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랑 Apr 09. 2024

납치인가 자작극인가

대사관 긴급전화입니다

사건 사고 업무에서 가장 힘들고 까다로운 게 납치사건이다.

살인이나 강도, 폭행 같은 강력사건들도 중한 범죄지만 이미 발생한 사건이고 납치사건은 피해자가 돌아오거나 발견되기 전까지는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결론이 나기 전까지는 긴장상태를 늦출 수 없다. 심지어 사건해결까지 1년이 넘게 걸린 납치사건도 있었다. 


20대의 한국인 남학생이 마닐라에서 납치되어서 가족이 몸값을 달라는 연락을 받았고 외교부와 대사관에 신고했다. 비트코인으로 송금을 요구했고 한국 경찰의 조언에 따라 협상을 시도하다가 요구액에 못 미치는 천만 원 정도를 보냈고 피해자의 아버지는 아예 생업을 접고 마닐라에 건너와 숙소를 얻어 생활했다.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는 추적이 어렵지만 그 돈을 현금화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건이 장기화됨에 따라서 우리 팀 전원이 동원되었고 거의 한 달간 교대로 아버지와 합숙을 했다. 필리핀 경찰은 물론 한국 경찰청에서도 프로파일러와 과학수사대, 네고시에이터 같은 민간전문가까지 현지로 파견했고 한 달이 지나서 발신자 위치추적과 금융거래내역 조회를 통하여 범인의 윤곽이 잡히자 부담을 느낀 범인이 코리안데스크에 자수했다.


필리핀 경찰 본청의 납치 전담반 AKG에서 체포된 직후에 그를 만났다. 납치가 아니고 친한 후배가 자기 아버지를 협박하면 쉽게 돈을 뜯어낼 수 있다고 제안을 하여 그냥 같이 살면서 지낸 것뿐이라고 실질적인 피해가 없으니 바로 풀어 달라고 요청하였다. 


반면에 그 아들은 그의 주장은 그게 새빨간 거짓말이며  1달 동안 실제로 납치를 당하여 감금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어이없게도 범인이 월세로 얻은 아파트 안에 아웃도어 용품점에서 구입한 텐트 안에 갇혀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한국과 필리핀, 양국에 사건을 접수하고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취하였다.


필리핀 경찰의 의견은 장시간 동안 결박 상태에서 나타나는 피부 흔적들을 바탕으로 어느 정도는 실제로 감금이었을 가능성을 높게 본다고 하면서도 공식적인 의견을 내지 않았다. 피해자인 아들은 간단한 조사만 받고 풀려났고 납치범은 체포되어 추방절차를 밟고 한국에 송환되었다.


납치다 아니 자작극이다. 우리 팀 내부에서 조차 의견이 엇갈렸지만 내 개인적인 견해는 처음에는 자작극으로 시작하여 원하는 만큼의 돈을 받지 못하자 실제 납치와 감금으로 이어진 것으로 생각한다. 


마닐라에 지난 십 년 간 대형 카지노가 들어온 이후에 납치사건은 매우 자주 발생하는데 거의 대부분은 카지노에서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할 경우에 사채업자가 여권을 빼앗고 협박을 하거나 노름꾼이 도박자금이 필요한 경우에 가족들을 상대로 납치가 되었다며 자작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박이 범죄인 이유는 본인의 재산탕진으로 끝나지 않고 가족이나 지인에게 돈을 빌려서 갚지 않다가 잃은 돈 본전 회복을 해야 한다며 공금을 횡령하거나 거짓으로 사건을 만들거나 하는 2차 피해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이전 14화 만달루용 정신병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