루돌프, 썰매, 크리스마스트리, 눈 결정체 무늬 길까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길을 걷고 있으니 아이들은 오늘이 크리스마스이브인 듯, 자고 일어나면 내일아침 머리맡에 원하는 선물이 있을 것 같다는 얘기를 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분천역에 정차되어 있는 기차로 다가갔다.


 첫째 아이는 백두대간협곡열차를 보자마자, 이렇게 얘기를 했다.

"엄마. 걸어서 세계 속으로 에 나오는 기차 같아요."

"응. 정말 다른 나라 같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짙은 초록빛의 산 앞에 서 있는 기차는 분천역 산타마을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고, 기차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궁화호, 새마을호, KTX, SRT 등 기차가 아닌 동화 속에 나오는 기차를 타고 걷는 여행을 시작하니, 산을 오를 때 등산초입에서 느꼈던 마음과는 다른 또 다른 설렘이 내 마음에 가득 찼던 것 같다.


 출발시간이 되어 기차는 출발했고, "한잔해~"라는 목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본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우리 뒤편에 앉은 50대? 60대? 아저씨 아주머니 4~5분께서 종이컵을 꺼내 막걸리를 드시기 시작했다. 막걸리 한통을 음료수 드시듯 한잔씩 모두 나눠드셨고, 두 번째 막걸리를 꺼내려는 순간, 기차 내 직원분께서 주의를 주신 탓에 더 이상 막걸리를 드시진 못하셨지만, 아저씨 아주머니께서 드셨던 막걸리 최고의 안주는 이게 아니었을까 싶다. 바로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마치 우리나라 지도를 연상시키듯 흘러내려가는 낙동강 물줄기의 모습과 오른쪽으로 살짝 방향을 틀며 휘어지는 기차를 보였을 , 나는 스물일곱을 앞둔 겨울 호주로 한 달 배낭여행을 떠나  Melbourne Dandenong에서 Puffing Billy 증기기관차를 탔을 때가 떠올랐다. 더웠던 12월의 겨울, 하얀 연기를 내뿜는 붉은색 토마스 기차를 타고 숲 속을 달리며 청량한 바람을 느꼈던 기억이, 10년도 더 된 여행이었지만 그때의 감동이 아직까지 생생했고, 숲 속을 달리던 Puffing Billy 기차만큼이나,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달리는 백두대간 협곡열차 또한 눈이 부실만큼 아름다운 풍경으로 나를 더욱 들뜨게 만들었다.

20대 때 내 마음과 40대가 된 지금도 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기차여행이란 참 힘이 센 것 같다.


 그 사이 분천역을 출발했던 우리의 기차는 어느새 '양원역'에 도착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기차역이고 주변 주민들에 의해 직접 세워진 최초의 민자역이다. 많은 사람들이 양원역을 둘러보기 위해, 기차에서 내렸고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우린 조금 있다가 다시 이곳으로 오게 될 거야."


 들뜬 마음으로 얘기했던 나와 다르게, 오싹한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 나를 보던 아이들. 아니나 다를까 내 옆에 있는 남편의 표정도 좋지가 않았다. '그런데 원래 무더운 여름에 공포영화가 더 끌리는 법이거든?!' 굳어지는 얼굴로 장난치던 아이들의 표정에 미소로 화답하며 우린 다시 기차에 올랐고 양원역에 정차한 지 10분 정도 지나자, 기차는 다음역인 승부역으로 출발했다. 나는 승부역에서부터 시작될지도 모를, 아이들과 남편의 짜증을 받아주기 위해 모든 마음을 비우며 서서히 짐을 챙겼다.


 드디어 승부역에 도착했고, 우린 짐을 챙겨 기차에서 내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기차여행을 왔는데, 우린 누가 봐도 등산복차림이고 또 무거운 짐을 짊어(?) 매고 있다고 얘기하는 남편의 펀치 한방이 내 마음을 툭 쳤다. 이제부터 시작인가 보다.


 승부역은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 승부리에 위치한 영동선의 철도역으로, 오지에 있다고 알려진 역답게 주변 지형이 매우 험해서 자동차로 접근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춘양면에서 5일장이 서는 5일마다 1회씩 석포면사무소까지 가는 마을버스만 다니는 정도다.


