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6학년 때 전학을 하고 나서 친구들을 만날 기회를 찾지 못했다. 나도 바빴고 그들도 바빴다. 서울, 인천, 수원, 충주, 광주, 남원, 목포, 진도 등등 모두가 각각 흩어져 지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처절하게 삶을 살다가 고향이 그리워졌고 친구들이 그리워진 시점은 나이 50이 되던 해였다. 그로부터 10년 정도 지났는데 만남의 횟수는 불과 한 손가락 안에 든다. 우리는 만나고 싶은데 사정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움만 깊어간다. 이번 만남도 그랬다.
기분 좋은 날, 10월의 마지막쯤 되었을 때였다. 누군가 모이자고 했다.
1박 2일로 모여서 회포를 풀자고 했다. 어디서 모일까 했더니
목포에서 모이자고 했다.
날짜는 멀찍이 12월 초가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한 달 전쯤, 연말이라 숙소 잡는 것이 힘들 것을 예상해서 알아보았다.
게스트하우스를 숙소로 이용하기로 했다.
남자, 여자 한 동씩 예약을 했다. 드디어 기다리는 주가 되었다.
금요일에 만나기로 했기에 너무 조용한 아이들의 상황을 살피기로 했다.
설레는 마음 담아서 금요일에 만나자라고 글을 쓰자 제주도 사는 여자친구가 못 올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인천에 사는 여자친구는 주일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부담되어서 고민 중이라고 했다.
한 친구는 허리가 아파서 금요일에 병원 예약을 했다고 못 온다고 했다. 한 친구는 왔다가 새벽에 가야 해서 못 온다고 했다. 한 친구는 장문의 글을 써서 바쁜 일정 때문에 못 온다고 했다. 너무 맥이 빠져가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고향에서 살고 있는 친구는 기상악화가 예상되어서 어렵다고 했다. 하룻밤 숙식할 수 있는 친구는 나와 순천에서 살고 있는 회장뿐이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토요일에 온다고 했다. 모든 힘이, 김이 세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계획 수정이 불가피했다. 토요일 당일 모임을 하거나 모임을 취소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토요일 11시 반에 ‘만선식’에서 만나자고 결론을 내렸다. 모두가 조용해졌다.
숙소를 취소하려고 하니 환불 불가라고 했다. 하루만 전에 취소했어도 전액 환불되는 거였다. 한숨만 나왔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하루가 지나서 누구라도 그곳에 가서 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직장동료에게 말했다. 선뜻 여직원 3명이 가겠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퇴근길에 두 명의 친구가 스쳐 지나갔다. 가끔씩 만나서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고 헤어지는 친구 두 명이 있다. 그 친구들은 중고등학교 때 같은 교회를 다니던 친구였고 일 년에 서너 번 번개모임을 하곤 했다. 사정을 이야기하고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지 묻자 오케이란다.
우리는 저녁밥을 먹은 후 숙소에 가기로 했다. 선창가, 우리가 자주 가는 '수미가'라는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금요일, 그 친구들과 만나기로 하고 아침부터 설레는 여행가방을 챙겼다. 점심을 먹은 후 산책을 하는데 한 친구가 스쳐갔다. 나는 또 전화를 했다. 그 친구는 오랜만이다. 저녁에 오려고? 한다. 그 친구가 몇년전 사별을 하고 혼자 지내는 터라 가끔씩 퇴근후 들려서 말친구가 되어주곤 했다. 아니. 친구야~ 나는 사정을 이야기를 하고 오늘 저녁 같이 잘래? 하니 오케이란다. 그 친구 또한 같은 교회를 다니던 친구였으나 두 친구와는 접점이 없어서인지 기억을 못한다. 다른 두 친구에게 새로운 친구가 함께 해도 되는지 물으니 모두 반긴다.
와우! 두 방 모두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그저 기뻤다. 공중분해될 것 같았던 숙박료가 누군가에게 힐링의 장소를 제공해 준다는 사실에 감사를 했다.
직장 동료들은 한 명이 사정상 함께하지 못했고 둘이서 집을 나와서 집이 아닌 곳에서 밤을 보내며 추억을 쌓았고, 나는 고향친구가 아닌 교회친구들과 밤을 드려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사이에 우리는 어릴 적 교회이야기로, 학교 다닐 때 겪은 절대공감으로 찐한 친구들이 되었고 하룻 밤새 만리장성을 쌓는 여행을 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50여 년 전 어릴 적 삶의 터전이었던 곳들이 관광지로 바뀐 목포의 정기를 다시 발견했고, 슬로시티를 거니는 호사를 누렸다.
교회친구들과는 다시 좋은 여행의 동반자가 되기를 약속하며 짧은 여행에서 헤어졌다.
연이은 고향친구들과의 만남, 이제 손을 다시 잡아도 애처로워지기만 하는 마음,
고향 오빠가 운영하는 ‘만선식당’에서 장어탕을 먹으며 모임을 했다. 목포맛집으로 유명하다고 하니 더 맛있고 자랑스러웠다. 내 고향 어머니가 전수시킨 맛이 우리나라 맛집이 되었으니 어깨는 으쓱 세워지고 사장님의 훈훈한 미소는 추운 날을 녹여주었다. 방 하나를 내주어서 소마도 이야기에 웃음꽃은 피어났고 재탕 삼탕해도 지겹지가 않는 우리들의 이야기는 뿌옇게 우러나온 장어탕의 깊은 맛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고 하는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비가 내리고 추운 날이었지만 고향 친구들의 넉넉한 따스함으로 난로를 안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목포의 낙지 탕탕이를 맛보지 않고는 서울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생떼를 놓는 친구의 땡깡으로 인해 고소한 낙지를 맛보았다. 부드럽고 쫄깃하고 고소한 맛은 입안을 후비는 낙지들의 꿈틀거림으로 승화되었다.
친구들은 먼 길을 왔다가 짧게 만나고 다시 먼 길을 타고 자신들의 안식처로 돌아갔다. 다음번에는 소마도에서 만나기로 했다. 친구들을 만나는 일을 망설이던 예전의 모습이 아닌 나를 발견했다. 더욱 정열적으로 사랑하리라는 생각을 했다. 내 인생의 모든 순간을. 고향바다, 바다의 보고가 눈앞에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