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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랑 Apr 02. 2024

아버지와 두 딸

대사관 긴급전화입니다

마닐라 근교에서 살던 60대 한국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현지 경찰이 수사를 했고 외부침입의 흔적이나 외상이 없기 때문에 사건은 자살로 종결되었다.


그와 가깝게 지냈던 지역 한인회 관계자가 며칠 후에 대사관에 연락을 했다. 고인은 한국에서 사업을 실패하고 필리핀에 건너와서 재기를 시도하였으나 녹록지 않아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단다.

아내와 이혼한 그에게 한국에 두 딸이 있었는데 매달 아버지에게 얼마 간의 용돈을 보내주는 걸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며칠간 속이 더부룩했던 그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으나 의사가 위암일 수도 있으니 큰 병원에서 정밀검진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간단한 추가검사만 받고 돌아온 그는 딸들에게 연락을 하였으나 큰 딸은 형편이 빠듯하다며 이번 달에는 더 이상 돈을 보내기가 어렵다고 했고 작은 딸은 그날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날 밤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았지만 본인의 처지를 비관했던 것으로 보였다.

대사관에서 딸에게 연락했을 때 오열했던 것이 생각난다. 

기막힌 것은 며칠 후 검사결과가 나왔는데 그냥 단순 위궤양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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