'승부역'엔 '승부역'을 가장 잘 표현한 시가 있다.

1963년부터 19년간 승부역에서 근무했던 김찬빈 역무원이 역사 담벼락에 썼던 시.


하늘도 세평이요

꽃밭도 세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

      

 오지 중에 오지였던 봉화 승부역에 근무하며 김찬빈 역무원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조금은 헤아려지는 듯하다. 그 마음이 통한 걸까? 승부역을 보기 위해 나 또한 치열한 기차예매를 뚫고 이곳에 서 있으니 말이다.


 우리를 태운 백두대간협곡열차 V-train은 철암역으로 떠났고, 우리도 이제 처음기차를 탔던 분천역으로 돌아갈 차례, '낙동강 하늘세평길'을 걸을 시간이다. 승부역에서 내려 하늘세평길을 걷는 사람은 우리 가족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승부역 바로 옆 출발하는 다리에 우리처럼 등산화를 신고, 무거운 가방을 짊어진, 트레킹을 준비하는 20대 6~7분이 계셨고 그분들이 먼저 하늘세평길로 출발했다.


 우린 다리를 건너기 전, 흐르는 계곡물에 손도 담가보고, 돌도 던져보고, 물고기도 찾아보고, 아이들과 10~20분 정도 시간을 보내고 출발했다. 흐르는 낙동강 물이 너무 맑고 깨끗해서 도저히 그냥 지나칠 없었다. 남편은 이 물에 손수건을 담가 살짝 짠 뒤, 자신의 목에 둘렀다.

갑자기 생뚱맞지만 나는 그 순간, 깜빡하고 잊은 나의 목 뒤 피부에 선크림을 바르고 아이들의 목 뒤에도 선크림을 바르기 시작했다. 야외로 나가기 전 선크림을 발라야 하는 게 정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르는 이유는 상상하기 힘들 만큼 햇볕이 너무 뜨거웠기 때문이다.         


 첫 번째 구간은 승부역에서 양원역으로 가는 '낙동비경길구간'으로 총 5.6km의 거리다. 다리를 지나 '다행히' 숲길로 들어갔다. 햇볕을 피할 수 있어서 더없이 좋았던 숲길, 그리고 아이들과 걷기에도 그리 어렵지 않은 길이어서 더욱 수월하게 걸었던 것 같다. 가는 길 중간에 우리보다 먼저 출발했던 분들을 만났고 그분들은 강 옆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서로 가볍게 인사를 했고, 우린 조금 더 걷고 난 뒤 점심을 먹기로 했다. 지금 시간은 거의 12시.   

 

 걸은지 1시간 정도 되었을 때쯤, 옆으로는 시원한 낙동강 물줄기가 흐르고, 위로는 우리가 타고 왔었던 기찻길이 보였고, 앞으로는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 나왔다.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만큼, 강한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고 숲길을 걸을 때 벌레에 물리는 것과 풀 독 오르는 것을 조금이라도 방지하기 위해 긴 바지를 입고 있었고, 많이 더웠던 탓인지, 평소 아토피로 고생하고 있는 첫째 아이의 무릎 뒤 간지러움이 걸으면 걸을수록 심해졌다. 나와 남편은 긴급하게 물로 씻겨주고, 차가운 생수통을 대어주기도 하며, 혹시나몰라 챙겨 왔던 연고를 조금씩 발라주었고, 힘든 아이의 마음도 달래주며 강한 햇볕아래를 지나갔던 것 같다.


 내가 첫째 아이에게 고마웠던 부분은 무릎 뒤 아토피 피부가 많이 가려웠고, 더운 날씨로 더욱 견디기 힘들었지만 엄마아빠에게 짜증 한번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엄마아빠가 자기를 위해, 마음을 써주고 있다는 것을 느껴 아마 짜증을 참아낸 것일 수도 있다. 걷기 싫은 마음이 들었어도, 그 순간을 잘 참고 이겨낸 첫째 아이가 너무 대견했다.


