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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lieve You Can Fly

by 벨찬

김포공항 옆에는 국립항공박물관이 있다. 관람료는 무료다. 친환경 차는 주차비도 할인된다. 아직 낮은 뜨겁고 하루는 길다.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럼, 출발.


가는 길에 공항 앞을 지났다. 공항 주변엔 높은 건물이 없어서 좋다. 뻥 뚫린 하늘에 비행기가 날아간다. 순식간에 작은 점이 되어 사라졌다. 나는 아직도 저 커다란 철 덩어리가 하늘을 나는 게 신기하다. 선이에게 저것 좀 보라고 비행기가 날아간다고 알려주었는데, 뒷자리에 탄 선이가 비행기를 보았는지 모르겠다.


어릴 적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교실 뒤편 사물함에는 장래 희망을 붙여놓는 자리가 있었다. 기억에 남는 나의 첫 번째 장래 희망은 대통령이었다. 장래 희망이라 하면 자고로 큰사람이 되는 것이라 알고 있었고, 그 시절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람은 대통령이었다. 그러다 꿈도 놀림감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는 천문학자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중학생 때는 당시 전국적으로 대박을 터트렸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영향을 받아 파티시에를 꿈꾸기도 했다. 시흥에 있는 조리고등학교 입시설명회까지 찾아갔지만, 드라마 종영과 함께 관심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의 교집합 속에서 꿈을 찾다 교사로 진로를 결정하게 되었다.


학창 시절 담임선생님들은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될 장래 희망을 적어 오라며 쪽지를 주셨다. 쪽지에는 나의 희망을 적는 칸 옆에 부모님이 바라는 나의 장래 희망을 쓰는 칸도 있었다. 나는 매번 나의 칸을 먼저 채운 뒤 엄마에게 남은 자리를 채워달라며 쪽지를 드렸다. 그러면 엄마는 항상 내가 적은 것과 같은 걸 적어주셨다. 그런데 더 이상 진로 탐색이 아니라 진로 선택을 해야 했던 고3 때는 달랐다. 내가 적은 ‘교사’ 옆에 엄마는 ‘파일럿’을 적으셨다.


왜 파일럿이었나 생각해 보면, 나를 향한 엄마의 어떤 바람이 담겨 있었던 듯하다. 엄마는 해외여행이 제한되던 시기에 젊은 날을 보내오셨고, 자유화된 이후에는 풍족하지 않은 살림에 자식들을 키우느라 먼 곳으로 떠나는 것은 생각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나와 형이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게 된 이후 우리 가족 중 누구보다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시는 것으로 보아, 엄마는 분명 꿈이 있으셨다. 그러니 내가 아직 마음껏 꿈꿀 수 있을 나이에, 내게 더 많은 기회와 가능성이 열려있을 때, 이 좁은 땅에만 발붙여 살아갈 필요가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하늘과 가까운 곳에서 세계를 누비며 넓은 시야를 갖고 멀리 그리고 높이 생각하며 자유롭게 살길 바라는 마음이 엄마가 적은 ‘파일럿’이란 세 글자에 담겨 있었다.


사실 내가 교사를 꿈으로 삼은 건 나의 좁은 시야 탓이기도 했다. 초등학생 땐 허황된 꿈이라도 크게 가졌는데 언젠가부터 현실적인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잘 알지 못하는 일에 대해선 알기를 시작하는 일도 주저했고, 미리 경험해 보지 못한 일에는 발을 들이는 게 어려웠다. 그러나 교사라는 직업은 어렸을 때부터 가까이에서 봐온 일이고, 학교라는 공간은 이미 익숙했다. 결국 나는 내가 아는 세계 안에서, 그 밖에는 나의 자리가 절대 없을 것이라 단정한 채, 손에 잡히는 극히 적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른 셈이었다.


엄마는 내가 교사가 된 것에 그래도 만족하셨을 것이다. 파일럿만큼은 아니어도 교사는 다른 직업군에 비해 해외에 나갈 시간적 여유가 많으니까. 게다가 전공인 지리를 공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세계 여러 지역에 관심을 가질 테고 여행할 기회도 많을 거로 생각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다른 교사들이나 지리과 동기들에 비해 외국에 나가본 경험이 별로 없다. 선교나 가족여행으로 필리핀과 일본을 다녀왔을 뿐, 나의 주도나 관심으로 외국에 가본 일은 없다. 좁은 시야에 익숙해져 보이는 데에서 만족해 버리는 탓이고 모든 것을 예측 가능한 범위에 두고 싶어 하는 성격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게 잘못됐다거나 불편한 건 아니다. 그러나 경계 밖 세상의 숱한 아름다움을 놓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 아내는 나와 다르다. 아내는 자기 방에 세계지도를 붙여놓았다. 아내는 종종 가만히 서서 지도를 바라보는데, 어느 날 갑자기 중국부터 독일까지 육로로 세계여행을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 계획에는 나와 선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속으로 놀라 눈동자까지 흔들린 나와는 달리 아내의 눈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박물관 공중에 매달린 비행기를 보는 선이의 눈동자도 비슷하게 빛이 났다. 엄마를 닮아 한계가 없는 어떤 꿈을 꾸는 듯이 보였다.


박물관에는 라이트 형제가 개발한 비행기부터 최신의 비행기까지 수많은 모형과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렇게 봐도 저게 하늘을 난다는 게 그저 신기하다. 처음 하늘에도 길이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누군지는 몰라도 꿈을 한계 안에서 찾는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박물관 밖으로 이륙할 준비를 마친 비행기들이 보였다. 하늘 위로는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비행기가 아무렇지 않게 날아가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비행기가 그저 흔한 풍경이다. 하늘을 나는 일이 대수롭지 않은 세상이다. 경계 밖으로 나가는 것이 가벼운 일처럼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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