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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언어 — 연락하지 않는 사이

3부. 함께 존재한다는 것

by Reflector

대학교 때였다.

종강을 하면 세 달의 방학이 주어졌다.
그 시간 동안 연락이 끊겼다.


친구는 늘 먼저 연락했다.
“너는 왜 연락이 없어?”
나는 대답했다.
“굳이 연락할 일이 없잖아.”


그때의 나는 그 말이 당연하다고 믿었다.
멀리 있고, 볼 수도 없고,
해야 할 말도 없으니 굳이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는 서운해했다.
늘 자기가 먼저 연락한다며,
관계의 무게가 한쪽으로 기울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의 뜻을 잘 몰랐다.
우린 여전히 친구였고,
다음 학기에 만나면 다시 잘 지낼 거라 믿었다.


연락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마음의 표현이었다.
‘보고 싶다’는 말이 어색할 때,
사람들은 대신 안부를 묻는다.


나는 관계를 시간으로 계산했다.
‘한 번의 끊김쯤 괜찮다’는 생각으로.
하지만 관계는 시간을 견디는 게 아니라,
온도를 지키는 일이었다.


그 친구는 연락을 통해
내가 여전히 자신을 생각하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마음을 나는 너무 늦게 이해했다.
침묵도 말이 되지만,
그 말이 전하는 온도는 언제나 따뜻하지 않았다.


연락은 ‘기억하고 있다’는 마음의 표현,
멀리서도 이어지는 다정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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