 남편은 첫째 아이의 걷는 속도에 맞추어 그늘을 피할 수 있는 양원역으로 서둘러 걸어갔고, 나는 둘째 아이의 걷는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그 길을 걸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지만, 늘 나에겐 아기처럼 작게 보였던 둘째였는데 강한 햇볕아래에서 등산용 장갑을 끼고 씩씩하게 걷고 있는 뒷모습을 보니 이젠 더 이상 아기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얼른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점점 크는 모습을 보니, 아이들의 크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엄마품 안에서 벗어나는 아이들.

언제 이만큼 컸을까.


 멀리 보이는 길의 끝이 바로 첫 번째 구간의 종점인 '양원역'이다. 출발한 2시간만에 도착했고, 지금 시간은 오후 1시.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오전의 양원역 분위기와는 다르게, 다시 찾은 양원역엔 '우리만'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없었고, 한가로운 양원역의 모습이었다. 시골에서 밭 일을 할 때, 여름 대 낮에 밭일을 하지 않고 해가 질 때쯤 다시나와 일을 마무리하듯, 지금은 모두가 쉬고 있을지도 모를 고요한 시간이었다.

오늘도 엄마가 이른 새벽부터 준비한 소박하지만 정성이 가득 담긴 도시락을 먹으며, 우리도 쉬어가야할 시간이다.


 양원역에 그늘이라고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양원역대합실 안 밖에 없었고, 간단하게 준비한 도시락이라 금방 먹고, 깨끗하게 정리해두면 되지않을까? 라는 마음으로 도시락을 펼쳐 밥을 한 숟갈 떴는데!

그런데 그 순간, 승부역에서 출발하여 분천역으로 가는 V-train 백두대간협곡열차가 양원역으로 들어와 역에 정차했다. 기차에 타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양원역 대합실을 배경으로 사진을 마구 찍어댔고, 양원역대합실에 앉아있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살짝(?) 아니, 많이 당황했다. 우린 황급히 도시락뚜껑을 닫았다. 그랬던적은 없지만, 옛날에 수업시간에 도시락을 먹다가 선생님께 딱 걸린 그런 느낌? 그런 기분? 이 아닐까 상상했다.


 우린 '양원역대합실 뒤편으로 나가있을까?' '어떡하지?' 등 많은 얘기를 나눴고 동물원에 원숭이를 보듯, 양원역 대합실 안 우리를 보는 많은 사람들 때문이었는지 둘째는 가방 안에 있는 KF마스크를 꺼내 양쪽 눈을 가렸다.


"나예야. 너만 안 보이면 그만인 거야?"        


 둘째 아이의 행동에 우리 가족은 웃음이 터졌고, 10분이라는 시간이 왜 그렇게 느리게 지나갔는지, 세상 부끄러움은 모두 우리의 몫인 것만 같았다.


 정차했던 기차는 곧 출발했고, 우리도 서둘러 점심을 먹고 준비를 하여 낙동강 하늘세평길 2구간(양원역-비동승강장)을 출발했다. 양원역을 출발해, 1km 정도 걸었을까? 길 옆쪽에 폐쇄구간 안내도가 갑자기 나타났다. 우린 비동승강장(비동역)으로 향하고 있는 상태인데 길이 폐쇄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의 정비가 잘 되어있었고, 폐쇄구간이라면 분명 이 길을 막아놓았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대로 비동역으로 향했고 잠시 후, 멀리 맞은편에서 승용차 한 대가 우리가 있는 쪽으로 오고 있었다. 승용차에는 아주머니 아저씨 두 분이 타고 계셨고 그분들은 우리 앞에 차를 멈춰 세웠다.


"이 쪽 길로 가면 안 돼요. 비동역으로 가는 철길문을 막아놨는데, 강 쪽으로 건너려고 해도 물살이 세서 위험해요."


그때의 상황을, 그날 저녁 첫째 아이가 적은 일기로 살펴보겠다.

그 당시 5학년이었던 첫째 아이의 일기 중, 어느 한 부분.

 "이 길로 가면 물살이 센 강을 건너야 해서 애들도 있고 하니까 가면 절대 안 돼요."(아주머니와 아저씨께서 하셨던 말을 줄인 말입니다.)라고 하셨다. 그 순간 엄마의 표정은 충격받은 표정이었고, 아빠께서는 겉으로는 굳은 얼굴이셨지만 속으로는 기뻐하시는 그런 애매한 표정을 짓고 계셨고, 나예는 누가 봐도 행복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세상을 다 가진듯한 기분이 들었고,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헉! 우리 낙동강에서 낙동강 오리알 됐다...'


