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이요?”
원담의 의아한 질문에 승용차 조수석에 앉은 팀장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얼음이 아니라 어음이라고, 어음!”
팀장의 말에 원담은 ‘얼음’이나 ‘어음’이나 이상하긴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히어로라면 뭔가 특별한 구석이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건 오차 범위를 벗어나도 심하게 벗어났다. 궁금증이 해소되는 대신 오히려 더 커졌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원담이 조수석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하고 많은 걸 두고 왜 하필 어음이래요? 왜 디저트로 그걸 먹는 거래요?”
팀장은 궁금증에 달아오른 원담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하게 컵 홀더에서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커피컵을 꺼내 한 모금 홀짝였다.
“추억이 있대. 그것 때문에 히어로가 됐다지 아마. 그래서 무작정 끌린대. 우리가 부지런히 어음을 모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라는 말씀.”
폼나는 히어로를 폼나게 지원해서 폼나는 요원이 될 거라던 꿈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히어로에게 먹일 어음을 모으는 어음깡 전문 업자가 되려고 그동안 갖은 고생하며 요원이 된 건가? 양손에, 주머니에, 트렁크에 어음을 한가득 싣고 다니다가 필요할 때 봉투에 담아 고트맨에게 하나씩 건네주면 되는 건가? 피곤할 때 박카스 한 병씩 주듯이? 잔뜩 기대했던 원담은 맥이 탁 풀리는 것 같았다. 원담의 실망을 아는지 모르는지 팀장이 여전히 시큰둥한 말투로 말했다.
“담당 히어로에 대한 자료 안 읽었어? 거기 다 나와 있을 텐데….”
“이런 내용은 없었거든요! 이런 줄 알았으면 다른 팀에 지원할 걸…. 아, 완전 망했네…. 어음이 뭐야 어음이….”
원담의 말을 들은 팀장이 커피컵을 컵 홀더에 꽂아 넣고 조수석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묻으며 말했다.
“다른 데는 뭐 별거 있는 줄 아냐? 다 똑같아. 이 정도는 애교지. 더 심한 거 구하느라 애먹는 팀들이 수두룩 빽빽이야. 그냥 기대를 버려. 그래야 편해. 안 그러면 너 오래 못 간다. 명심해라.”
말을 마친 팀장이 더 이상 대꾸하기 싫다는 듯 눈을 감아버렸다. 원담이 엉덩이를 들썩이며 뭔가를 더 물으려고 하자 팀장이 한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만! 좀 쉬자. 상황 시작되면 언제 끝날지 몰라.”
팀장의 단호한 태도에 원담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원담은 물끄러미 차 창 밖을 바라봤다. 재개발로 고층 빌딩들이 들어선 이곳은 언제나 사람과 차로 넘쳐났다. 잠시 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정에 따라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원담은 히어로 자료집에서 읽은 고트맨에 대한 내용을 떠올리고 있었다.
‘염소 능력자, 그래서 닉네임이 고트맨. 34살이었나? 남자고. 어디 여행하다가 각성했다 그랬는데. 필살기는 고트 헤드 피니쉬. 빌딩 수직벽도 오를 수 있고, 순발력 좋음. 고집이 셈. 소규모 작전에 적합한 B급 히어로. 아참, 대량의 종이도 섭취 가능하지. 그래서 기밀문서 폐기할 때 꼭 투입되는 히어로…. 그런데 어쩌다 어음 같은 걸 먹게 된 거야. 콕 집어서 먹는 걸 보면 종이라서 먹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추억이 있다고 했지? 각성하기 전에 사채 같은 거 했나?’
공식적인 설명에 특별한 사정이 시시콜콜하게 기록되어 있을 리 만무했다. 팀장은 그 짧은 순간 잠들어 버린 듯 편안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그때였다. 치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전기에서 잔뜩 긴장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고트맨, 고트맨, 현장 도착. 5분 후 투입 예정. 모든 지원팀 정위치에서 대기. 주의사항 숙지. 완료된 팀부터 보고. 이상.”
무전 소리가 들리자마자 팀장이 눈을 번쩍 떴다. 어음 먹는 히어로에 대한 원담의 의아함도 저만치 달아나버렸다. 팀장이 안전벨트를 매며 소리쳤다.
“가자!”
원담이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켰다. 팀장과 원담이 배치된 장소는 빌딩 지하주차장 입구 건너편 골목이었다. 명령이 떨어지면 부리나케 달려가 주차장 출입구를 틀어막는 역할이었다. 자리를 잡자마자 팀장이 완료 보고를 했다.
“지원3팀 정위치. 이상.”
“양호. 대기.”
긴장이 고조되자 운전석에 앉은 원담의 궁둥이도 덩달아 들썩였다. 보다 못한 팀장이 한마디 했다.
“방정 떨지 말고 참던지 조금씩 싸서 말리던지 해!”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뭔데?”
“저… 저….”
원담이 주저하자 팀장이 짜증스럽게 재촉했다.
“아 뭐냐고!”
