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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랑 Mar 27. 2024

강제 송환

대사관 긴급전화입니다

국내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필리핀으로 도피한 수배범은 보통 코리안데스크 파견 경찰관이 이민청과 공조하여 체포한 후에 한국으로 송환을 진행한다. 경제사범이거나 자수를 한 경우에는 자진송환을 하기도 한다. 송환되기 전까지는 비쿠탄이라 불리는 이민국 외국인 수용소에서 추방 명령이 나오기까지 대기하게 된다. 


일정이 잡히면 송환 전날에 경찰이나 검찰에서 담당 수사관들이 호송관으로 입국하고 비쿠탄에서 이민청 직원들이 공항에 데려가면 대사관 직원이 여행 증명서를 발급하고 공항에서 만나서 인계를 받아 송환을 실행한다.  


국적기에 탑승을 하면 호송관들이 영장을 집행하는데 대부분은 이 단계가 되면 체념을 하고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조폭 출신인 이 남자는 공항에서 만나자마자 절대로 못 간다고 난리를 부리길래 이유를 물어보니 비쿠탄에 있을 때 한국인 동료 수감자에게 소개받은 현지 변호사에게 사기를 당해서 억울해서 못 가겠다고 시간을 달라고 한다. 이미 여러 관계기관이 조율한 일정에 개인 사정을 일일이 봐줄 수는 없는 법이라 보딩을 마치고 대사관으로 복귀를 하고 있는데 호송관에게서 다급한 목소리로 연락이 왔다.


이 남자는 탑승을 하자마자 화장실을 가겠다고 하여 호송관이 따라갔는데 거울과 천장의 전등을 깨고 고성을 질러대면서 윗 옷을 벗고 바지까지 내리고 온몸에 가득한 문신을 보이며 난동을 부리자 그걸 본 승객들이 불안해했고 결국 기장이 하차를 요구했다. 공무집행 중이라 달래 볼 테니 잠깐만 시간을 달라고 했으나 계속 난리를 치던 그를 보고 호송팀도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하여 보딩을 취소하고 같이 내렸다고 한다.


이민청 직원들도 당황한 건 마찬가지여서 일단 비쿠탄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같이 대책을 강구했다. 호송팀의 책임자는 곧 정년을 앞둔 법무부 국제형사과의 베테랑 사무관이었는데 온갖 흉악범이나 정치사범 등 전 세계의 주요 수배자들을 국내로 호송하는 업무를 꽤 오랫동안 담당한 분 답게 확실히 차분하게 비쿠탄 수용소 소장과 면담을 요청했고 방법이 없겠냐고 의견을 구하자 소장은 잘 쓰는 방법은 아니지만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고 하며 본인에게 맡겨보라고 하길래 폭행이나 고문은 안된다고 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며 꽤 자신만만해했다. 


그다음 날, 하루 미루어진 송환이 진행되었고 호송팀도 긴장하는 상황이었는데 그 남자는 어제와는 달리 협조적인 태도로 그냥 한국에 가겠다고 했다. 피곤한 기색에 수갑을 차고도 팔을 연신 벅벅 긁고 있었는데 하도 긁어대서 팔에 상처가 나있었다.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보니 비쿠탄에서 방에 자리가 없다고 개집에 들어가서 자라고 했는데 밤새 개벼룩 때문에 한숨도 못 잤단다. 이게 소장의 묘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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