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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장인J씨 Mar 11. 2024

신에게 묻겠습니다. 무저항은 죄입니까?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눈을 반짝이며 '인간 실격'에 대해 얘기를 하는 해바라기님 모습이 마치 '7년의 밤'을 얘기하던 내 모습 같았다. 좋아하는 것을 얘기할 때 나오는 통통 튀는 밝은 에너지에 호기심이 생겼다. 


같은 실수와 잘못을 되풀이할 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라고 한다. 이에 대해 나는 당당하게 말해보겠다. 사람은 변한다! 긍정적으로!


그에 대한 근거는 10대 때 포기했던 '인간 실격'을 30대에 다시 도전하였고 그 책은 내 인생 책이 되었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 유명한 문장은 인간 실격에서 나온 문장이다. 이 문장만큼이나 유명한 것이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일생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인간 실격'을 쓰고 '굿바이'를 쓰던 중 애인과 자살한다. 


작가의 비극적인 삶과 소설 속 주인공 '오바 요조'의 삶이 너무도 닮아 있다. 그래서인지 독서모임에서 종종 소설 주인공인 '오바 요조'가 자살에 성공했다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아니다. 

소설 속에서 '오바 요조'는 정신병원에 수감된 채로 끝난다. 그리고 이어진 한 사내와 마담의 대화에서 요조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고 한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실하게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자살에 성공했다고 보는 걸 수도?)  


세계 2차 대전에서 패망한 일본,  그 암울한 시간 속에서 하루아침에 사상과 이념이 바뀌는 위정자들을 보며 일본 청년들은 극심한 무기력과 우울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때 한 인간의 나약함을 적나라하게 쓴 책이 발표되었고 많은 사람이 그 책에 열광했는데 그 책이 바로 '인간 실격'이다.


일본 데카당스 문학(향락, 퇴폐주의를 본받는 문예사조)의 대표작인 '인간 실격'.

 

'한심하고 보잘것없는 나의 인생, 부끄럽기 그지없는 나의 삶. 인간으로서조차 실격당한 나.'


소설을 읽다 보면 '왜 이렇게 살지?'라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반발심까지 든다. 그 불편한 솔직함에 얼굴이 화끈거리고 입술까지 깨문다. 그러다가 깨닫게 된다.



'그건 세상이 용납하지 않아.'

'세상이 아니야. 네가 용서하지 않는 거겠지.'

'이제 곧 세상에서 매장당할 거야.'

'세상이 아니라 자네가 나를 매장하는 거겠지.'

'너는 너 자신의 끔찍함, 기괴함, 악랄함, 능청맞음, 요괴성을 알아라!'


갖가지 말이 가슴속에서 교차했습니다만, 저는 다만 얼굴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면서 

"진땀 나네, 진땀." 하고 웃을 뿐이었습니다.


-인간실격 p93



굉장히 현실적이고 주변에 꼭 한 명은 있을 것 같은 인물 '호리키'. 요조가 화방에서 그림을 배우다가 알게 된 한두 살 많은 형이다. 사람을 힘들어해 도쿄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요조를 데리고 나가 사창가에 가서 술을 마시는 법을 알려준 인물이다.

물론 사창가로 가는 지하철 요금부터 술값까지 전부 요조의 돈으로 말이다. 호리키는 가난했으므로 방탕한 삶을 살려면 요조의 돈이 필요했고, 요조는 호리키에 묻어가 최소한으로 사람을 상대하면서 방탕한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 호리키는 시즈코와 제대로 된 혼인을 하지 않는 요조를 비난한다. 요조의 재력을 마음껏 이용했으면 이에 대한 감사와 반성은 하지 않고 말이다. 


'세상이란 개인이 아닐까.'

 

맞네,  결국 호리키가 말한 세상은 호리키 자신이다. 우리는 세상 눈치가 아니라 타인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나도 내 기준을 사회 혹은 세상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상대에게 강요한 적이 없었나.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옅은 신음이 나왔다. 어쩌면 내 주변이 아니라 내가 호리키가 아니었을까.  



"자네는 죄라는 것에 전혀 흥미가 없는 것 같군."

"그야 그렇지. 너 같은 죄인이 아니니까. 나는 난봉은 즐겨도 여자를 죽게 하거나 여자한테서 돈을 우려내거나 하지는 않거든."

죽인 게 아니야. 우려낸 게 아니야,라고 마음속 어딘가에서 희미한, 그러나 필사적인 항변의 소리가 끓어올라 왔습니다. 그러나 아니 내가 나쁜 거야,라고 금방 다시 고쳐 생각해 버리는 이 버릇.

