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관 사건사고 일지
예전에 필리핀 이민국에서는 연례행사와 같이 연말이 되면 한인 소매업체 단속을 벌여
업소를 급습하고 한국인 업주를 연행하여 구금하는 일이 잦았다.
필리핀에서는 원칙적으로 외국인이 소매업을 못 하게 되어있는데,
현실적으로는 소매업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실제로 단속하는 일도 거의 없다.
고용도 창출되고 세금도 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민국에서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는 게 아니라 개인적으로 금품을 갈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우선 가둬놓고 '추방을 하고 사업장을 닫게 하겠다'라고 협박을 하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뒷 돈을 주고 풀려나는 것이다.
이렇게 걷은 돈 중 일부는 이민국 고위층에 상납이 되니 위에서도 모른 체 눈감아주고 있었다.
대사관에 피해제보가 빗발쳤고 사실관계 확인 후 이민국에 직접 항의를 했으나
'현행법을 위반하여 조사하는 게 무슨 문제냐? 내정간섭 하지 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일부 교민들은 피해를 입고도 대사관에 신고했다가 이민국의 보복을 받을까 두려워 신고는커녕
물어봐도 아니라고 잡아떼는 일도 많았다.
당시 대사관에 접수된 피해신고는 10여 건이었지만 실제로는 피해 한인소매업자가 무려 100여 명이 넘어가는 큰 사건이었다. 처음에는 주로 어학원이 단속대상이었는데 식당이나 여행사, 한인마트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단속을 해댔다.
이민국에 항의를 해도 먹혀들지 않자 대사관에서는 법무부 장관 등 고위층에도 입장을 전하고
도움을 요청했으나 먹히지 않았다.
당시에 대사가 출장으로 공석이라 차석인 총영사는 고민 끝에 필리핀인의 한국비자 발급을 중단시켰다.
하루에 한국 비자 신청자가 몇백 명에 달했는데 비자발급을 전면중단하자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비자를 못 받아 난처한 상황에 빠진 필리핀인들이 결국 자국 정부도 압박을 하였다.
필리핀 정부에서도 경위를 물었고 비자발급을 재개하라는 요청이 들어왔지만 무시했고
불법적인 이민국의 횡포를 중단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라는 강경책으로 맞섰다.
필리핀 정부는 1주일 뒤 잘못을 시인하고,
'더 이상 불법적인 행위가 지속되지 않도록 방지하겠다'라고 약속했고
이민청의 연례행사와 같은 대대적이고 불법적인 단속은 멈추게 되었다.
한국과 필리핀의 작은 전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