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관 사건사고 일지
필리핀에 수감 중인 한국인의 수는 몇 명이나 될까?
답부터 말하자면 수감자의 수는 백 명을 넘는다.
그중에 절반은 이민국 비쿠탄 수용소에 있고 나머지 절반은 구치소와 교도소에 있다.
원칙적으로 외국인이 범죄를 저지르면 형을 치르고 자동으로 추방 대상자가 되지만
필리핀의 사법, 교정 시스템은 그리 치밀하지 않아 구치소를 몇 번이나 들락날락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 팀에서 보통 단골손님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몇 달이 멀다 하고 체포되었다 풀려났다 하는 사람들이다.
죄명도 무전취식이나 절도 등이 대부분이며 노숙을 하다가 잡혀가기도 한다.
도움을 청할 가족이나 지인도 없으니 보석신청도 하지 않고 벌금형이 나와도 몸으로 때운다.
이 남자는 슈퍼마켓에서 스팸, 초콜릿 등을 훔치다가 걸렸는데 고작 우리 돈 3만 원도 안 되는 거라서
계산을 깜빡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순순히 범행을 인정했다.
대사관의 도움은 필요 없고 나중에 풀려나면 대사관을 찾아갈 테니 여권이나 만들어 달라는데
한 번도 찾아온 적이 없고 체포될 때마다 이 소리를 몇 번이나 거듭했다.
그는 마지막 통화에서 놀라운 말도 했다.
"이번에 훔친 금액이 3천 페소니깐 3개월 정도 살고 나오면 된다.
아마 라면박스(대사관 정기 위문품) 받기 전에 나올 거다.
그 판사는 전에도 여러 번 만나봐서 잘 안다. 나오면 찾아갈 테니 여권이나 만들어 달라"
결코 이런 삶을 살려고 외국에까지 오진 않았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도박 중독으로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본인들도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