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재직자인가 실직자인가 가사노동자인가
아직 회사로부터 언제까지 나오라는 통보를 받지 못한 상태. ( 답답한가? 나도 답답하다 )
하지만 눈에 띄게 줄어든 이메일 양과 업무량에 반비례하여 뭐라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 대학졸업하고 일생 쉬어본 적 없는 황소 같은 K-직장인은 초조하다.
그래서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이제야..
내 친구는 뭐 하며 사는지, 친구의 남편은 뭐 하는지, 친구의 친구는 뭐 하는지.
여기서 '뭐'는 생업을 말한다. 뭐 해서 먹고 사는지가 특히 궁금했다.
유유상종이라 했던가, 내 주변인들은 나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근근이 하루 벌어 하루치 대출 갚아 나가는 평범한 월급쟁이들이 대부분이다.
무시한 거 아니다, 그게 얼마나 대단하고 중요하고 소중한지 요즘 절절하게 느끼는 중이니까.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면서, 머릿속으로 창업을 수십 번 했다.
창업 시뮬레이션을 돌리면서 좌절과 성공을 맛보며 이내 질려버렸다.
사업자 등록증도 없는 주제에..
갈피 못 잡는 나에게 누군가 내일 배움을 추천했다.
어메이징 한 복지제도가 아닐 수 없다. 직장인에게도 학원비를 지원해 주다니.
신청하고 다음날 발급이 완료되었으나, 문제는 뭘 배워야 할지 또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다음 중학교, 그다음 고등학교, 그리고 기껏해야 가, 나, 다군의 대학교를 선택하는 것만 해봤던 나로서는 이런 진로 탐색의 시간이 막막하기만 하다. 사실 대학교도 고를 거 없이 성적에 맞춰서 갔으니 제대로 선택한 적이 없는 거다.
어쨌든 선택지를 좁혀보기로 한다.
제빵? 새벽에 일찍 나와서 밀가루 쳐대고 발효해야 한다는데. 내가 잠이 많아. 미안.
제과? 만든 거 시식하다 더 살찌는 거 아냐?
봉제? 내가 대학 4년 재봉틀 돌리다가 노루발에 실 엉키는 것 때문에 화병 날 뻔했는데. 그걸 또해? 못해
비누공예? 비누는 사서 쓰는 게 좋던데..
컴활? 20년 내내 엑셀로 팔만대장경을 썼으면서 뭘 또 배워..
참.. 써놓고도 한심하다. 이런 내 마음의 소리를 누군가 들었을까 두렵다.
누군가 들었다면, 나에게 한마디만 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