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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by 벨찬

수상한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 간판도 없고, 언제 문을 열고 닫는지도 사장님 마음이다. 이곳에선 컵아이스크림에 각종 토핑을 올려주는데 사장님 인심이 아주 후하다. 케이크, 딸기, 바나나, 멜론, 키위까지 산더미 같은 토핑이 아이스크림 위에 올라간다. 가끔은 요청하지도 않은 호박이나 가지, 양파 같은 것이 올라가기도 하는데, 그때는 조금 난감하다. 가격은 종류와 양에 상관없이 언제나 이천 원. 현금, 카드, 각종 페이 모두 가능하다. 돈이 없어 뽀뽀로 계산해도 되냐고 물으면 친절하게 입술을 갖다 대주신다. 나는 언제나 뽀뽀로 계산한다. 가장 수상한 점은 이 가게의 주인장은 자주 바지를 입지 않는다는 것이다. 런닝에 기저귀 차림을 하고 토핑 가득한 컵아이스크림에 마지막으로 침 한 방울을 떨어뜨려 건네주는 수상한 아이스크림가게. 그런데도 나는 이 가게를 매일 찾는다. 다른 어떤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특별함이 있기 때문이다.


선이는 가끔 길을 가다 내가 놓친 어떤 특별함을 발견하곤 한다. 산책을 마치고 차가 있는 조금 떨어진 곳까지 걸어가던 길이었다. 날은 덥고 햇살은 따가워 나는 그저 빨리 지나쳐 버리고 싶은 길이었다. 얼른 차에 들어가 에어컨을 세게 틀 생각을 하며 그늘을 찾아 최단 거리로 서둘러 가려는데, 선이가 갑자기 "이거 만지고 싶어". 더워 죽겠는데. 왜. 또. 고개를 돌리니 소나무 가지 하나가 땅 쪽으로 축 처져있다. 선이가 가리킨 건 그 끝에 달린 솔잎이었다. 색연필로도 대충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솔잎말이다. 그냥 갈까 하다가 선이가 솔방울은 만져봤어도 솔잎은 만져본 적이 없는 것 같아 길을 돌렸다. 번쩍 들어 안아 가지 끝 쪽으로 선이를 데려다 주었다. 마치 천지창조의 한 장면처럼 선이의 작은 손가락과 소나무의 가는 잎이 서로 맞닿았다. "이게 솔잎이야. 저번에 솔방울 갖고 놀았었지? 솔방울이 달리는 나무랑 같은 나무에서 나오는 잎이야." 킁킁. 좋은 향이 날까? 기대했지만 아무 향이 나지 않았다. 선이도 나를 따라 킁킁. 소나무가 선이에게만 어떤 특별한 향을 내보낸 걸까? 선이는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계속 킁킁거렸다.


어느새 제법 커서 역할놀이도 할 줄 알고, 여전히 호기심이 많으며 자연을 좋아하는 아이가 참 이쁘다. 수시로 예쁜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쁘다 이쁘다 말해주어서 그런가. 나도 이쁜 사람이 된 모양이다. 요즘 들어 선이는 꽤 자주 나에게 이쁘다고 말해준다. 밤이 되어 자러 방에 들어갔다가도, 뭔가 깜빡 잊은 게 생각난 사람처럼 다시 나와 하는 말이 "아빠 이뻐" 그리고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이전에 이쁘다는 말을 들어본 게 언제였던가. 선이가 그 말뜻을 정확히 알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듣기 좋은 소리다. 방에 따라 들어가 아빠가 왜 이쁜지, 어디가 이쁜지, 갑자기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이유가 뭔지 물어보면 그건 또 쉽게 알려주지 않는다. 아마 선이는 주변에 특별함을 더해주는 마법을 부릴 줄 아는 모양이다. 아이스크림에도, 솔잎에도, 나에게도.


선이와 보내는 날들이 이처럼 특별하다. 선이가 노는 방법도, 관심을 보이는 것도, 언제 어떤 말로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을지도 모두 예측이 불가능하다. 몇 년 후면 수상한 아이스크림 가게는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유한한 이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게 내게 귀한 보물 같다. 선이가 별 볼 일 없는 내 인생에 특별함을 새겨 놓았다. 그러니 나는 이런 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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