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은 일단 90년대생인 거고, 2000년.. 2002년... 그리고 또 어디 보자 200.. 4년!?'
커뮤니티 채널에서 각 멤버들의 자기소개서를 읽어 내려가며 깨달았다. 아 여긴 밀레니엄 베이비들의 집합소구나! 2000년 1월 1일 새해로 바뀌던 그때, 밀레니엄 시대의 첫 베이비들이라며 공중파 뉴스에 나온 신생아 실에서 울던 그 애기들이 어디 갔나 했더니 바로 여기 있었구나!
커뮤니티 채널에 올라온 수많은 200x 자기소개서들 속에서 199x로 시작하는 나의 소개서를 올리기가 어쩐지 약간은 민망스러웠다.
‘아니 전시회 하겠다면서 왜 미팅을 안 잡지? 시간 꽤 지났는데 왜 아무 말이 없는 거야..’
일본 사는 한국인이라면 아마 한 번쯤은 겪어 봤을 이런 답답한 상황. 성격 급한 한국인의 특성도 한 몫하겠지만 사실 이 나라 사람들 기본적으로 참 수동적이다. 모든 것을 일반화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수년간의 일본 생활을 통해 배운 건 일본인들은 일이 잘못되었을 때 지게 되는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무언가 문제가 생기게 되면 곤란할 터이니 이러한 환경적인 요소들이 충돌을 피하고 덮어두기를 선호하는 국민성으로 이어 진건 아닐까라는 일종의 뇌피셜. 문제가 있을 때는 확실히 해결을 하고 풀어가야 하는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10년 넘게 살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이러나저러나 이들은 이런 성향을 바탕으로 안전 지향적이고 수동적인 선택을 선호한다는 걸 잘 알고 있던 나는 총대를 매기로 했다.
그렇지만 내 나름의 고민도 있었다. 나의 역할이 모호한 상태인 채로 이제 막 들어온 어디서 굴러들어 온 지도 모를 새로운 멤버가 갑자기 나서는 것도 너무 나대는 것 같고 어딘가 모양 새가 이상하지 않은가? 커뮤니티 매니저 TY의 입지도 있을 텐데 내가 먼저 나서는 건 어쩌면 무례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리긴 해도 커뮤니티 일에 관해서는 기존 멤버들이 나보다 경험도 많고 선배인 것이나 다름이 없는데 그 친구들을 존중해 주는 느낌을 주면서도 프로젝트를 빨리 진행시켜버리고 싶은 직업병 속에서 밸런스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꼰대 같아 보이지 않으면서도 나름의 포지션을 잡고 일 추진하기」 내가 마주한 첫 번째 어려움이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때를 기다리며 멤버들과의 유대감이 깊은 TY를 통해 일단은 이야기를 꺼낼 타이밍을 잡는 것일 테였다. 그렇게 우리는 자기소개를 위한 자리 겸 전시회 이야기를 꺼낼 구실을 위한 첫 번째 미팅을 잡았다.
"네?? 사진 보고 많아도 3-4살 정도 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 나이라고요???"
혹여나 나를 불편해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 속에 첫 미팅에서 들은 꽤나 기쁜 립 서비스적인 코멘트는 나의 긴장을 녹여주었다. 사회생활을 참 잘하는 N군은 한 번의 재수로 의과대학을 다니면서도 취미로 사진작가 활동을 병행하며 예술 대학으로의 편입을 고민하는 친구였다.
그 외에도 모두들 나를 어려워하지 않고 환대해 주었다. 다들 나를 또래로 인식하기 쉬운 건지 아니면 내가 정신이 어린 건지 서로 말도 편하게 놓다 보니 나의 걱정과는 달리 10살 터울의 친구들과도 위화감 없이 어울리는 나를 보며 또 다른 나의 모습에 스스로 놀랐다.
평소 새로운 사람을 사귐에 있어서 꽤나 방어적이고 폐쇄적인 사람임이 분명한 나는 아주 가끔 알 수 없는 타이밍에 오픈 마인드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정말 원하고 관심이 가는 것 혹은 한번 보고 말 사람들을 대할 때 또는 그와는 반대로 내가 편하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대할 때 선택적으로 나오는 나의 외향인 페르소나는 가끔씩 나 자신도 놀라게 만든다.
어쩌다 내가 외향인 페르소나를 꺼내 썼을 때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나를 외향인으로 인지하기도 하지만, 사실 나를 정말 잘 아는 사람들은 모두 다 알 것이다. 나만큼 생각 많고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싫어하는 모순적이고 복잡한 내향인 인간은 없을 거라고.
나는 나의 외향인 페르소나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이 모임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이건 내가 흥미를 가지고 보다 더 능동적인 사람이 되도록 나 스스로를 자연스럽게 이끄는 무언가가 이곳에 있다는 반증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