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속에서 스스로 솟아나는 것, 바로 그것을 살아보려 했다.
마음의 상처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기에 얼마나 벌어졌는지, 피가 쏟아질 정도로 깊게 찔렸는지 알 수 없다. 얼마나 아픈지 어디가 아픈지 왜 아픈지. 보이지 않는 상처를 설명할 자신도 없다. 꾀병처럼 보일까 무섭다. 그래서 제일 쉬운 방법을 택했다. 상처를 꼭꼭 싸매서 던져버린다. 마음은 바다와 같아 깊이 갈수록 어둡고 고요하니 더 이상 아프지도 시끄럽지 않다.
이제 어른만 되면 된다.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이 수월할 것이다. 언변도 생기고 지위도 생기고 일에 대한 책임도 지고 사니깐. 착각이었다.
마음의 상처는 시간으로 치유할 수 없다. 몇 주만 지나도 아니 몇 십 년이 지나도 바다 깊숙한 곳에 잠겨있던 상처가 불쑥 떠올라 다시 날 아프게 한다.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데미안은 결코 쉬운 책은 아니다. '동네 양아치 크로머에게 협박을 받으며 타락하던 싱클레어가 데미안이라는 친구를 만나 내면을 탐구하며 나아가 전쟁까지 참전하게 되는 이야기.'라고 사건으로만 줄거리를 정리하면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성장 소설처럼만 보인다. 실제로 독서 모임에서도 몇몇 회원분은 데미안을 성장 소설로 받아들여 읽으니 쉬었다고 한다.
"데미안이 아직까지도 명작을 뽑히는 이유가 뭘까요?"
독서 모임에서 한 회원이 내게 질문했다.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관통하는 무언가 있기 때문이죠."
난 그 '무언가'가 질문과 답이라고 생각한다. "카인은 악인일까?"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했던 맨 처음 질문이다. 너무나 직선적이고 적나라한 질문에 내 두 눈을 의심했다. 신학자 가문과 신학교가 있을 정도로 기독교에 대한 믿음이 강한 나라에서 이런 의구심을 가져도 되는 건가?!
질문에 대한 답. 데미안에는 답이 있다.
"하지만 세계는 다른 것들로도 이루어져 있어. 그런데 지금은 그 모든 것을 단순히 악마의 것으로만 돌리고 있어. 그래서 세상의 그런 부분, 이 절반이 모두 은폐되거나 묵인되고 있지."
데미안은 누구의 가르침도 아닌 스스로 본질에 대해서 생각하고 세상을 바라보았다. 과연 세상은 선과 악으로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성경이 과연 옭은가? 이런 질문이 불편한가? 왜?
나는 본능적으로 '남'이 불편한 질문과 상황은 피한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 돼.' '친구랑 사이좋게 지내야지.' 어린아이에게 단체 생활과 사회생활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 배웠던 규칙은 내게 착하고 말 잘 듣는 똑똑한 아이가 되게 해 주었다.
하지만. 데미안이 말한 것처럼 세상은 신과 악마로 구분될 수 없다. 그 외의 다른 것들. 흑과 백 그리고 다채로운 색이 있는 곳이 세상이다. 소리 지르지 않아도 은밀하게 루머를 퍼트릴 수 있고 주먹으로 때리지 않아도 사람을 괴롭힐 수 있다. 착하고 말 잘 듣는 똑똑한 아이는 저런 교묘한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
아무것도 못했다. 착한 척만 하고 헛 똑똑이었던 나는, 방관자가 되어버린다.
어떤 이들은 결코 인간이 되지 못하고 개구리나 도마뱀이나 개미로 남아있다. 어떤 이들은 상체는 인간인데 하체는 물고기다. 하지만 누구나 인간이 되라고 던진 자연의 내던짐이다.
세상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불공정이 있고 불평등이 있다. 사람답지 않은 사람도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완벽하지 않고 불안전하다. 그러기에 불편하더라도 미친 듯이 도망치고 싶더라도 피하면 안 된다. '악'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수많은 것들에게서 '나'를 보호하려면 깨달아야 한다. 내 안에 깊은 곳에 던져두고 모른척하고 살았던 어둡고 아리고 슬픈 상처를 마주 봐야 한다는 것을.
"우리 마음속에는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을 원하고 우리 자신보다 모든 것을 더 잘 해내는 누군가 살고 있어."
내면의 상처를 마주 보고 돌봐주다 보면 우리는 결국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된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사회적 시선에 상처받지 않고 온전하게 스스로를 지키며 신념에 따라 꿋꿋하게 행동할 수 있는 자신(自身) 말이다.
"붕대를 감는 과정은 아팠다. 그 후로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이 아팠다. 하지만 내가 이따금 열쇠를 찾아내 나 자신 안으로 완전히 내려가면 그곳 어두운 거울에서 운명의 모습들이 잠들어 있었다. 그럼 나는 검은 거울 위로 그냥 몸을 숙여 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면 되었다. 그 모습은 이제 완전히 그와 같았다. 내 친구이며 길 안내자인 그 사람과."
데미안을 읽고 수없이 노력했다. 내 감정이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게 스스로 다독였으며 내면의 상처가 벌어질 것 같으면 양팔 벌려 꼭 끌어안았다.
그러니 이제는 내가 나를 잘 안다. 내가 힘들 때, 내가 다쳤을 때, 내가 불안할 때. 나는 나를 위로한다. 그러면 다시 숨을 쉬며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