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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남매맘스하루 Mar 03. 2024

엄마라는 두 글자, 슬픈 단어도 아닌데 왜 눈물이 날까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가 보인다.

어릴 때 오빠가 집 앞 우물에서 놀다가 우물에 빠져 하늘나라로 갔다. 너무 어릴 때라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내 바로 아래 동생은 결혼을 앞두고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은 나와 막냇동생밖에 없다. 아직 미혼인 막내는 장남이 되어 부모님을 모시고 오빠를 데려간 그 우물이 있는 시골집에 아직도 살고 있다. 어린 나이에 하늘나라에 간 동생 또한 한 줌 재가 되었기에 시골집 뒷산에 뿌려주었다. 그래서 엄마 아빠는 그곳을 더 떠나지 못하신다. 엄마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엄마는 지금도 집 걱정은 하지 말고 애들이나 잘 챙기라며 내 걱정을 더 많이 하신다. 아이가 여섯이나 있는 딸을 여전히 어린아이로 보신다.


어린 시절 나에게는 버스를 타고 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이 있었다. 아직 어린 우리를 키우면서도 엄마는 시골에서 상추며 깻잎, 꽈리고추 호박 등을 5일장에 내다 파셨다. 그러면 우리는 맛있는 과자를 사 오실 엄마를 기다리며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이런저런 놀이를 하다가 이젠 오셨을까? 정류장에 나가 버스를 기다리곤 했다.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의 거리가 꽤 멀었다. 지금처럼 버스 오는 시간을 착착 알려주는 어플이 없었기에 엄마가 오실 때까지 버스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버스에서 엄마가 안 내리면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꽤 긴 시간 동안 기다려야 해서 상당히 애매하고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 그도 그럴 것이 오전에 3번, 오후에 3번. 하루에 여섯 번만 버스가 왔다.


저만치에서 버스 머리가 살짝 보이면 발을 콩콩 구르며 엄마가 내리기를 기대했다. 버스에서 엄마가 내리면 엄마 짐을 받아 들고, 엄마 손도 잡고, 엄마가 오기 전에 우리끼리 청소하고, 밥도 하고, 빨래도 했던 이야기를 마음껏 퍼부었다. 엄마는 지치고 힘들었겠지만 마중 나온 아이들이 서로 이야기하겠다며 재잘대는 모습이 기특하고 예뻤을 것 같다. 돈을 많이 벌진 못했지만 애써서 번 돈으로 반찬거리나 아이들이 좋아할 과자를 살 때의 기분은 또 얼마나 좋았을까? 엄마 마음도 아이 마음도 느껴진다.


내가 아이들을 다 재우고 한 명씩 쓰다듬으며 내 똥강아지 잘 자~~ 하고 돌아서자마자 이유 없이 눈물이 나는 것처럼 우리 엄마도 그랬다. 매일은 아니었지만 좀 힘든 일이 있거나 참을 수 없을 때면


조용히 우릴 재우고 뒷산에 올라 펑펑 우는 것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이름 모를 묘를 부여 앉고


누가 들을세라 꾸역꾸역 참아내며 우는 울음. 하지만 어린 내겐 그 모습과 그 울음이 엄청나게 크게 다가왔었다. 아직도 우리 엄만 내가 엄마모습을 본걸 모르신다. 내가 얘기 안 했으니깐. 내가 봤다는 걸 알면 더 속상하실 테니깐. 이제 그 비밀공간을 잃어버리실 테니깐. 그래서 계속 얘기할 기회를 놓쳤던 것 같다. 육 남매엄마가 된 지금도.


그때의 어린 내가 지금 엄마 마음에 공감하고 있다. 잊어버렸던 기억이 많이 떠올라 슬프면서도 형용할 수 없는 오만가지 감정이 깃든다.


그런 내가 육 남매엄마가 되었다. 아이들과 투닥투닥 말다툼을 하다가도 넘어지거나 부딪쳐서 멍이라도 들면 내 맘이 더 아프고 피멍이 든다. 하물며 우리 엄마는 어린아이에서 다 큰아이까지 두 번이나 자식을 잃었다. 그 심정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난 새벽마다 우리 아이들을 재우고 어릴 적 울 엄마를 만난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토닥토닥 얼마나 힘들었니?.. 하고 엄마가 된 내가 어릴 적 울 엄마를 위로한다.


이제는 내가 엄마에게 맛있는 사탕 하나 엄마 손에 쥐여 주고, 엄마 손을 꼭 잡고 세상 곳곳으로 여행을 하고 싶다. 그림책 여행이 아닌 진짜 여행 말이다.


우선은 비행기를 타고 가까운 제주도라도 가서 바다도 보고 노랗게 핀 유채꽃도 보고 싶다.


엄마와 손잡고 꽃밭도 걷고 맛있는 고기 구워 먹으며 소주 한잔도 기울여보고 싶다. 그러고 보니 엄마랑 술 한잔 해본 기억이 없네.


엄마 보고 싶었어~ 하며 엄마에게 어리광도 부리고 엄마에게 술기운 살짝 빌려 엄마 힘들었지~ 울 엄마 애썼다. 울 엄마 고생했네 그렇게 말꼬를 트고 싶다. 하아~ 생각만 해도 좋으면서 슬프다.


엄마 엄마 태어나서 지금까지 셀 수 없을 만큼 불렀다.


근데 엄마가 되어 부르는


엄마라는 단어는 왜 슬픈 단어도 아닌데 이렇게 떠올리기만 해도 슬픈 걸까? 참 이상하다. 우리는 모두 엄마의 탯줄로 이어진 아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기쁠 때도 슬플 때도 놀랄 때도 언제나 “엄마”를 부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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