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아. 너에게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게.
이름은 이름의 주인보다 다른 사람에게서 더 많이 불려. 한 사람의 이름은 그의 일생에 걸쳐 그와 관계 맺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호명되지. 이름의 주인이 다양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전의 어린 나이라면, 그의 이름을 가장 많이 부르는 존재는 당연히 그의 부모일 거야. 부모가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 자녀의 이름을 부르는 건 간절한 기도라고도 할 수 있어. 부모는 어떤 소원을 담아 자녀의 이름을 짓거든. 아빠의 이름에도 그런 마음이 담겨있단다.
아빠의 이름은 할아버지가 지어주셨어. '종(鐘)'은 항렬에 따른 돌림자이니 할아버지가 아빠에게 준 이름은 '찬'이야. 할아버지는 아빠가 역사에 남을 인물이 되어주길 기대하며 당시 존경받던 정치인 '이종찬(李鐘贊)'의 이름을 참고하셨다고 해. 하지만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끝 글자를 '贊(도울 찬)' 대신 '燦(빛날 찬)'으로 바꿔 할아버지만의 바람을 아빠 이름에 담으셨지. 세상 가운데 환하게 빛나는 사람이 되어라.
그 뜻대로 아빠가 세상 가운데 빛나는 사람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어. 다만, 아빠를 부르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소리에 아빠가 처음 반응했을 때 그분들의 마음에 밝은 빛이 비추어졌을 것을, 그분들처럼 어떤 기도를 담아 네 이름을 부르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
아빠는 너의 이름을 '선(善)'이라 지었어. 착할 선. 친절하고 다정하게 타인의 잘됨을 바라고 옳은 일에 힘쓰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그런데 말이야, 착하면 손해 본다는 말이 있듯이 '착하다'는 말은 요즘 세상에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 같아. 네 이름을 들은 어떤 사람은 '착하게 살면 안 되는데'라고 말하기도 했어. 그런데 아빠는 오히려 그 말에 이름을 잘 지었다고 생각했지. 선함의 가치를 잃어가는 요즘 시대에 선이의 이름이 소중한 진실을 깨닫게 하는 메시지가 되길 바랐거든. 아빠는 네 이름이 어떤 깃발이 되어서, 선함의 가치를 알고 혼자만 잘 먹는 한 끼보다 함께 덜 먹는 한 끼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의 연대가 만들어지는 일을 상상하곤 해. 착하게 산다고 무조건 손해 보는 것도 아니야. 비록 손해를 본다고 할지라도 아빠는 착하게 사는 것이 옳다고 믿어. 물론 어려운 일이지. 그래서 착하게 사는 사람이 진정 강한 사람이야. 그런 마음을 담아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고 단 한 글자 '선(善)'이라 너의 이름을 지었단다.
아빠는 선이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어떤 구속력을 갖기를 소망해. 먼저는 아빠에게. 그래서 아빠 스스로 '과연 나는 선하게 살고 있는가?' 물으며 때때로 삶을 돌아보고 점검할 수 있기를 바라. 또한 다른 사람이 너를 부를 때 그 말의 힘이 너를 대하는 마음을 더 다정하게 만들어주길 기대해. 그리고 한 가지 비밀이 있어. 너의 이름은 창조주의 속성에서 가져온 거야. 하나님은 선하시거든. 그분의 선하심을 네 이름에 새겼어.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그래서 아빠는 네 인생이 잘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조용히 확신하고 있단다.
이름에 대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아빠만 선이에게 이름을 준 것이 아니라 너도 아빠에게 이름을 주었다는 거야. 아빠라는 이름. 네가 태어나 아빠는 아빠라는 이름을 얻었어. 선이만을 위한 이름이지. '아빠'는 아이가 발음하기 쉬운 소리로부터 만들어진 말이야. 시간이 지나도 어떤 거리낌도 없이 선이가 아빠를 불러줄 수 있다면, 우리가 그런 관계로 남아있을 수 있다면 좋겠어. 언제나, 어디에서나 선이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는 그런 아빠로 남길 꿈 꾼다.
선아, 선아. 아빠는 이름만 불러도 그저 좋은데. 너는 어떠니?