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랑 Jun 11. 2024

유가족의 부탁

대사관 사건사고 일지

20대 젊은 남자가 마닐라 말라떼의 고층 콘도건물 베란다에서 떨어져서 사망했다. 

떨어지면서 맞닿아있는 옆건물의 양철 지붕 같은 곳에 부딪치면서 꽤 큰 소음을 내면서 이른 새벽이었지만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꽤 있었고 심지어 그 건물의 다른 층 세입자들이나 관광객들도 그 소리를 들었다. 


대사관에 처음 신고를 한 사람도 경찰이나 건물 관리인이 아니라 그 콘도 건물에 묵고 있었던 한국인 관광객이었다. 새벽에 숙소로 돌아왔는데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길래 힐끗 봤더니 한국사람 같다는 것이다. 


경찰에 연락하여 사실관계 확인을 부탁하고 현장을 방문하여 시신이 장례식장에 옮겨지는 것을 확인하고 대사관에 돌아와서 유가족에게 연락을 했다.


한국에서 홀어머니가 다음날 입국을 했다. 장례식장에서 만나서 사건을 설명했다.

외부 침입 흔적이 없으며 선배를 만나서 술을 많이 마셨고  숙소로 돌아와서도 친구에게 신세한탄을 하며 

죽고 싶다고 메시지를 보낸 것까지 확인을 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자살을 했을 리가 없다고 왜 유서가 없냐고 그리고 필리핀 경찰을 어떻게 믿냐고 강하게 추가수사를 요구했고 우리는 해당 경찰서에 사건 관련 질의응답까지 따로 요청하여 설명을 했지만 어머니는 납득이 가지 않았는지 우리를 잡고 한동안 울고불고하면서 한국에 돌아가면 언론에 알리고 대통령에게도 민원을 넣을 거라고 했다. 


남편과 오래전에 이혼하고 어렵게 키운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잃었는데 그 마음은 오죽했겠냐 마는 증거나 정황상 명백한 자살이었다. 베란다에는 소주병과 더불어 의자가 놓여있었고 신발을 신고 난간 위에 올라간 자국도 선명했다. 장례가 마무리되자 조금 진정한 어머니는 우리에게 한 가지를 부탁했다. 


예전에 보험설계사 일을 하면서 아들 이름으로 생명보험을 가입한 게 있는데 자살의 경우에는 보험금을 거의 받을 수 없다며 대사관에서 보험회사에서 연락이 오면 사고로 인한 사망이라고 말을 해달라는 것이다. 


이미 경찰 보고서와 부검이 끝난 상태이고 설사 그전이라도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었다. 

실제로 바다에서 익사한 사람을 리조트 수영장에서 익사한 것이라고 경찰에게 뇌물을 주고 사건 보고서를 위조하여 보험사기로 실형을 산 사람도 있었다.


군대도 안 간 이 젊은 남자는 마닐라 카지노에서 에이전트로 일을 하다가 공금을 도박에 사용하여 날리고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고 장례식에서 그의 지인에게 들었다.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건사고가 카지노 도박과 관련하여 일어난다. 

이전 02화 즉결처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