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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욱림솔훈 Feb 28. 2024

사랑과 혀

과거의 나 | 글쓰기 모임을 시작하기 전, 나의 이야기


안녕하세요. 독자님,

욱림솔훈의 유림입니다. 어쩌다 보니 일주일 늦게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대신 이번엔 2편의 글을 한 번에 가져왔답니다! 하하..핳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길 바라며...


오늘 만나보실 글은 영훈의 글입니다. 이때의 영훈의 글은 뭐랄까,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어요. 지금에서야 그 그리움의 대상이 굳이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어느 순간 혹은 기억과 감정도 우리는 그리워하곤 하니까요. 이번 글은 영훈의 글을 읽고 대욱이 남긴 말을 먼저 적었어요. 영훈의 글로 들어갈 때 좋은 안내자가 돼줄 거예요. 



º 주제: 과거의 나


책과 나의 옛날이야기 | 유림

오후 | 대욱

18.03.02 | 은솔

사랑과 혀 | 영훈



영훈의 글을 읽고 대욱이 영훈에게


 영훈 씨 안녕하세요. 좋은 저녁을 보내고 있나요. 저는 영훈 씨의 글을 읽고 맑은 낮에 이 글을 시작해 늦은 저녁에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내내 들여다본 것은 아니고, 잠깐 생각하고 몇 문장을 적었다 다른 책을 들춰보기도 했고 동네를 옮겨 서점에 다녀오기도 했어요. 영훈 씨의 글을 읽으면 ‘은은하다’라는 인상이 가장 먼저 찾아와 가장 오래 남아 있습니다. 영훈 씨라는 사람에게서 유래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쓴 이와 쓰인 글을 구분해 읽는 일에 서툰 편입니다. 한때 오래 품었던 문장도 작가를 견딜 수 없게 되면 더 이상 찾지 않아요. 저는 저의 과거를 다시 읽는 일에 흥미가 없습니다.


영훈 씨의 글에서 느낀 은은함은 은은하기에 어디로든 쉽게 묻어갈 수 있고, 고요함 속에 오래 발현되다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지하철 안에서 문득 떠오르지요. 저는 영훈 씨의 글을 읽고 오래도록 잊고 있던, 남산 아래 도서관을 떠올렸답니다. 아주 잠깐, 금방 사라져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영훈 씨의 글이 불러온 저의 과거는 분명 어디선가 다시 보일 것만 같습니다. 영훈 씨의 글을 읽을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의 과거를 아주 잠깐 생각하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듭니다. 말간 햇빛이 가득한 공원과 책 위로 쏟아져 내리던 감정을 추스르던 순간을 알고 있는 모든 이에게. 이 글은 다정히 찾아가 오래오래 남아 있을 거예요.

사랑과 혀



 그날은 너랑 내가 정독 도서관에 처음으로 함께 가본 날이었어. 그곳엔 긴 복도와 낮은 산책로, 미로 같은 계단과 크고 작은 창들이 곳곳에 있었지. 너는 거기가 사진을 찍고 싶은 곳이라 말했고 거기엔 책도 많았으니까. 그곳에 가면 나도 너처럼 사진도 책도 더 좋아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나는 그런 마음으로 널 따라갔던 것 같아. 너 역시도 사진을 다시 찍고 싶어 질지도 모르고. 너는 내가 걷게 될 길을 미리 밟아보고도 다시 돌아와 나와 함께 발맞춰 걷는 사람이었을까. 너는 그곳에서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게 도서 대여 카드 만드는 방법을 알려줬어. 나는 그런 너를 보면서 너를 닮고 싶었고, 나에게도 네가 닮고 싶은 면이 있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하곤 했어.


그때 내가 도서관에 가져갔던 책을 너는 기억할까. 나도 한동안 잊고 지냈어. 내가 그때 읽었던 책을. 그때 너는 그곳에서 무얼 했더라. 아마 시집 한 권을 끼고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역사에 대한 글을 읽었던 것 같아. 나는 그 옆에서 롤랑 바르트가 쓴 <사랑의 단상>을 읽었어. 그날 찍은 사진 속 코르크 노트를 보니 내가 무얼 막 적었더라. 오랜만에 그때 책을 읽으며 썼던 그 노트를 꺼내보았어. 네가 답장해 주었던 편지들보다도 더 오래 덮어둔 것들이었어.


거기엔 그런 필기들이 있었어.


나는 그 사람을 내 언어로 문지른다.


삶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사랑의 실패는 흡사하다. 그것은 모두 같은 결함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당연하다.


나는 이해하고 싶다. 사랑의 실존은 보지만 본질은 보지 못한다.


더 이상 해석하고 싶지 않다.


그때의 나는 무슨 마음으로 그런 메모들을 적었을까. 거슬러 올라가면 나는 한강 공원에 가 나무 아래 반그늘에 앉아 사랑을 사랑한다는 말에 대해 생각하곤 했어.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학교 도서관에 가 사서에게 사랑에 단상이 있나요?,라고 정확히 물었고, 그런 시간들을 가진 후에는 독서 모임에 가 네가 없는 곳에서 너를 대입해 보며 롤랑 바르트가 말하는 상상계 같은 단어를 이해하려 애를 썼어. 그때보다 더 알 것 같기도 모를 것 같기도 한 말들이 노트에 여전히 가득하다.



너는 언어와 사랑 중에 어떤 게 더 크다고 생각해?


나는 이제 네가 만들어준 대여 카드는 잃어버렸지만 책이 사고 싶으면 대여섯 권을 척척 사고 책장에 꽂아두곤 해. 도서관에 가 책을 빌리고 읽히지도 않는 글을 끙끙 읽다가 다 읽지 못하고 반납하는 시절을 그리워하기도 하면서. 그날 찍은 사진을 보니 나의 사진은 형편없었구나. 근데도 너는 왜 네게 사진을 꾸준히 올리는 계정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말했던 걸까. 꾸준히 무언가를 담아내면 그 무언가는 어디로 가는 걸까. 사랑을 언어로 담아내려는 모든 시도들 끝에서 서로는 좀 더 가까워질까 아니면 보다 멀어지게 될까. 그날 네가 도서관의 낮은 지붕을 바라보는 나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담고는 짓던 미소를 어렴풋이 기억해.


있잖아. 가끔은 모든 것이 지나간 게 아니라 지나가는 중이라는 생각을 해. 시간을 돌리고 싶다는 말은 아니야. 다만 끝이라는 게 정말 있나? 영원한 건 없어도 영원이 사라지는 순간은 아주 길 수도 있으니까. 나는 앞으로도 사진으로 세상을 문지르고, 온통 글을 써 내려가다 모두 지워버리고, 어느 날엔 도서관이나 공원을 걷기도 하면서 조금씩 사라지는 연습을 잘게 반복할지도 모르겠어. 네가 걸어왔던 길을 따라서 말이야.



추신.


언젠가 내가 물었던 적이 있지. 너랑은 정말 상관없을 것 같지만 나중에 꼭 해보고 싶은 게 있냐고. 그때 너는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지. 제일 달콤한 청포도 사탕은 먹지 않고 주머니에 꼭꼭 넣어둔 아이처럼. 난 아주 가끔씩 네가 그 사탕을 입에 넣고 굴리는 걸 떠올려보곤 해.


2022. 02. 14

<사랑과 혀>

영훈 쓰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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