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이린 Feb 16. 2024

시어머니께 실직에 대해 얘기해 보았다

어머니가 설날 용돈을 거부하셨다

어디가서 돌 맞을 수도 있는 얘기지만, 난 시어머니를 무척 좋아한다. 

우리 어머님은 브런치 아이디도 없고,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사실도 모를 것이고, 우연히라도 알게된다 해도 나와 이 글을 매칭하기 쉽지 않을것이다.  어머님을 의식한 글이 아니라는 점 미리 밝혀둔다.


우리 어머님은 며느리와의 적당한 거리를 항상 유지 하신다. 

그녀의 연륜과 경험에 따르면, "너무 가까이 하면 멀어질수도 있고, 너무 멀면 잊혀질지 모른다" 고 한다.

그런 이유로,  이제 겨우 걸음마 뗀 연년생 애기 둘을 집에 두고 피똥을 싸며 출퇴근 할때, 우리 어머님은 아이들을 봐주시는 대신 매 주말마다 냉장고를 잔뜩 채워 주셨다. 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어머님의 그런 지략에 감탄하는 바이다. 

만약 그 때, 아이들의 등하원을 매일 매일 도와주셨다 해도 육아와 살림과 업무에 쩔어있던 며느리는 어머님께 감사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대신에, 미쳐 돌아가는 하루하루에 여유가 없던 며느리는 냉장고를 여는 그 시간, 짧지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더랬다. 


또한, 어머님은 내가 그녀의 도움이 필요할 때 열 일을 제치고 달려오셨다. 

내가 출장을 갔을 때는, 일주일치 본인 스케줄을 모두 비우시고 우리집에 오셔서 나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채워주셨고,  야근을 하거나 아침 일찍 미팅이 있을때는 본인이 어디 계시든 첫차와 막차를 타시고 우리집으로 바로 출발하셨다. 어머님은 당연하다고 하시지만, 70넘은 어르신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닐것이다. 

 

어머님이 온전히 나를 위해서 이렇게 까지 하신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런 노고의 8할은 본인 아들과 손주들이 혹시라도 굻을까봐, 불편할까봐 염려하는 마음일 것이다. 그리고 남은 2할은 아마도 일하는 며느리를 아끼는 마음일 것이다. 


어머님은 일하는 며느리를 늘 자랑스러워 하셨다. 

친구분들께도, 그리고 가끔 집안 일 도와주시는 아주머니께도 나를 소개하실때 회사와 직급 얘기를 빼놓지 않으셨다. 대기업도 아니고, 능력있는 간부도 아닌데 뭐 대단한 일 하는것처럼.. 

전업주부로만 살아오셨던 어머님은 일하는 여성에 대한 동경이 있다고 하셨다. 회삿돈으로 해외 출장가는게 제일 부럽다고 하시면서 내가 출장 갈때는 본인이 더 설레여 하셨다. 


그런 어머니께, 나의 실직 사실을 알리는 건 정말 큰 용기가 필요했다.

마침 연휴가 다가오기에, 용돈 봉투를 준비하며 적당한 타이밍을 봐서 얘기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차례상을 치우며, 덤덤하게 말씀드렸다. 

잠시 생각이 많아진 것 같았지만 어머님도 덤덤하게 말씀하셨다. 


"그래, 애키우면서 일하느라 고생 많았어. "


길지 않은 담백한 위로가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내가 뭘 걱정했던 것일까. 

용돈 봉투는 나에게 되돌아 왔다. 외벌이한테 용돈을 받는건 아닌것 같다고 하시면서..

돌아온 용돈 봉투때문에 내가 어머님에 대한 글을 쓴 건 아니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는 바이다. 


어쨋든, 가장 큰 산을 하나 넘은 기분이다.  

어쩌면 실직이란 건, 내가 걱정한 것 보다 별 일이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 02화 내일 배움 카드를 만들어 보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