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관 긴급전화입니다
일요일 이른 아침에 당직을 통해서 신고가 접수되었다. 카지노 호텔 근처 파출소에 한국 여자가 맨발로 찾아와서 도움을 요청했다는데 의사소통이 안 되는 상태란다. 위급한 상황 같지는 않았지만 계속 울면서 도와달라고 하는 상황이라 파출소를 방문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는 술 냄새도 안 나는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말도 횡설수설하는 게 이상했다.
유흥주점 직원인 이 여자는 단골손님이 바람도 쐴 겸 같이 필리핀에 놀러 가자고 해서 이틀 전에 왔는데 함께 방에서 술을 마시고 일어나 보니 방안에 카메라 같은 것이 여러 대 설치되어 있고 기억이 드문드문 나는데 그 남자와 성관계를 했다고 한다. 다른 남자가 카메라로 촬영을 했단다. 술을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몸에 힘이 없고 제대로 걸어 다니기도 어려워서 방에서 쉰다고 하고 남자가 카지노에 간 동안 전화기만 들고 맨발로 도망쳐서 근처에 파출소가 보이길래 찾아왔다고 한다. 파출소 경찰에 따르면 한 시간 전에 그 여자를 찾으러 남자들이 왔는데 그 여자가 만나기 싫다고 해서 경찰이 돌려보냈단다.
한국의 남자친구에게 새벽에 연락을 했고 지금 한국에서 오는 중이라고 한다. 두어 시간 후에 팔에 문신이 가득한 근육질의 남자가 도착했고 그는 여자를 만나고 그 상황에 화가 나는지 파출소 벽을 주먹으로 쾅쾅 쳐서 경찰들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그 새끼 문 사장이지? 내가 한국 가서 죽인다."
남자친구도 같은 유흥주점에서 일해서 손님인 그 남자를 아는 것 같았다.
아마도 여자에게 물뽕을 먹인 것 같다. 미국에서 데이트 강간 약물로 불리는 물뽕은 GHB라는 약물인데
성범죄에 이용되곤 한다. 무색무취의 투명한 액체라서 술이나 음료수에 타 먹이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순간 기억을 잃기도 한다. 과다복용 시 사망할 수도 있으며 국내에서도 버닝썬 사건 때 사용되어 유명해진 마약이다. 시간이 지나면 체내에서 배출되기에 증거가 남지 않는다. 근처 병원에 가서 소변검사라도 받아야 고소할 때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해도 그냥 한국에 가서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그 후에 일은 잘 알지 못한다. 다만 그 여자의 전화번호가 바뀐 걸 보면 경찰에 신고한 것 같진 않다. 그 야동 찍은 남자는 절대 초범은 아닐 테고 아마도 그런 일을 전문적으로 할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그 대가를 치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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