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랑 May 07. 2024

담배 피우다 걸린 연예인

대사관 긴급전화입니다

대사관의 긴급 당직전화는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여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 연락하는 번호인데 사실 대부분은 다른 목적으로 전화가 걸려온다. 한국비자 발급을 문의하는 현지인의 전화가 가장 많고 대사관의 일반전화가 연결이 안 되면 여기로 전화해서 항의하거나 단순 문의나 통역을 부탁하는 전화도 심심치 않게 온다.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되는 전화이기에 부담도 만만치 않아서 소규모 공관은 당직전화를 없애고 영사콜센터에서 1차 응대를 하는 시스템으로 바꾸고 있다. 


새벽에 다짜고짜 택시기사를 바꿔서 길 설명을 하라고 하거나 술에 취해서 당장 데리러 오라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성매매 여성과 금액협의가 안된다고 통역해 달라는 경우도 있다. 

운전하다가 교통위반 단속을 당했는데 담당 경찰과 얘기를 해달라는 경우도 많은데 사실 정당한 법집행에 외교공관에서 개입을 할 수도 없고 상황을 정확히 알 수도 없어서 중간에서 난감한 경우가 많다.


필리핀은 공무원들을 대우해 주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우리가 직접 연락을 하면 하면 나름 협조를 받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현지 공무원들은 외교공관과 직접 통화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부패한 공무원들은 더욱 그러하고 통화가 된다 해도 본인 소속과 신분을 밝히지 않는다.  


마닐라 공항 금연구역에서 흡연을 하다가 단속되었다는 관광객에게 전화가 왔는데 실제로 위반을 했으면 우리가 통화를 해도 바뀔 게 없다고 안내를 하니 화를 내면서 본인이 유명 연예인 아무개이고 필리핀에 자주 방문해서 돈도 많이 쓰는데 이건 너무 하다며 단속요원에게 소리를 지르며 거의 강제로 전화를 바꿔주었다. 


난 업무상 마닐라 공항을 자주 방문하기에 그가 어디에서 담배를 피웠는지 대략 알 수 있었다. 전에는 흡연구역이었는데 두테르테 대통령 때 공항 내에 흡연구역을 아예 없애버렸다. 다소 억울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서 한 번만 주의경고로 넘어가면 안 되겠냐고 하자 그는 의외로 흔쾌히 알았다고 이번엔 넘어가겠다고 했다. 사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다. 공항에서 검색 절차를 거부하고 거칠게 항의하다가 공항경찰에 체포되어 비행기 못 타고 유치장에서 며칠 지내고 나온 경우도 있었다.


그 연예인은 다시 전화를 받더니 할 수 있는 걸 왜 못한다고 했냐며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질책을 해댔다. 말이 잘 안 통하는 외국에서도 저러는 걸 보면 국내에서도 안하무인일 게 뻔하다.   




 


이전 22화 가장 아름다운 시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