“제가 긴장하면 더 궁금한 걸 못 참아서 그러는데요… 팀장님… 왜 어음을 먹는 건지 좀 가르쳐 주시면 안 될까요? 정말 미치겠어요….”
팀장의 표정이 ‘뭐 이런 놈이 다 있어’하는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첫날부터 대단하다. 시간 지나면 어련히 다 알게 될걸…. 정말 끈질기네.”
“좀 살려주십쇼, 팀장님!”
“알았다, 알았어! 시간 없으니까 최대한 요약해서 짧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팀장이 빠르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트맨이 몽골 여행하다 각성한 건 알지?”
“그게 몽골이었어요?”
“하… 그런 것도 모르고 있었어? 너 진짜… 아무튼. 여행 중에 돈 잃어버린 몽골 할머니 버스 값을 대신 내주고 염소를 받았대. 신성한 염소니까 잘 돌보라 그러고 할머니는 내렸대. 얼마 안 가 버스가 고장 나서 초원 한가운데 고립됐고, 어쩌다 보니 할머니가 준 염소를 잡아먹고 만 거지.”
“그 신성한 염소를 잡아먹었다고요?”
“그래, 고트맨도 그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고, 그 염소가 신성한 지 뭐 한지 몰랐던 사람들이 배고프니 잡아서 나눠 먹자고 한 거지. 그날밤 꿈에 할머니가 나와서 신성한 염소를 먹었다고 화를 내더래. 신뢰의 증표를 먹어 치웠으니 축복과 저주를 함께 주겠다고 그러더래. 그날 이후 염소의 힘을 가진 히어로가 되긴 됐는데, 저주 때문인지 돈 갚겠다는 증표인 어음을 먹지 않으면 힘이 약해지는 약점도 생긴 거지.”
“무슨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그러니까 어음으로 받은 염소를 잡아먹어서 히어로가 된 거라고요?”
“그렇지, 믿어지지 않지? 근데 사실이야. 이게 또 골치 아픈 게, 가짜 어음은 안되고 진짜 어음만 효과가 있어. 그래서 처음에는 업자들한테 사들이다가 예산이나 뭐 그런 문제들이 좀 있어서, 지금은 우리가 직접 확보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린 거지. 이제 됐냐?”
“근데 팀장님, 요즘은 대부분 종이어음 안 쓰고 전자어음 쓰지 않아요?”
원담의 눈치 없는 이야기에 팀장이 눈을 부라렸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냐? 기름 붓냐? 이게 남 일이야? 가뜩이나 짜증 나는데 ….”
원담은 팀장의 호통에 찔끔했다. 하지만 속은 시원했다. 어떤 비밀이든 알고 나면 별 볼 일 없는 법이다. 원담의 마음이 지금 딱 그랬다. 그 순간 무전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트맨 부상, 부상, 지하주차장, 지하주차장, 지원3팀 긴급 투입! 주의사항 숙지바람. 이상!”
“양호, 3팀 수신!”
팀장의 보고가 채 끝나기도 전에 원담이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았다. 승용차가 굉음을 내며 지하주차장으로 돌진했다. 주차장 입구 반대편에 고트맨이 타고 다니는 승합차가 서 있었다. 그 앞에는 필살기인 ‘고트 헤드 피니쉬’에 당한 것으로 보이는 승용차 서너 대와 사람들이 엉망으로 찌그러진 채 널브러져 있었다. 원담이 모는 차가 빠르게 접근하자 그중 정신을 차린 몇몇이 비틀거리며 일어나 출구 쪽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하지만 고트맨은 보이지 않았다. 팀장이 승용차가 미처 멈추기도 전에 문을 열고 뛰어내리며 소리쳤다.
“넌 고트맨을 찾아! 절대, 절대… 안된다. 알았지?”
끼익~하며 타이어 쓸리는 소리에 묻혀 팀장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원담도 차를 멈추는 것과 동시에 운전석에서 뛰어내려 권총을 뽑아 들고 고트맨의 승합차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사이 팀장은 승용차 트렁크를 열고 그 안에 실려 있던 상자에서 흰 봉투 서너 개를 꺼내 안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원담, 어디, 어디야?”
두리번거리는 원담의 눈에 엘리베이터 출입구 근처에 쓰러져 있는 고트맨의 하얀 수트가 눈에 띄었다. 원담이 전력질주하며 소리쳤다.
“F-35번 구역! 엘리베이터 입구요!”
“원담! 주의사항! 절대… 하면 안 된다! 알았지?”
뒤따라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지원 1, 2팀의 타이어 소리에 또 한 번 팀장의 목소리가 묻혔다.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고트맨과의 거리가 좁혀졌다. 마지막 한 발을 성큼 내디디며 고개 숙인 채 바닥에 주저앉아 기둥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 고트맨의 어깨를 잡아챘다.
“고트맨!”
