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해 주는 책
유난히 힘든 날이 있다. 집이 무너진 것도 누가 나를 때린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침에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지만 몸에 힘이 안 들어가 일어나지 못했다. 무단결근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겨우겨우 일어났다. 솔직히 지각을 해도 회사는 굴러가겠지만 팀장에게 구구절절 내 상태를 변명처럼 늘어놓는 게 싫어서 꾸역꾸역 회사로 향했다.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수동적으로 기계처럼 당장 해야 되는 주어진 일만 처리한다. 그렇다고 빨리 집에 가고 싶은 것도 아니다. 사무실이든 집이든 어디든 상관없이 누워있고 싶다. 머릿속에 뇌를 꺼내버리고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싶다. 수만 가지 부정적 잡념이 나를 찌르며 열정도 기운도 쪽쪽 뽑아가고 있다.
맞다. 지금 나를 괴롭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인생은 원래 힘든 거라고 한다. 고달픈 것이 인생이라. 인간은 묵묵하게 걸어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은 고단하고 힘든 길을 조금 더 쉽고 안전하게 갈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는다.
"언제까지 월급으로만 살 수 없으니깐요."
지난주 독서모임에 한 회원은 자기 계발서를 가지고 나오셨다. 어떻게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듣다 보면 이상(?)하게 삶에 대한 의욕이 생긴다. 아침에 이불정리, 출근하기 전 한 시간 운동 또는 공부를 하는 미라클 모닝 등. 하고자 하면 할 수 있는 방법들이 부자로 가는 첫 단계란다.
"저는 가능하다면 40대에 은퇴하고 싶어요."
그리고 돈을 모았으니 불리는 방법이 나왔다. 어떤 마음으로 주식을 해야 하는지, 작가가 부동산을 찾으러 얼마나 치열하게 돌아다녔는지를 듣다 보면 의욕은 사라진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 같다.
하지만 점점 고양돼서 책을 소개하는 회원님이 부럽다. 그분은 경제적 자유로 인생의 고난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통장에 차곡차곡 쌓이는 씨앗 머니가 활력소가 될 것이다. 경제적 자유라는 목표를 이루고자 노력하는 자신의 모습을 자랑스럽고 대견스러울 거다.
난 대체 뭐가 문제일까? 난 대체 뭘 하고 싶은 거지?
회사 생활을 했지만 돈을 많은 모은 것도 아니다. 부자도 아니면서 재테크를 할 의욕도 없다. 아니 애초에 돈 욕심은 있나? 노후에 대한 대책은? 끊임없이 굴러가는 부정적이 생각이 눈덩이처럼 커져 내 몸을 덮쳐버렸다. 퇴근길 오늘 점심에 무엇을 먹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버스 창문에 비친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 눈을 피하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니 뭐가 문제인지 알겠다.
'위로와 응원이 필요하구나.'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따듯한 위로와 격려의 박수다. 인생이라는 긴 마라톤을 달리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나를 돌봐줘야 한다. 그 방법은 아마 개인마다 다를 것이고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것도 아니다.
친구를 만나거나 운동을 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건 집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 만한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다면 핸드폰으로 강연을 보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이것도 소음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고요 속에서 불안과 슬픔만을 온전히 위로 할 수 있는 방법. 바로 책이다.
데미안, 불현듯 데미안이 떠올랐다.
'데미안 다시 읽어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