-인간 실격 P113



요조가 처음으로 사랑을 느낀 요시코와 결혼하고 안정감을 느끼며 그나마 '인간답게' 살다가 호리키를 만나게 되면서 또다시 술을 마시며 외박을 하게 된다, 


하, 그놈의 술. 술. 술.


술 없이 못 사나?라고 질문하면 누군가는 대답하겠지. 이 망할 세상 어떻게 맨 정신으로 사냐고. 술이라도 마셔야 살 수 있다고. 지금도 요지경 세상이다. 정치인에게 정당은 오직 이득에 따라 바뀌는 회사나 다름없어 보이고 다른 나라에서는 전쟁까지 일어났다.  

하물며 1948년에 발표된 '인간 실격' 시대상은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하였다. 패배로 인한 지독한 무력감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는 현재와 어두운 미래.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죄에 대해 생각하는 요조가 어쩌면 정상인일 수도 있겠다.



남편은 화를 내기는커녕 싫은 소리 한마디 못했고, 또 아내는 그녀가 지녔던 귀한 장점 때문에 능욕당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그 장점이라는 것은 남편이 예전부터 동경하던 순결무구한 신뢰심이라는 한없이 애잔한 것이었습니다.

무구한 신뢰심은 죄인가?

.... 중략.... (너한테는 죄가 없어.)



요시코가 요조에게 일거리를 가져다주는 상인에게 강간당한다. 요조는 상인보다는 그 상황을 굳이 자신에게 보여준 호리키에게 더 큰 분노를 느낀다. 근데 또 그뿐이다. 요조는 호리키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요조는 유부녀가 겁탈당한 얘기를 찾아본다. 대부분 아내의 '행위'를 남편이 용서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중점이 맞춰져 있다.

이에 요조는 큰 슬픔과 절망에 빠지면서 묻는다. 요조가 요시코와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요시코가 가지고 있는 순수한 신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상인에게 강간을 당한 요시코가 무슨 죄가 있냐고. 그리고 남편에게는 용서할 권리 따위 없다고 생각한다.


요조는 이처럼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정말 그뿐이다. 요조는 타인에게 자신의 그런 감정을 쏟아내지 않고 삼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간다. 난 여기서 요조가 '착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한테는 죄가 없어.' 이 말이 희미하지만 강력하게 울렸다. 사회사상은 강력하다. 더구나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 중요했던 사회에서 남들과 다르게 아내를 피해자로 생각했다는 건 천성이 선(善)한 거다.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은 결국 안에서 곪는다. 그렇게 요조는 알코올 중독에서 약 중독으로 상태가 심각해지고 정말, 정말, 저 밑바닥까지 추락한다.



신에게 묻겠습니다. 무저항은 죄입니까?



난 무저항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 실격'을 보고 이 생각에 더 확신을 가졌다. 저항은 살고자 하는 발악이자 몸부림이다. 현재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더 큰 고통을 참으며 숨 쉴 수 있는 미래를 향한다. 숭고하고 거룩한 그 행위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인간이라고 모두가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무저항도 선택일 뿐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간은 누구에게도 구원받을 수 없다. 그렇기에 더더욱 스스로가 스스로를 구원해야 한다.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하고 파멸하게 둔 요조는 결국 호리키와 넙치에 의해 정신병원에 가게 된다.



인간 실격.

이제 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실격 p131



스스로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된 요조. 어쩌면 호리키와 넙치의 시선으로는 요조는 열심히 살지 않은 나태한 죄인일 수도 있겠다. 한심한 인간, 세상에서 도태된 인간. 요조는 상처받은 인간을 가여워했으나 가족도 친구도 요조를 가여워하지 않았다.

그 옛날에는 '자살'을 존중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요조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 인간으로 남고 싶어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인간실격 p134



난 이 말을 듣고 싶어 '인간 실격'을 끝까지 읽은 건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원래 힘들고 버티는 것이라고 한다. 버티다 보면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간다. 



마담이 무심하게 말했다.

"우리가 알던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눈치 빠르고……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 하느님같이 착한 아이였어요."



다 읽고 나서 찝찝함과 답답함에 한동안 힘들었다. 지독한 우울감과 부끄러움에 공감하지 않으려 발악했다. 


'나라면 안 그럴 거야! 나라면 당당하게 일어나 말할 거야!'


하지만 서서히 천천히 깨닫게 되었다. 인간이라면 분명 하나쯤은, 한순간쯤은 가지고 있다. 요조를 괴롭힌, 작가를 괴롭힌, 그 지독한 부끄러움이 무엇이었는지를.


자기 연민이라고 한다. 인간의 가장 부끄러운 슬픔을 쓴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40대에 읽으면 또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될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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