순간 고트맨의 몸이 뻣뻣하게 굳더니 목각 인형처럼 힘없이 옆으로 쓰러졌다. 저렇게 뻣뻣하게 쓰러지다니, 이미 죽은 건가? 늦은 건가? 너무 놀란 원담이 소금기둥처럼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원담의 귀에는 뒤따라 달려오는 팀장과 지원 1, 2 팀의 발소리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아득하게 들렸다. 달려온 팀장이 소금기둥처럼 굳어 서 있는 원담을 사정없이 걷어찼다. 원담이 힘없이 바닥에 뒹굴었다.
“너 이 새끼, 이게 뭔 짓이야! 내 말 못 들었어?”
팀장의 호통에도 원담의 정신이 돌아오지 않았다.
‘고트맨이, 고트맨이….’
원담이 정신을 못 차리고 어리바리하게 굴자 팀장이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뺨을 두 세 차례 갈겼다.
“정신 안 차려! 내가 절대 놀라게 하지 말라고, 뒤에서 말 걸지 말라고 그랬지?”
팀장이 또 한 차례 원담의 뺨을 갈겼다. 불이 번쩍 했지만 원담은 아직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놀라게 하지 말라고? 뒤에서 말 걸지 말라고? 언제? 왜?’
팀장은 여전히 눈만 껌벅거리고 있는 원담을 다시 바닥으로 팽개쳤다. 팀장과 함께 달려온 지원 1, 2팀이 뻣뻣하게 굳어버린 고트맨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팀장이 그들에게 안주머니에 챙겨 온 흰 봉투를 내밀었다.
“하고 많은 염소들 중에 왜 하필 ‘마이아토닉’이냐고… 진짜….”
팀장의 혼잣말을 들은 원담은 여전히 눈만 껌벅거리며 제 생각 안에 갇혀 있었다.
‘마이아토닉? 그게 뭐지?’
팀장이 바닥에 널브러진 원담을 향해 걸어오면서 말했다.
“마이아토닉 염소가 놀라면 저렇게 뻣뻣하게 굳어 버리거든. 쟤 치명적인 약점이야. 이거 알려지면 히어로 생활 끝이야. 그거 감추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넌 어떻게 된 놈이 오자마자 홀라당 이렇게 대형 사고를 쳐버리냐? 내가 몇 번이나 악을 써서 말해줬는데 그게 안 들리디? 응?”
원담은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팀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팀장이 원담의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들어가자마자 시말서 써서 제출해! 징계 먹을 각오하고. 알았어?”
엘리베이터 출입구 앞쪽에서는 뻣뻣하게 굳어버린 고트맨의 입에 요원들이 힘겹게 어음 구겨 넣고 있었다. 고트맨은 조금씩 입술을 달싹이며 어음 조각을 씹고 있었다. 벗겨진 염소대가리 마스크가 그 옆에 뒹굴고 있었다. 원담 쪽을 향한 고트맨의 눈동자는 중세시대 그림에서 나올 법한 염소 머리를 한 악마의 눈처럼 도무지 초점을 알 수가 없었다. 웃는 걸까 우는 걸까 아니면 화가 난 걸까?
‘이런 상황이니 화가 나겠지? 첫날부터 히어로한테, 팀장한테 완전히 찍혀버렸네….’
생각 끝에 머리에 통증이 밀려왔다.
‘폼나는 히어로를 폼나게 지원해서 폼 나는 요원이 되는 길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원담은 혹이 솟아오른 머리통을 부여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지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고 승용차 쪽으로 털레털레 걸어갔다.
‘그나저나 시말서 써서 내라는데… 시말서가 뭐야? 팀장님한테 물어보면 이번에는 정말 죽이겠지? 아…씨… 궁금해 미치겠네. 그냥 물어볼까?’.
* 마이아토닉 염소 : 마이아토닉 콘제니타(Myotonia congenita)라는 특이한 유전 형질을 가지고 있다. 일종의 유전 질환으로, 갑자기 놀라거나 당황했을 때 잠시 동안 몸 전체의 근육이 경직되어 그 자리에서 뻗어버리게 된다. 갑자기 누워버리는 이상한 행동에 사람들이 놀라거나 동물학대를 걱정하기도 하지만, 이 염소종은 다른 건강상의 문제가 전혀 없다. 그저 놀라면 뻗는 것뿐. 이 유전 형질을 이용하여 소 떼들 사이에 염소를 넣어 맹수의 습격이 있을 때 소 대신 염소를 잡아먹게 하는 용도(인위 선택)로 쓰였다. (나무위키 ‘염소’ 항목 내용 중 인용)
* 특별히 한 줄 요약 해드림
특별해서 골치 아픈 히어로의 치명적 약점. 그 약점을 공격한 건 믿었던 동료. 예측할 수 없는 작은 반전과 없는 반전의 별 볼 일 없는 노 액션 노 서스펜스 판타지. 돌아보지 마라 염소 눈깔이 지켜보고 있다!
* '오늘비'의 뱀발 한뼘
보고 되지 않은 부작용. 심각한 변비와 소화불량. 대책과 대안. 다양하고 맛있는 어음 요리법 개발이 시급함. 승인. 연구부서에서 다음 달까지 결과 보고 바람.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