 양원역으로 되돌아가며,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긴급 가족회의'를 했다. 여러 의견들이 있었지만, 우린 '양원역에서 철암역으로' 가기로 했다. 지금 시간은 오후 2시 20분이었고 철암역으로 가는 V-train 백두대간협곡열차가 2시 40분에 양원역에 도착하니 그 기차를 타고 철암역으로 가서 철암역 주변을 둘러보며 오후시간을 보내자는 것.


 그런데 철암역으로 가는 V- train 백두대간 협곡열차의 자리는 모두 매진이었다. 우리는 일단 양원역에서 기차가 오기를 기다렸고, 기차 내 직원분께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입석'으로 가능할 것 같다고 하셨다. 우린 직원분께 몇 번이나 감사하다며 인사를 드렸고, 무사히 기차에 탈 수 있었다.


 ※ 양원역에 거의 도착했을무렵, 우리와 비슷한 시간대에 출발한 분들을 만났고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폐쇄구간에 대해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아이들은 기차의 창문너머로, 양원역에서 승부역까지 자신들이 걸었던 길을 눈에 담았고 나 또한 그 길들을 되돌아보며, 비록 완주하지 못했더라도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마음이 깊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는 승부역을 지나 철암역에 도착했고, 아이들은 처음 밟는 '강원도' 땅에 기분이 묘하다며 철암역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우리는 철암역 주변의 철암탄광역사촌을 둘러보며, '현재 철암마을은 많은 사람이 떠나고 예전의 활기찬 모습은 사라졌지만 탄광촌의 옛 모습을 간직하고 현재를 지키는 사람들과 한없이 풍족한 자연과 정이 있는 마을'이라는 문구를 보았다. 그 시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막장 안에서 자신의 삶보다 가족의 삶을 먼저 생각하며 광부의 인생을 사셨던 그분들의 노고에 화력이 다 된 연탄불에도, 은은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처럼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첫째 아이의 일기 중, 어느 한 부분

  철암역(강원도)에 내려서 걸어서 1분 거리인 탄광역사촌을 구경했다. 나는 탄광역사촌에서 봤던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파독 광부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았다. 왜냐하면 파독광부는 옛날(1970년대쯤)에 독일에 석탄을 캐러 갔던 광부였는데, 그 자료나 영상을 보면서 3년이라는 그 긴 시간 동안 죽을지도 모르는데 한국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 독일에 석탄을 캐러 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고 참 용기 있는 행동이구나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생략) 오늘은 트레킹을 하며 힘들고, 걷기 싫은 그런 기분도 느꼈지만 동시에 기쁨과 풍경에 대한 감동, 무사히 걷고 숙소에 왔다는 다행 등등의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며 더 많은 감정을 느껴보는 그런 날이었고, 10년에 여러 번 있을만한 일을 하루에 다 겪어보는 날이었다.






 경상북도 '봉화'를 여행한다면 'V-train 백두대간 협곡열차'를 타는 기차여행은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사항이어야만 할 정도로, 충분히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여행이라 생각된다. 비록 낙동강 물줄기에서 오도 가도 못한 낙동강 오리알이 된 우리였지만, 아름다운 풍경의 백두대간 깊은 협곡과 아름다운 마음의 철암 탄광촌 소중한 분들을 느낄 수 있었던 아이들과의 걷기 여행이었다.


 낙동강 오리알이었기에, 분천역에서 철암역까지 우리의 걷기 여행이 가능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날 오후 5시, 철암역에서


 가벼운 기차여행이 아닌, 더운 날씨 속 조금은 무겁고 힘든 기차여행이었음에도 늘 함께 동행해 주는 나연이 나예 너무 고마워.






아이들과의 열여섯 번째 여행 중, 어느 한순간.



우리의 걷기 여행은 계속 진행된다.





※ 2024년 5월 25일 현재, 배바위고개 쪽 포함 분천역 - 승부역 전 구간, 복구 완료 시까지 '낙동강 하늘세평길' 폐쇄한다고 합니다.


이전 16화 16화 나제동맹! 부부동맹!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